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 여행은 온천마을 유후인에서

[재이의 여행블루스] 자연의 소리 들으며 즐기는 온천욕… 유노츠보 거리엔 은은한 빵 냄새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5-12-21 08:57: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유후인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노츠보 거리. GETTYIMAGES

    유후인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노츠보 거리. GETTYIMAGES

    온천마을 유후인(由布院)은 일본 규슈 여행의 핵심으로 불릴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마을이 크지 않은데도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일본 특유의 고즈넉한 평온함이 온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숨은 전통 료칸과 노천탕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하고, 계절마다 변하는 산과 들 풍경은 언제 찾아도 색다른 감동을 준다.

    한국에서 유후인을 가는 방법은 후쿠오카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후쿠오카공항에서 곧바로 고속버스를 타거나, 후쿠오카 도심 관광을 마친 뒤 기차, 버스로 이동할 수도 있다. 기차는 하카타역에서 유후인노모리 또는 유후 라인을 이용하면 된다. 

    여행객에게 인기 높은 ‘유후인노모리’는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이다. 짙은 녹색 외관과 클래식한 인테리어, 통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유후인까지 걸리는 2시간을 또 다른 여행으로 만들어준다. 객차에는 향긋한 나무 냄새가 배어 있고, 선반과 장식들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열차 같은 느낌을 줘 여행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열차는 하카타역에서 출발해 유후인, 오이타, 벳푸까지 이어지는데, 그 사이로 펼쳐지는 산 능선과 작은 마을 풍경이 기차의 느린 속도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큰 휴식 공간

    또 다른 열차인 ‘유후 라인’은 유후인노모리에 비해 분위기는 덜하지만 요금이 20% 저렴하다. 여행객이 상대적으로 적어 조용히 이동할 수 있는 대신, 객차에 매점이 없어 간식이나 식사를 따로 챙겨야 한다. 두 열차 모두 JR규슈레일 패스로 이용이 가능하며, 규슈 지역을 넓게 돌 계획이라면 패스 사용이 경제적이다. 

    후쿠오카 시내에서 버스로 이동한다면 하카타나 텐진 버스터미널에서 유후인호 고속버스를 타면 된다. 온라인 예약 페이지에 한국어 안내가 잘 돼 있어 이용이 어렵지 않다. 유후인으로 가는 도로는 완만한 산길이 이어지고, 창문을 조금만 열면 숲 냄새가 바람에 실려와 버스 여행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유후인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공기의 따뜻함이 전해진다. 온천마을 특유의 습기와 미지근한 기운이 은은하게 퍼진다. 유후인 온천수는 광물질이 풍부해 피부병과 신경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전통 료칸부터 노천탕까지 다양한 유형의 온천탕이 즐비해 여행객은 하루 일정 중 한 번쯤은 온천욕을 즐기게 마련이다. 

    마을을 걷다 보면 은은한 온천 향이 풍기고, 마을 전체가 크고 작은 온천을 중심으로 하나의 큰 휴식 공간처럼 느껴진다. 유후인의 조용한 온천도 좋지만, 다양한 온천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면 ‘벳푸시(別府市)’도 괜찮은 선택이다. 가마도 지옥 온천은 뜨거운 수면 위로 흰 연기가 피어올라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유후인과 달리 벳푸의 풍경은 역동적인 데다 다양한 온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어 색다른 감흥을 준다.

    재철 재료로 즐기는 일본식 코스요리

    유후인은 온천뿐 아니라, 일본의 소박한 전통과 담백한 풍경이 남아 있는 마을이다. 유후인역에서 긴린 호수까지 이어지는 ‘유노츠보 거리(湯の坪街道)’는 유후인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길이다. 이른 아침 상점 문이 하나 둘 열리면 고소한 빵 냄새와 향긋한 커피 향이 함께 퍼진다. 일본 전통가옥을 본뜬 상점이 줄지어 들어서 있어 자연스레 발길이 느려진다. 일본 특유의 먹거리도 풍성하다. 바삭한 크로켓을 한입 베어 물면 감자와 고기 향이 퍼지고, 바쿠단야키의 진한 소스 냄새는 식욕을 자극한다. 아기자기한 디저트 가게들도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든다.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부드러운 롤케이크와 벌꿀을 더한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여행에 생기를 더한다. 상점 창문 틈으로 보이는 풍경에 잔잔한 음악까지 더해지니 시간은 한층 더 천천히 흐른다. 

                                           유후인 여행은 료칸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완성된다. GETTYIMAGES

    유후인 여행은 료칸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완성된다. GETTYIMAGES

    유노츠보 거리를 따라 좀 더 걸으면 긴린 호수가 시야에 들어온다. 호숫가에 서면 물 위를 지나는 바람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와 냉천이 물안개를 만들어 호수 위를 천천히 감싼다. 아침에는 안개가 더 짙게 내려앉아 호수 전체가 숨을 쉬는 듯하고, 해 질 무렵에는 석양이 부드럽게 내려앉아 물결이 흔들릴 때마다 금빛 조각들이 반짝인다. 이 풍경은 사진보다, 영상보다 실제로 눈앞에서 봤을 때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유후인 여행의 마지막은 숙소에서 완성된다. 료칸에 들어서면 도시 소음이 멀어지고 평온함이 찾아온다. 압도적인 자연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온천탕에 몸을 담그면 따뜻한 물이 피부에 감기면서 몸 전체가 천천히 이완되는 기분이 든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즐기는 온천욕이야말로 유후인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저녁이 되면 료칸의 진짜 매력인 가이세키 요리가 기다린다. 제철 재료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일본식 코스요리다. 생선은 방금 구운 듯 고소하고, 채소는 산뜻하며, 후식의 달콤함은 과하지 않다. 여기에 친절한 응대까지 더해져 편안함과 환대가 마음에 스며든다. 유후인은 하루만 머물러도 추억과 풍경이 마음속에 깊이 남는다. 걷고, 먹고, 쉬는 가장 단순한 행동들이 이곳에서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