올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공연한 K-pop 가수 알렉사. [뉴시스]
영대 유독 변수가 많아 쉽지 않았네요.
현모 에구. 여러 예상 가능한 변수 가운데 하나가 저 자신이 될 줄은 몰랐는데, 함께하지 못해 정말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ㅠㅠ
영대 몸이 안 좋으셨으니 할 수 없죠. 요즘은 조금만 증상이 있어도 선제적으로 조심해야 하는 시기니까요.
현모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도 막판까지 고민하다 결정했는데,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답니다.
영대 뭔가 이번 빌보드는 둘이 같이 쿵작쿵작 작당하는 느낌으로 재미있게 할 줄 알았는데, 저도 아쉬웠죠 뭐.
현모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난 것 같더라고요.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라….
영대 별다른 사건·사고는 없었어요. 현지에서 큐시트가 몇 번씩 무너지고 순서가 뒤죽박죽되긴 했지만, 그때그때 애드리브로 잘 대처해 넘겼고요.
현모 워낙 베테랑이시니, 순발력 있게 하셨겠죠.
영대 잠을 두 시간밖에 못 자고 해설했는데, 컨디션이 괜찮더라고요.
현모 오! 천만다행! 제가 열심히 기도한 보람이 있네요.
영대 근데 솔직히 방탄소년단이 참석하지 않아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고, 아미들도 본방 시청이 적었어요. 전체적으로 조용했던 것 같아요.
현모 그래도 뭔가 재미 포인트 없었어요?
영대 물론 방탄이 이번에 트로피 3개를 추가해 그룹 기준 역대 최다 수상이라는 기분 좋은 기록을 썼죠! K-pop 가수 알렉사가 등장하고 라틴이나 아프로팝(아프리카 리듬에 팝 멜로디를 특징으로 하는 음악) 아티스트들이 공연하는 등 음악적인 다양성이 부각된 부분도 포인트고요. 사회적 메시지가 강조된 측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의미 있는 사회활동을 한 인물을 선정하는 ‘체인지 메이커 어워드’나 음악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상징적인 기여를 한 아티스트에게 수여하는 ‘아이콘상’ 수상 소감도 비중 있게 다뤄졌고요.
현모 체인지 메이커 어워드가 뮤지션을 대상으로 한 상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더라고요. 이번에는 음악인이 아닌 청년운동가 마리 코페니(Mari Copeny)가 수상했잖아요.
영대 그러게요. 저도 이번에 알았어요. 꼭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수도 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코페니처럼 지역사회를 위해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회활동가에게 주어지나 봐요.
현모 전체적으로 아예 ‘love(사랑)’를 테마로 잡은 걸 봐도 (오스카 때처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사랑과 화합을 전파하자는 확고한 콘셉트가 전해지긴 하더라고요.
영대 ㅎㅎㅎ 맞아요, 지난 2년간 팬데믹으로 두 번이나 LA에서 열렸던 행사가 다시 규모를 키워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온 것도 그런 분위기를 더했고요.
현모 맞다. 공연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에드 시런이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녹화한 무대는 진짜 코로나19 이전 같더라고요. 수많은 노마스크 관중에 둘러싸여 빙빙 돌아가는 원형무대 광경이 새삼 감격스러웠어요.
영대 그죠. 아직 우리는 야외에서 마스크 벗는 것도 적응이 잘 안 되는데, 해외는 완전히 마스크를 졸업한 것 같더라고요.
현모 얼마 전 다녀온 독일 ‘K-POP FLEX’ 페스티벌 현장도 어마어마했어요. 이틀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는데 코로나19 이후 최초이자 유럽지역 역대 최대 K-pop 행사였어요. 양일 4만4000여 석이 매진됐고, 오전부터 공연장 주변에 설치된 부대행사 부스나 야외무대 주변이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뤘어요. 딱 2019년 LA에서 목격했던 K-CON 같은 분위기였는데 훨씬 다인종, 다세대, 다문화가 어우러져 열기도 더 뜨거웠죠.
영대 아, 그랬겠네요. 5월 중에 방송으로 편성되면 저도 챙겨 봐야겠어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2022 K-POP FLEX’ 페스티벌. [뉴시스]
영대 저도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정말로’ K-pop이 그렇게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냐는 질문을 아직도 자주 받아요. 가서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모두 알겠지만, 이제 K-pop이 더는 현지 교민이나 교포의 전유물도, 소수의 독특한 취향을 가진 마니아만 즐기는 콘텐츠도 아니잖아요. 일종의 서브컬처로 시작된 현상인 건 맞지만 현재는 엄연히 주류 리그로 들어왔고, 일반 대중을 리스너로 확보했죠.
현모 완전이요. 일단 장소부터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표 축구 경기장인 도이체 방크 파르크였고요. 왠지 한국인이나 아시아인이 주를 이뤘을 것 같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아시아인은 오히려 보이지 않았어요. 프랑크푸르트가 유럽의 교통 허브이다 보니 전부 독일인, 프랑스인, 벨기에인 같은 유럽인이더라고요. 젊은 여자 팬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딸 손잡고 놀러온 아저씨나 여자친구와 나들이 나온 남성도 심심치 않게 보였어요. 단순히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한식 먹을거리를 시식할 수 있고 야외에서 피크닉도 할 수 있는 성대한 축제이다 보니, 재미있게 같이 즐기더라고요.
영대 마침 K-pop 축제를 다녀오셨다고 하니, 빌보드와 연결해 이야기해보죠. K-pop의 특징은 ‘고관여’ 팬덤이 탄탄하다는 거예요. 빌보드를 보면 팝부터 라틴, 힙합, 록, 컨트리까지 다양한 장르가 두루두루 공존하는 가운데 팬들이 약간 “와와~” 하고 환호하는 반면, K-pop은 오리지널리티는 제한적이어도 관객들 소리부터가 달라요. “꺅~~~!!!” 하고 고막을 뚫을 듯 함성을 지르죠. 이렇게 관여도가 높은 양질의 팬들이 곧 티켓 파워로 이어지고, 수적 열세까지 극복하게 해줬다고 봐요.
현모 ‘고관여’라는 단어가 참 공감되네요. K-pop은 가만히 혼자 귀에 꽂고 듣기만 하는 음악이 아니라, 화려한 볼거리나 놀이문화가 동반되잖아요.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와 비슷한 패션을 입고, 식전 잔디밭에서 너도나도 곡이 바뀔 때마다 커버댄스를 척척 선보이고요. 잠깐이라도 아이돌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호텔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고, 물론 가끔은 비행 중에 옆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등 도를 넘는 경우도 있지만요. 그래도 전반적으로 열정적·적극적이면서도 꽤 질서정연하게 K-pop이라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영대 한때 일부 열성 팬이 맹목적이거나 비이성적인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요즘은 활기차고 건강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발전했죠. 그래서 K-pop 미래가 더 밝은 것 같아요. 앞으로도 K-pop 위상은 한동안 계속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라틴음악은 언어적·인구적 우세를 기반으로, 미국 팝은 산업의 대장격으로서 넓은 저변과 유통력을 바탕으로 발달했다면 K-pop은 골목시장에서 몇몇 ‘인싸’의 주목을 받다 질적인 지지가 양적인 흐름으로까지 이어진 케이스거든요. 서구권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점령당한 격이죠.
현모 대단해요. 과거엔 K-pop이 나만 알고 열광하는 작은 맛집이었다면, 지금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마침내 백화점에 입점했다고나 할까.
영대 ㅋㅋㅋㅋ 그런 셈이에요. 맛집 얘기가 나왔으니, 빨리 막국수 미팅 좀 하게 얼른 쾌차하세요!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