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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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의 자화상 ‘살인게임’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0-22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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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사회의 자화상 ‘살인게임’
    영화를 보지 못한 채 ‘어떤 영화’라는 얘기만 들어도 이 영화가 국내에 상영되기란 상당히 요원해 보였다.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하다는 이 영화는 2000년 일본에서 개봉해 엄청난 흥행성적을 거둬 일본에서는 ‘20세기 최후의 히트작’으로 기록됐다. 우리나라에는 작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어 영화 ‘메멘토’와 함께 ‘가장 빨리 표가 매진된 영화’로 인기를 끌었다.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돼 갈 무렵, ‘배틀 로얄’이 개봉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완전 무삭제’로….

    영화를 수입한 동아수출공사 관계자들 역시 ‘배틀 로얄’이 심의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어쩌면 ‘상영불가’ 조처가 내려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심의 대상 필름으로 폭력 수위를 낮춘 재편집본을 내놓을지, ‘디렉터스 컷’(영화감독이 의도했던 대로 편집한 판)을 내놓을지를 두고 한참 고심했는데, 결과적으로 부천영화제 상영본보다 상영시간이 늘어난 디렉터스 컷이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아 개봉이 확정되기에 이르렀다(4월5일 개봉 예정). 입소문만 듣고 궁금증을 키워온 관객이라면 더할 수 없이 반가운 소식.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겠지만 ‘배틀 로얄’에는 단순히 ‘잔인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영화의 배경은 사회 혼란이 심각한 가까운 미래 아시아의 어느 나라. 그러나 영화 오프닝 장면에 흐르는 내레이션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은 현재 일본 사회의 암울한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실업자가 1000만명에 이르고 경제는 붕괴되었다. 전통적 가치관을 떠받치는 사회시스템은 무너졌고 학교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이 100만명에 이른다.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을 존경하거나 신뢰하지 않는다. 학생 폭력에 순직한 교사가 한 해 1200명에 달하는 현실, 점점 더 공격적이고 무정부적으로 변해가는 청소년 범죄에 공포를 느낀 ‘어른들’은 마침내 ‘신세기 교육개혁법’이라는 ‘배틀 로얄’법을 통과시키기에 이른다.

    이 법의 내용은 전국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무작위로 선발, 이들을 무인도로 납치해 3일 동안 최후의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는 살인게임을 벌이게 하는 것. 학생들은 이 황당한 규정에 처음엔 거부감을 갖지만 피할 방법은 없다. 학생들에게는 각각 지도와 식료품, 그리고 다양한 무기가 배급되고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폭발하는 특수한 목걸이가 장착된다. 무장한 군인들이 규칙을 어기는 자를 사살하고, 온갖 감시장치가 이들을 지켜본다.



    경쟁사회의 자화상 ‘살인게임’
    ‘배틀 로얄’법의 의미는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인간만 어른으로 육성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때부터 고립된 섬에서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의지할 데 없이 내동댕이쳐진 10대 소년 소녀들은 조금씩 이성을 잃어가고 야성의 본능만으로 친구들을 죽여 나간다. 학생 수가 한 명씩 줄어갈 때마다 스크린에는 사망자의 인적사항과 남은 생존자 수가 자막으로 카운트된다. 이건 10대들이 열광하는 비디오게임과 비슷하다. 그리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과정 자체가 누군가에겐 하나의 ‘게임’이다.

    누군가는 게임을 거부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함께 탈출을 모색하자고 호소하기도 한다.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이성친구를 희생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단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짝사랑한 남자아이를 죽이는 소녀도 있다. 함께 살아날 길을 찾자던 아이들이 사소한 의심 끝에 서로를 죽이고 몰살하는 장면에서 서늘한 충격이 몰려온다.

    결국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폭력의 팬터지로 펼쳐 보인다. 영화가 개봉되면 국내에서도 ‘폭력을 조장하는 영화’라는 식의 비판이 어김없이 일겠지만, 영화는 분명 폭력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살인게임 속에서 펼쳐지는 아이들의 우정과 애정의 드라마 역시 흥미진진하고, 인간 말종 같던 학생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간성의 본질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게임을 주관하는 선생 기타노 다케시의 모습에서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 역시 상처 받고 병들어 있는 현실을 목도할 수 있다. 문제는 아이들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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