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 산티아고 소매치기들은 자신이 부자 돈을 훔치는 것은 일종의 부의 재분배이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GETTYIMAGES
“우리 소매치기들은 길거리에서 부자 지갑이나 휴대전화, 가방 등을 가져간다. 이 부자들은 지금 수중에 돈이 조금 없어도 크게 곤란하지 않다. 반면 우리는 소매치기로 돈을 벌어야 가족이 굶지 않고 먹고살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돈을 조금 훔치는 일이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부자만 약탈하라”던 이자성 군 지휘부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명나라 이자성 군대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중국 명나라 말기 이자성은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명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소위 ‘이자성의 난’이다. 이자성 반란군은 부패한 명나라 군대에 연전연승하면서 결국 명나라 수도 베이징을 점령한다.이자성 군대 지휘부는 병사들이 베이징 시민을 약탈하는 것을 금했다. 원래 점령군은 지나가는 도시를 약탈한다. 하지만 그 도시를 단순히 지나가는 게 아니라 점령해서 다스리려는 군대는 약탈하지 않는다. 계속 함께 지내야 하는 시민들을 약탈했다가는 이후 제대로 통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자성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이 베이징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기를 원했다. 시민들을 약탈하지 못하게 한 것은 정당한 조치였다.
그런데 병사들이 반발했다. 근대 이전에는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이 큰 재산을 얻을 수 있는 주된 기회가 바로 전쟁 승리 후 약탈이었다. 애국심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던 당시 병사들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군대에서 먹을거리를 준다는 점, 그리고 전쟁 승리 후 약탈을 통해 재산을 모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랜 전투 끝에 베이징을 점령하고 약탈로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지휘부가 약탈을 금한 것이다. 병사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지휘부는 타협책을 내놓았다. 바로 “부자는 약탈해도 된다”였다. 일반 시민은 건드리지 않고 부자들 재산만 약탈하면 베이징 민심을 해치지 않으면서 병사들 불만도 잠재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자성 군대는 베이징 부자들에 대한 약탈을 허용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베이징의 모든 시민이 약탈당했다. 이자성 군대 지휘부는 부자들 재산만 약탈하라고 했지만 병사들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다 약탈해 갔다. 이자성 군대가 통제가 안 되는 오합지졸이라서가 아니다. 그렇게 명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들이었다면 명나라 군대에 연전연승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부자인가’라는 부자의 개념 정의에 있었다. 이자성 군대 지휘부가 생각한 부자는 베이징 시내에 대궐 같은 큰 집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었다. 이런 부자들을 약탈하면 가난한 보통 사람의 인심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일반 병사들이 생각하는 부자는 달랐다. 병사는 대부분 농촌 출신이었다. 굶지 않고 살기가 힘든 환경에 있었는데, 먹을거리를 준다는 말에 이자성 군대에 합류했다. 이들이 보기에 베이징에 집을 가진 사람은 다 부자였다. 아무리 허름한 집이라 해도 베이징에 집이 있는 이상 모두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베이징에 있는 모든 집이 약탈 대상이었다.
칠레 산티아고 소매치기, 정말 못사나
자기 집 없이 세로 빌려서 살아가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지 않나. 베이징에 사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에게는 이들도 부자였다. 베이징 집 임대료는 비싸다. 자기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임차료를 내고 베이징에 사는 사람은 부자이고, 따라서 이들도 약탈 대상이다.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은 어떨까. 아무리 거지라 해도 베이징 거지들은 때깔이 곱다. 거지가 걸치고 있는 허름한 누더기도 농촌 출신이 보기엔 고급 옷이다. 결국 베이징에 살고 있는 모두가 약탈 대상이다. 이자성 군대는 베이징을 점령하고 명나라를 멸망시켰으면서도 오래지 않아 망하는데, 베이징 약탈로 시민들 마음이 떠난 것도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산티아고 소매치기들은 자신이 가난하니 부자 돈을 좀 훔쳐 가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 물건을 소매치기하는 것을 일종의 부의 재분배로 여긴다. 어찌 보면 맞는 얘기다.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부자들이 재산을 조금 내놓는 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이자성 군대의 베이징 약탈 건을 돌이켜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산티아고에서 소매치기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소매치기가 용인될 수 있을 만큼 가난할까.
산티아고는 칠레 수도다. 칠레는 남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상대적으로 잘사는 나라다. 그리고 산티아고는 칠레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다. 이런 산티아고에 사는 소매치기들이 정말 가난할까. 산티아고에 사는 사람 중에서는 가난할 것이다. 하지만 칠레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리고 다른 남미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산티아고 소매치기는 어느 정도 사는 사람들이다. 산티아고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라면 소매치기를 당할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산티아고에서 가장 어렵게 산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의 돈을 훔치는 게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누가 부자고 누가 빈자인가. 나는 이것이 빈부격차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는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따라 그 사회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본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면 좋은 사회가 된다. 실제로 국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고자 수많은 정책을 시행한다. 그런데 왜 그런 정책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올라가는 좋은 사회가 되기 어려울까. 그 이유는 많은 지원책이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정책보다 가난한 것처럼 보이는 주변 사람들을 지원하는 정책이 더 많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정책은 대부분 진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게 아니다. ‘대학생 중 가난한 학생’에게 반값 등록금 정책 지원을 하고, ‘자영업자 중 가난한 자영업자’에게 각종 보조금을 준다. ‘근로자 가운데 가난한 근로자’를 위해 각종 정책을 내놓고, ‘도시에 거주하지만 월세를 내기 힘든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 그러나 정말로 가난한 사람은 대학을 가지 못하고, 자영업을 할 돈이 없으며,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근로자 지위를 갖지 못하고, 비싼 월세를 내면서 대도시에 살지 못한다.
수식 없이 진짜 가난한 사람 지원해야
사회의 빈부격차를 지금보다 줄일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빈부격차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해도 지금보다 격차를 줄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 된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는 얘기에 수식이 붙는다. ‘어떤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 ‘자영업자 중에서 수입이 적은 사람’ ‘근로자 가운데 소득이 낮은 사람’, 심지어 ‘의사 중에서 어려운 사람’ ‘예술가 중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한다. 그런 수식을 붙이지 않고 그냥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 지원한다면 그들의 삶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러면 롤스가 정의론에서 얘기한 더 나은 사회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다.이자성의 난이 발생했을 때 베이징에서 어렵게 셋방살이하던 사람들은 자기가 부자라는 이유로 약탈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산티아고 소매치기들은 소매치기가 정당화될 만큼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 주변에서 자신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누가 진짜 가난하고 부자인지는 자기 주변만 둘러봐서는 알 수 없다. 이건 사회 전체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일이다. 정말로 빈부격차가 줄어드는 사회를 원한다면 누가 진짜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많은 지원을 하는데도 빈부격차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지원 정책의 패러독스’가 발생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