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상상플러스-올드 앤 뉴’를 보다가 종종 놀란다. 어른들이 사용하는 말을 알아맞혀야 하는 10대들의 기발한 상상력 때문에 처음에는 웃지만 나중에는 10대와 성인의 언어 격차가 이렇게 심했나 싶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 90%가 모르는 말 중에 ‘너스레’가 있다. 수다스럽게 떠벌리는 말이나 행동을 일컫는 이 말을 두고 10대들은 뭐라고 했을까? ‘슬리퍼의 우리말’ 혹은 ‘너는 술래’라고 답했다. 기발하다고 해야 하나,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하나. 또 10대의 85.4%가 모르는 말 중에 은근슬쩍 관심을 보낸다는 뜻의 ‘추파’도 있다. 10대들은 뭐라고 답했을까? ‘가을에 먹는 파’란다.
빠르게 변한 환경 … 세대간 의사소통 너무 벅차
어른이 본관과 파를 물어보면 “제가 아는 관은 왕관, 파는 대파밖에 없는데요”라고 답한다니, 10대와 50대의 격차는 이 정도면 소통이 아니라 선문답에 가깝다. 실제로 요즘 10대는 설마 이런 걸 모를까 싶은 말을 정말 모른다. 회수권, 부지깽이, 넝마주이, 마수걸이, 터울, 주전부리 같은 단어는 모두 10대가 모르는 말이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교통카드를 쓰는데 어찌 회수권을 알 것이며, 24시간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는데 어찌 마수걸이를 알 수 있으랴.
‘미역 감고 놀던 어린 시절에…’라는 구절을 책에서 읽다가 “옛날에는 미역을 몸에 감고 놀았나요?” 하고 묻는 것이 아이들 탓만은 아니다. 불과 30여 년 사이에 검정고무신에서 유비쿼터스까지 빠르게 변한 우리 삶과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하게 어른들 역시 10대의 말 중에 모르는 말이 많다. 어느 세대나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은어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요즘 10대의 말은 은어라고 하기엔 너무 낯설고 다르다. 그래서 외계어다. 인터넷의 게시판,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버디버디 같은 메신저 등으로 대화를 하는 세대들의 언어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대표적인 것이 특이한 말투다. ‘디시인사이드’를 시작으로 퍼졌던 ‘~하오’ ‘~했소’ ‘~아니오’ 같은 하오체나 ‘~하셈’ ‘~그러셈’ 같은 하셈체, ‘~했삼’ ‘~없삼’ 같은 하삼체가 그렇다. 이런 어투는 아바타 등으로 차별화를 꾀할 수 없는 비회원제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특성 때문에 등장했다. 간단히 말해서 동아리 학생들끼리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가시적인 차별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생겨난 게 특이한 어투다. ‘하오체’는 등장하자마자 디시인사이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다른 사이트로도 급속히 퍼져나가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기본 말투가 되었다.
근영체나 나영체도 비슷한 이유로 탄생했다. 유명 인기 연예인들의 사진을 모아두는 갤러리 내에서 그들만의 차별화를 위해 쓰이기 시작한 어투다. 문근영 갤러리에서 쓰이는 ‘근영체’는 ‘그랬근영’ ‘아니근영’ 같은 어법을 쓰고, 이나영 갤러리에서는 ‘그렇나영?’ ‘~않나영?’ 같은 ‘나영체’를 쓰는 식이다.
어투뿐만 아니라 신조어도 많다. 이중에는 말을 변형하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터넷 신조어들이 있다. “본좌가 생각하기론 이 말은 사실과 다르오!”라든가 “난 매일 눈팅만 해”에서 ‘본좌’나 ‘눈팅’ 같은 단어는 어원이 없다. 본좌는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말로 무협지 등에서 쓰였다고 하나 믿거나 말거나다. 눈팅은 댓글을 달지 않고 보기만 하는 예의 없는 누리꾼의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다.
10대들이 신조어를 만드는 절박한 이유 중 하나는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10대들은 실시간으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데 그렇게 빠르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려면 의도적으로 글자 수를 줄여야 한다. 드디어를 ‘드뎌’, 제대로를 ‘지대’, 많이를 ‘마니’ 하는 식으로 모음 하나라도 줄여보겠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인터넷 신조어만큼 우리말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
문자를 이렇듯 구어에 가까운 표현방식으로 주고받다 보니 의미 없이 우리말을 변형하거나 오타가 유행어로 뜨는 경우도 생긴다. 한때 ‘활엽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내 삶의 활력소’라고 써야 하는데 ‘내 삶의 활엽수’라고 잘못 쓴 데서 유래한 말이다. ‘오나전’도 비슷한 예다. ‘우리 학주(학생주임) 오나전 무섭다’라거나 ‘이거 오나전 맛있다’라는 식으로 쓰이는데, ‘완전’이라는 뜻이다.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야동(야한 동영상)’ ‘야설(야한 소설)’ 같은 줄임말은 애교스러울 정도다. 이니셜 화법도 10대들이 즐겨 쓰는 영어식 줄임말이다. “오늘 완전 SM 모드였어”라는 말에 “SM에서 새로운 음반이 나왔냐”라고 묻지 말길. SM은 Small Mind, 즉 ‘소심하다’는 뜻이다. DDM은 ‘동대문’의 영어 조어다. 우리말이면 어떻고 영어면 어떠랴. 일단 줄이고 보는 거다.
아이러니한 것은 디지털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어투와 인터넷 신조어가 생겨나고 결과적으로 세대 간 언어 격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말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도 같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책으로까지 발행된 ‘상상플러스’ 외에도 ‘우리말 겨루기’ ‘말 달리자’처럼 우리말이나 사투리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이 전에 없이 인기다. 뿐만 아니라 2~3년 전부터 글쓰기를 다룬 책도 여럿 선보였다. 최근 출간된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이 책 제목도 줄임말로 ‘국밥’이라고 불린다)는 우리말의 뉘앙스를 다룬 책인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이 같은 아날로그적 행위가 각광받는 이유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쓰는 행위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문자를 보내고, 메신저를 하고, 메일을 쓰고,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의 친절한 자막을 읽으며 우리는 전에 없이 문자 홍수 시대에 접어들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문자는 과거의 문자가 아니다. 인터넷과 멀티미디어의 보편화로 문자는 문자지만 말하는 것처럼 쓰는 새로운 구어, 좀더 어렵게 말하면 활자의 음성화를 통한 성자(聲字)의 시대다. 요즘 유행하는 10대의 외계어는 새로운 문자시대의 개막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10대 청소년 90%가 모르는 말 중에 ‘너스레’가 있다. 수다스럽게 떠벌리는 말이나 행동을 일컫는 이 말을 두고 10대들은 뭐라고 했을까? ‘슬리퍼의 우리말’ 혹은 ‘너는 술래’라고 답했다. 기발하다고 해야 하나,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하나. 또 10대의 85.4%가 모르는 말 중에 은근슬쩍 관심을 보낸다는 뜻의 ‘추파’도 있다. 10대들은 뭐라고 답했을까? ‘가을에 먹는 파’란다.
빠르게 변한 환경 … 세대간 의사소통 너무 벅차
어른이 본관과 파를 물어보면 “제가 아는 관은 왕관, 파는 대파밖에 없는데요”라고 답한다니, 10대와 50대의 격차는 이 정도면 소통이 아니라 선문답에 가깝다. 실제로 요즘 10대는 설마 이런 걸 모를까 싶은 말을 정말 모른다. 회수권, 부지깽이, 넝마주이, 마수걸이, 터울, 주전부리 같은 단어는 모두 10대가 모르는 말이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교통카드를 쓰는데 어찌 회수권을 알 것이며, 24시간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는데 어찌 마수걸이를 알 수 있으랴.
‘미역 감고 놀던 어린 시절에…’라는 구절을 책에서 읽다가 “옛날에는 미역을 몸에 감고 놀았나요?” 하고 묻는 것이 아이들 탓만은 아니다. 불과 30여 년 사이에 검정고무신에서 유비쿼터스까지 빠르게 변한 우리 삶과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하게 어른들 역시 10대의 말 중에 모르는 말이 많다. 어느 세대나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은어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요즘 10대의 말은 은어라고 하기엔 너무 낯설고 다르다. 그래서 외계어다. 인터넷의 게시판,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버디버디 같은 메신저 등으로 대화를 하는 세대들의 언어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대표적인 것이 특이한 말투다. ‘디시인사이드’를 시작으로 퍼졌던 ‘~하오’ ‘~했소’ ‘~아니오’ 같은 하오체나 ‘~하셈’ ‘~그러셈’ 같은 하셈체, ‘~했삼’ ‘~없삼’ 같은 하삼체가 그렇다. 이런 어투는 아바타 등으로 차별화를 꾀할 수 없는 비회원제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특성 때문에 등장했다. 간단히 말해서 동아리 학생들끼리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가시적인 차별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생겨난 게 특이한 어투다. ‘하오체’는 등장하자마자 디시인사이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다른 사이트로도 급속히 퍼져나가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기본 말투가 되었다.
근영체나 나영체도 비슷한 이유로 탄생했다. 유명 인기 연예인들의 사진을 모아두는 갤러리 내에서 그들만의 차별화를 위해 쓰이기 시작한 어투다. 문근영 갤러리에서 쓰이는 ‘근영체’는 ‘그랬근영’ ‘아니근영’ 같은 어법을 쓰고, 이나영 갤러리에서는 ‘그렇나영?’ ‘~않나영?’ 같은 ‘나영체’를 쓰는 식이다.
최근 책으로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상상플러스’.MBC의 ‘말 달리자’와 KBS의 ‘우리말 겨루기’(위부터).
10대들이 신조어를 만드는 절박한 이유 중 하나는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10대들은 실시간으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데 그렇게 빠르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려면 의도적으로 글자 수를 줄여야 한다. 드디어를 ‘드뎌’, 제대로를 ‘지대’, 많이를 ‘마니’ 하는 식으로 모음 하나라도 줄여보겠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인터넷 신조어만큼 우리말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
문자를 이렇듯 구어에 가까운 표현방식으로 주고받다 보니 의미 없이 우리말을 변형하거나 오타가 유행어로 뜨는 경우도 생긴다. 한때 ‘활엽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내 삶의 활력소’라고 써야 하는데 ‘내 삶의 활엽수’라고 잘못 쓴 데서 유래한 말이다. ‘오나전’도 비슷한 예다. ‘우리 학주(학생주임) 오나전 무섭다’라거나 ‘이거 오나전 맛있다’라는 식으로 쓰이는데, ‘완전’이라는 뜻이다.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야동(야한 동영상)’ ‘야설(야한 소설)’ 같은 줄임말은 애교스러울 정도다. 이니셜 화법도 10대들이 즐겨 쓰는 영어식 줄임말이다. “오늘 완전 SM 모드였어”라는 말에 “SM에서 새로운 음반이 나왔냐”라고 묻지 말길. SM은 Small Mind, 즉 ‘소심하다’는 뜻이다. DDM은 ‘동대문’의 영어 조어다. 우리말이면 어떻고 영어면 어떠랴. 일단 줄이고 보는 거다.
아이러니한 것은 디지털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어투와 인터넷 신조어가 생겨나고 결과적으로 세대 간 언어 격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말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도 같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책으로까지 발행된 ‘상상플러스’ 외에도 ‘우리말 겨루기’ ‘말 달리자’처럼 우리말이나 사투리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이 전에 없이 인기다. 뿐만 아니라 2~3년 전부터 글쓰기를 다룬 책도 여럿 선보였다. 최근 출간된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이 책 제목도 줄임말로 ‘국밥’이라고 불린다)는 우리말의 뉘앙스를 다룬 책인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이 같은 아날로그적 행위가 각광받는 이유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쓰는 행위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문자를 보내고, 메신저를 하고, 메일을 쓰고,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의 친절한 자막을 읽으며 우리는 전에 없이 문자 홍수 시대에 접어들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문자는 과거의 문자가 아니다. 인터넷과 멀티미디어의 보편화로 문자는 문자지만 말하는 것처럼 쓰는 새로운 구어, 좀더 어렵게 말하면 활자의 음성화를 통한 성자(聲字)의 시대다. 요즘 유행하는 10대의 외계어는 새로운 문자시대의 개막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