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유의 스튜디오’, 프레데리크 바지유, 1870년, 캔버스에 유채, 98×128.5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바지유는 친구들 못지않게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을 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던 친구들의 후원자 노릇도 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그는 1868년 파리에 널찍한 스튜디오를 빌려 모네와 르누아르에게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고마워하며 바지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주간동아 962호 참조).
당시 20대 후반이던 바지유, 모네, 르누아르는 모두 선배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를 흠모하고 있었다. 마네 역시 평단에서 외면받던 화가였지만, 세 사람은 마네의 대담한 색채와 과감한 인물 묘사력을 높게 평가했다. 마네는 바지유의 화실에 가끔 들러 후배들의 그림을 봐주곤 했다.
바지유가 1870년 그린 ‘바지유의 스튜디오’는 젊은 화가들의 이러한 동료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림 한가운데 모자를 쓴 채 이젤 앞에 서 있는 이가 마네다. 그의 오른편에서는 바지유가 팔레트를 든 채 서서 마네의 의견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있다. 마네 뒤편에서 손으로 턱을 괸 채 그림을 응시하는 이가 모네이고, 그보다 더 왼편, 의자에 앉아 있는 이와 계단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이는 각각 르누아르와 작가 에밀 졸라로 추정된다. 맨 오른편에서는 바지유의 친구 에드몽 메트르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림이 묘사하는 상황은 명백하다. 마네와 그의 친구 졸라가 바지유와 친구들의 스튜디오에 들렀다. 마네는 바지유가 그림을 그리던 이젤 앞에 서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려고 직접 그림을 손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바지유는 본인이 아니라 마네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분석에 따르면 그림 속 바지유, 키 크고 마른 남자를 그린 터치는 분명 마네의 것이다.
그림 속에 그려진 스튜디오는 한 사람이 쓰기에는 너무 넓다. 바지유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화가의 스튜디오답게 벽마다 여러 그림이 걸려 있는데 모두 마네, 모네, 르누아르의 작품이다. 예를 들면 창문 오른편에 걸려 있는 커다란 그림은 르누아르가 1866년 그린 ‘두 사람이 있는 풍경’이다. 르누아르는 이 그림을 살롱전에 출품했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친구의 실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바지유가 이 그림을 사들였던 것이다. 그 아래 있는 두 작품 역시 바지유가 구매한 마네의 인물화와 모네의 정물화다.
마치 그림 속 그림인 듯 재미있는 이 스튜디오 풍경을 통해 우리는 대중의 외면과 평단의 비난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자신의 길을 갔던 젊은 화가들의 끈끈한 동료애를 엿볼 수 있다. 아마도 바지유는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이 완성된 지 몇 달 만에 바지유의 뛰어난 재능과 너그러운 인품은 전쟁 포화 속에서 스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