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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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미혼녀는 모두 행복하고 40대 이혼남은 정말 불행할까?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적 만족과 행복의 상관관계 조사…60대 만족 늘고 20대는 줄어

  • 김지현 객원기자 koreanazalea@naver.com

    입력2015-01-23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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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미혼녀는 모두 행복하고 40대 이혼남은 정말 불행할까?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태를 풍자한 속담이다. 국민 소득 2만 달러 시대, 수십 년 전에 비해 먹고사는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됐다. 하지만 돈에 대한 한국인의 욕망은 여전히 강하다. 인터넷 취업 포털사이트 ‘인크루트’는 2013년 직장인 646명을 대상으로 복권 구매 경험에 대해 조사했다. 응답자의 95.5%가 복권을 사봤고, 복권을 사는 이유 1위는 ‘금전적인 여유로움에 대한 기대감’(48.8%), 2위는 ‘일주일 동안 희망을 갖고 지내기 위해서’(19.9%)였다. ‘거액 당첨금 = 행복’이라는 인식을 반영한 응답이다.

    ‘경제적 행복’이란 개인이 소득, 자산 등 경제적 요인을 통해 느끼는 만족과 기쁨을 말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07년 12월부터 연 2회 경제적 행복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1월 7일 15번째 연구결과인 ‘경제적 행복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20대 이상 남녀 812명(남성 398명, 여성 414명)을 대상으로 연령대와 성별, 직업, 결혼 여부, 거주지역, 학력에 따라 경제적 행복지수(Economic Happiness Index·EHI)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경제적 행복을 구성하는 5개 요소로 경제적 안정·우위·발전·평등·불안을 선택하고, 경제적 불안을 제외한 4개 요소의 답을 긍정 100점, 중립 50점, 부정 0점으로 계산(경제적 불안은 긍정 0점, 중립 50점, 부정 100점)한 후 5로 나눴다. 이 결괏값에 ‘전반적 행복감’을 더한 후 다시 2로 나눈 몫이 경제적 행복지수다.

    설문 문항은 다음과 같다. ‘나의 일자리와 소득은 비교적 안정적이다(경제적 안정)’ ‘나는 내 주변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편이다(우위)’ ‘나의 소득 등 경제력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발전)’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평등해질 것이다(평등)’ ‘내가 느끼는 체감 물가 또는 실업률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불안)’ ‘나는 경제적으로 행복하다(전반적 행복감)’.

    결과를 연령별로 분석해보니 20대의 경제적 행복지수가 100점 만점에 48.9점으로 2014년 6월 조사 대비 1.1점 상승해 가장 높았고, 40대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5.3점 급락해 40.9점으로 가장 낮았다. 60대 이상의 행복지수는 8.2점 상승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력별로는 대학원 졸업이 49.5점으로 제일 행복했고 고졸은 45점, 대졸은 43.8점으로 가장 불행했다. 전체 응답자의 경제적 행복지수 평균은 44.5점에 그쳤다. 만점의 절반도 안 되는 값이다.

    20대 미혼녀는 모두 행복하고 40대 이혼남은 정말 불행할까?

    경제적 행복지수가 가장 높거나 낮은 집단이 반드시 가장 행복하거나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한 40대 남성이 쓸쓸히 혼자 있는 모습(왼쪽)과 행복지수가 높은 20대 여성들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



    경제적 불안감과 평등감이 행복 좌우

    이번 결과에서는 그동안 14차례 발표된 결과와 다른 점이 돋보인다. 이전에는 대체로 20대의 행복감이 가장 컸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행복감이 줄어드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0대와 60대의 행복지수가 높고 40대가 낮았다. 또한 지금까지는 학력이 낮을수록 행복감이 낮았지만, 이번 결과에서는 처음으로 대졸자의 경제적 행복지수(43.8점)가 고졸자(45.0점)보다 낮게 나왔다.

    연구를 진행한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2014년 7월 기초연금 지급 대상이 확대되면서 60대의 경제 사정이 개선된 것으로 추측되며, 대졸자의 경우 경제적 불안감과 평등감이 낮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경제적으로 가장 행복하거나 불행한 집단의 분류가 흥미롭다. 보고서는 경제적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20대 미혼 여성’이고,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영업에 종사하는 40대 대졸 이혼남’이라고 결론지었다.

    과연 이 조사 결과는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20대 미혼 여성’은 정말 행복하고, ‘자영업에 종사하는 40대 대졸 이혼남’은 가장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을까. 숫자와 통계로 드러난 이들의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외국계 법률사무소에 다니는 이수연(29) 씨는 3년 차 미국 변호사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10년 넘게 부모 지원을 받으며 유학생활을 했다. 집안이 넉넉한 덕분에 유학시절부터 비행기를 탈 때 비즈니스석만 이용했다. 월수입이 500만 원 정도인 이씨는 알뜰하게 쇼핑을 할 줄 모른다. 백화점에서 자주 충동구매를 하고 1회 40만 원 하는 피부 관리를 받으며 가끔 골프도 친다. 명품 옷이나 핸드백이라도 사면 한 달 지출이 수입을 넘을 때도 있다. 쇼핑 욕심이 많은 이씨는 “객관적으로 보면 많은 수입이지만 내 소비욕구를 다 채워주지는 못한다. 더 넉넉하게 쇼핑하고 저축도 할 수 있게 돈을 더 벌고 싶다”고 말했다.

    홍윤호(49·가명) 씨는 마을버스 운전기사다. 서울 소재 H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원래 중견 패션업체 재무팀장이었다. 하지만 2008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회사가 부도를 맞았고 홍씨는 구조조정 대상자가 됐다. 홍씨가 직장을 잃자 아내는 2014년 아들 둘을 데리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홍씨는 대학졸업장과 이력서를 내밀며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오십에 가까운 그를 어느 회사도 받아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대리운전기사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하루 10만 원을 벌기가 힘들었다. 홍씨는 지난해 7월 마을버스 운전기사로 취업했고 지금은 월 160만 원 정도 수입이 보장된다. 쓸쓸해 보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빨리 경력을 쌓아 시내버스 운전을 하고 싶어요. 여전히 살기는 팍팍하지만 실직했을 당시보다 낫죠. 빨리 경제 형편이 나아져서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이 꿈입니다.”

    두 사람의 수입은 3배 넘게 차이가 나지만 경제적 행복지수가 수입에 비례하지는 않았다. 이씨는 돈이 많아도 소비욕구가 충족되지 못해 불만이었고, 홍씨는 절망적이던 예전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희망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외로움 느끼면 체온도 떨어져

    그렇다면 경제적 만족감은 전체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전문가들은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지만 경제적 소득과 자산이 행복에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는 “인생의 여러 조건, 예를 들어 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를 고려해도 행복의 개인차 중 10~15%밖에 예측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행복은 외적 조건으로 수치화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소득이 행복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선진국의 행복도 조사에서도 나온다. 경제학자인 로버트 레인(Robert Lane) 미국 예일대 교수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미국의 평균 가계소득은 약 2배로 증가했지만 미국인 가운데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1957년에는 53%, 2000년에는 47%였다. 레인 교수는 이에 대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가 아니라 ‘타인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돈을 버는지’가 개인의 행복감을 결정짓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행복 좌우하는 3요소

    사람들은 많은 자산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전제조건이라 믿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목마를 때는 물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일단 갈증 욕구를 채우면 물을 더 마신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도 이와 같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새로운 쾌락에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통해 느낀 즐거움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이런 인간의 적응 능력으로 행복의 양은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제자리걸음이다. 이를 가리켜 심리학계에서는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돈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행복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행복의 기원’을 쓴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첫 번째로 ‘외향성’을 꼽는다. 외향적인 사람은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크며, 처벌을 피하기보다 보상이나 즐거움을 늘리는 데 집중한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 미국에서 진행한 한 실험 결과는 “외로움을 느끼면 체감온도가 낮아져 주위를 춥게 느낀다. 또 언덕 앞에 혼자 서 있으면 친구랑 있을 때보다 언덕의 경사를 가파르게 본다”고 분석했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빈도’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행복은 커다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므로 한 번의 큰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행복을 뒷받침한다. 마지막 요소는 ‘자유로움’이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를 믿고 행복해질 수 있다.

    조사 방법과 결과 분석에 대한 반론도…

    1월 7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낸 ‘경제적 행복 추이와 시사점’은 한국인의 경제적 만족도를 높이는 데 유용한 지표로 활용되는 보고서다. 하지만 조사 방법과 결과 분석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첫째, 최근 발표된 3개 보고서(2015년 1월, 2014년 7월, 2013년 12월)를 보면 학력별 설문자 중 대졸 이상이 전체 응답자의 64~74%를 차지한다. 한국 성인 중 대졸 이상 학력자는 절반 이하다. 따라서 표본이 고학력층에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이번 보고서에 활용된 각 변수(직업, 연령, 학력, 성, 결혼 여부)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거나 낮은 집단을 정의한 것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행복한 집단은 ‘여성’ ‘20대’ ‘전문직’ ‘대학원 졸업’ ‘미혼’인데, 이를 합쳐 ‘전문직에 종사하는 대학원 졸업 20대 미혼 여성이 가장 행복하다’고 결론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각 변수의 교집합이 있는지 분석하는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일반인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경우 연령과 지역을 통제하고 다른 요소는 감안하지 않는다. 또한 행복하거나 불행한 집단을 구분한 후 그 집단의 특성을 다 충족하는 집단으로 한 번 더 분류했다. 모든 계층을 세분화해 비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여론조사는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15회(7년 6개월) 동안의 추이를 보면 전문직, 대학원 졸업자, 고소득자의 행복감이 꾸준히 높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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