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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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폐해 얼마나 심각했으면… 호주 청소년 SNS 사용 금지

[강석기의 뇌과학 리포트] 자기 통제하는 뇌 전두피질 25세에 완전 성숙… “효과 있을 것”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입력2025-12-2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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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호주가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GETTYIMAGES

    호주가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GETTYIMAGES

    최근 끔찍하면서도 영문을 알 수 없는 뉴스를 접했다. 경남 창원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이 중학생 4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을 죽이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출동한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가 창문에서 투신해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중학생들이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성인 남자와 모텔에서 만남을 가졌을까. 알고 보니 이들 중 여학생 2명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에서 가해자와 알게 돼 이미 한 차례 만났고, 이후 1명이 가해자를 모텔에서 만나기로 해 친구와 함께 갔으며, 상황이 심상치 않자 친구가 남자 친구 2명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뇌 구조적 성장은 시간 오래 걸려

    이 사건이 일어나고 일주일 뒤 호주는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을 금지했다. 만일 SNS 플랫폼이 청소년 계정 보유를 막으려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가입 사실이 적발되면 최대 4950만 호주달러(약 485억2000만 원) 벌금이 부과된다.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에도 16세 미만 SNS 사용 금지 조치가 있었다면 앞서 언급한 사건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다만 한편으로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도 떠오른다. 드물게 이런 극단적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를 사는 학생들을 첨단기술과 분리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라서다. 아무튼 이번 호주의 조치를 시작으로 유럽, 아시아 여러 나라가 비슷한 조치를 곧 시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전문가들 입장은 엇갈린다.

    책 ‘불안 세대’로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교수는 청소년의 SNS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쪽을 대표한다. ‘불안 세대’에서 하이트는 “18세 미만이 이상적이지만 16세 미만이 현실적”이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호주 법안은 이에 따른 셈이다), 아울러 고등학교에서도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NS 범람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일정 부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하루 몇 시간씩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들여다보니 일상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물론, 심신 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다만 성인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술과 담배처럼 법이 나설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성년자는 다르다. SNS 폐해가 심각하다면 이들에게는 술과 담배처럼 법으로라도 접근을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이트는 책에서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좋아요’ 같은 부가 기능이 생긴 2010~2015년 사이 인류의 삶에 가상 세계가 성큼 들어섰고 감수성이 민감한 사춘기 아이들을 뒤흔들어 불안 세대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청소년이 이렇게 심리적으로 취약한 것은 뇌과학으로도 잘 설명된다. 5세가 되면 뇌가 90% 성장을 마친다지만 이는 크기 얘기고, 뇌 내부는 전혀 다르다. 뇌 구조(회로)의 성장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부위에 따라 차이도 크다. 어릴 때 뇌는 뉴런이 복잡하게 연결된, 잠재력은 크지만 효율이 떨어지는 상태다. 이후 경험을 통해 자주 쓰는 회로는 강화되고 안 쓰는 회로는 정리되면서(일명 시냅스 가지치기) 효율이 올라간다. 그런데 이런 성숙은 감정, 기억, 학습, 보상 등 생존과 직결된 영역(주로 측두엽)에서 먼저 일어나고, 자기 통제와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전두피질은 가장 성숙이 느려서 25세에야 완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감정과 보상을 자극하는 SNS 전략들에 절제력이 부족한 청소년이 말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호주 실험 결과 수년 뒤 확인 가능

    다만, 흥미롭게도 적잖은 심리학자가 하이트 진영 주장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다. SNS가 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일지라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개인에 따라 긍정적 영향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립된 청소년은 SNS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또 청소년 우울증이나 자살률 증가는 부정적 영향의 극단일 뿐이고, 이런 현상의 원인이 꼭 SNS라고 볼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빈부격차 확대, 정치·사회 불안, 기후변화 등 다른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SNS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들의 결과는 제각각인데, 하이트 같은 사람들이 그중 입맛에 맞는 내용만 골라 대중에게 소개하면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도 강조한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이런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SNS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란은 한쪽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호주의 16세 미만 SNS 사용 금지 조치를 비롯해 몇몇 나라의 잇따른 조치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낼지 수년 뒤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SNS 사용 금지가 청소년의 정신건강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그간 조치를 외면하던 SNS 플랫폼 기업들은 큰 비난에 직면할 테고, 한국을 포함해 규제에 소극적이던 나라들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두피질이 발달하고도 남을 나이인 필자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되던 시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빠져 시간을 낭비한 적이 있다. 시력 저하 같은 부작용이 생겨 고생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을까. 호주를 비롯한 국가 규모의 현장 임상시험 결과와 관련해 필자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데 한 표를 던진다. 단, 조치가 엄격히 시행된다는 조건이 붙기는 한다.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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