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모 소명출판 대표.
그나마 수상 이유를 밝힌 신문은 한겨레 한 곳이었다. 남경희 교수는 플라톤과 서양철학에 관한 수준 높은 저서들을 통해 한국 철학 발전에 기여한 점, 박성모 대표는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기초학술도서를 펴낸 점, 오혜자 대표는 어른들의 동화공부 지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건전한 독서문화로 이끈 점이 선정 이유였다.
‘플라톤’이 10년을 기다린다 해도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팔릴 책이 아니며, ‘TV 책을 말하다’의 시청률 또한 ‘주몽’급이 될 수 없는 이상, 수상 당사자 빼고는 각별히 시상식 소식을 궁금해할 사람도 없을 터다. 나 역시 무심코 시상식 날을 지나쳤는데, 다녀온 지인이 소명출판 박 대표의 소감이 인상적이었고 출판사와 인연을 맺었던 저자들까지 여러 명 와서 축하해주는, 근래 보기 드문 감동적인 시상식이었다고 중계방송을 했다.
소명은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봄 문을 연 학술 출판사다. 한국·중국·일본을 삼각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학의 구축과 연대를 목표로 하는 출판사이니 애초부터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목록을 보자. ‘소설과 서사문학’(나병철), ‘천 가지 가르침’(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샹까라 저·이종철 역), ‘국어라는 사상 : 근대 일본의 언어 인식’(이연숙), ‘근대 중국의 언어와 역사 : 중국어 어휘의 형성과 국가어의 발전’(페데리코 마시지 저·이정재 역). 이런 식으로 2004년에 70여 권, 2005년과 올해 각각 50여 권의 책을 펴냈다. 초판 500~
700부 찍어서 소진하는 데 2~3년씩 걸리는 책들이다. 도서관으로 가는 책 외에 서점 판매 부수는 100여 부나 될까. 양정섭 편집장은 “초판을 아무리 조금 찍어도 100종 중 증쇄하는 책은 4~5종”이라고 했다. 듣고만 있어도 눈물이 날 판이다. 기초학문의 발전을 위해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지만 일개 출판사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가혹한 무게다.
박 대표는 출판사 홈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생존은 자본이며, 자본은 혼령 없는 책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때마다 전선을 이어갈 논리에 필요한 캡슐을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을 거듭하곤 합니다.” 아마 시상 소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간행물윤리상을 받고 박 대표는 “내 정신에 팔려 책 만드는 일에만 빠져 살아왔는데 모처럼 즐거웠다”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안 팔리는 책 쓰느라, 만드느라, 그 책을 널리 보급하느라 마음고생한 분들을 위해 간행물윤리상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