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씹는 여자
복권 긁는 대신 껌을 씹지
딱 딱 소리는 취미 없고 그래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지만
풍선을 분다 아주 크게
아주 높게
하얀 구체가 부풀다
애드벌룬처럼 커지면
거기 매달린 껌딱지 같겠지 나는
말똥을 이고 가는 말똥구리 같겠지
애인을 만나면
키스 대신
풍선을 맞대기
터질 때까지 비벼보기
피시식
빵―
그리고 다가오는
입술의 감촉
푸하하하 풍선을 분다 아주 크게
아주 높게
말똥을 부풀리는 말똥구리처럼
꿈을 씹다가 혀를 깨무는
몽상가처럼
― 진수미 ‘껌 씹는 여자’
(‘밤의 분명한 사실들’, 민음사, 2012)에서
나이를 먹어야 나는 딱딱 소리
어렸을 때 궁금했던 것 중 하나. 왜 어른은 껌을 씹을 때 소리가 날까. 어른이 되면 자동적으로 그 소리가 나는 걸까. 그런데 이게 웬일. 유심히 살펴보니 껌 씹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어른도 있었다. 어쩌면 선택받은 어른만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 나는 귀갓길에 껌을 잔뜩 사서 엄마와 내가 ‘이모’라고 부르던 엄마 친구들에게 주었다. 그러곤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그들이 사이좋게 껌 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서 “딱 딱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서 딱, 하면 박자를 맞춰 저기서 딱, 하고 소리를 냈다. 다소 신경질적이지만 묘하게 매력 있던 그 소리.
얼마 후, TV를 보고 나는 그 소리의 진원에 대해 추리할 수 있었다. 내가 세운 가설은 이랬다. 어른이 되면 입안에 어떤 이가 하나 더 돋아난다.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만 돋아나는 신기한 이. 그 이는 흔히 사랑니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껌 씹을 때 소리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로 그 사람이 사랑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모들 가운데 결혼하지 않은 이모만 그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모는 사랑니가 없을 테니 말이다. 사랑니에 껌이 닿으면 딱딱 소리가 나는 원리인 셈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가설은 더욱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이모가 슬퍼할까봐, 나는 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딱딱 소리를 내려면 나이를 먹어야만 했으므로, 나이 먹고 사랑을 해야 했으므로, 나는 별수 없이 다른 장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어린이도 할 수 있는 장기를. 내가 생각해낸 것은 바로 풍선 크게 불기였다. 그날부터 나는 풍선껌만 샀다. 풍선을 “아주 크게/ 아주 높게” 불려고. “애드벌룬처럼” 아주 매우 굉장히 크게 불려고. 그러려면 하나를 씹는 것으로는 어림없었다. 나는 적게는 두 개에서 많게는 대여섯 개까지 입에 털어 넣었다. 새콤달콤한 향이 입속에 가득 퍼졌다. 껌을 씹을 때마다 턱이 아팠지만 “말똥을 이고 가는 말똥구리”처럼 나는 묵묵히 씹고 또 씹었다. “터질 때까지” 풍선을 불고 또 불었다. 매일매일 풍선이 커지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얼마 후 나는 눈대중으로도 풍선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유독 컨디션이 좋았다. 네 개를 입안에 털어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입천장을 두드리는 껌의 촉감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겠다 싶었을 때, 나는 힘차게 풍선을 불었다. 풍선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기 시작했다. 숨이 다 막힐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거의 다 되었어. 나는 안간힘을 썼다. 신기록을 세우려는 순간, 풍선이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더는 “하얀 구체”는 없었다. “푸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코에 붙은 껌에서 과일향이 물씬 풍겼다. 목구멍 뒤로, 군침이 꼴깍 넘어갔다.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복권 긁는 대신 껌을 씹지
딱 딱 소리는 취미 없고 그래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지만
풍선을 분다 아주 크게
아주 높게
하얀 구체가 부풀다
애드벌룬처럼 커지면
거기 매달린 껌딱지 같겠지 나는
말똥을 이고 가는 말똥구리 같겠지
애인을 만나면
키스 대신
풍선을 맞대기
터질 때까지 비벼보기
피시식
빵―
그리고 다가오는
입술의 감촉
푸하하하 풍선을 분다 아주 크게
아주 높게
말똥을 부풀리는 말똥구리처럼
꿈을 씹다가 혀를 깨무는
몽상가처럼
― 진수미 ‘껌 씹는 여자’
(‘밤의 분명한 사실들’, 민음사, 2012)에서
나이를 먹어야 나는 딱딱 소리
어렸을 때 궁금했던 것 중 하나. 왜 어른은 껌을 씹을 때 소리가 날까. 어른이 되면 자동적으로 그 소리가 나는 걸까. 그런데 이게 웬일. 유심히 살펴보니 껌 씹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어른도 있었다. 어쩌면 선택받은 어른만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 나는 귀갓길에 껌을 잔뜩 사서 엄마와 내가 ‘이모’라고 부르던 엄마 친구들에게 주었다. 그러곤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그들이 사이좋게 껌 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서 “딱 딱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서 딱, 하면 박자를 맞춰 저기서 딱, 하고 소리를 냈다. 다소 신경질적이지만 묘하게 매력 있던 그 소리.
얼마 후, TV를 보고 나는 그 소리의 진원에 대해 추리할 수 있었다. 내가 세운 가설은 이랬다. 어른이 되면 입안에 어떤 이가 하나 더 돋아난다.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만 돋아나는 신기한 이. 그 이는 흔히 사랑니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껌 씹을 때 소리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로 그 사람이 사랑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모들 가운데 결혼하지 않은 이모만 그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모는 사랑니가 없을 테니 말이다. 사랑니에 껌이 닿으면 딱딱 소리가 나는 원리인 셈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가설은 더욱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이모가 슬퍼할까봐, 나는 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딱딱 소리를 내려면 나이를 먹어야만 했으므로, 나이 먹고 사랑을 해야 했으므로, 나는 별수 없이 다른 장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어린이도 할 수 있는 장기를. 내가 생각해낸 것은 바로 풍선 크게 불기였다. 그날부터 나는 풍선껌만 샀다. 풍선을 “아주 크게/ 아주 높게” 불려고. “애드벌룬처럼” 아주 매우 굉장히 크게 불려고. 그러려면 하나를 씹는 것으로는 어림없었다. 나는 적게는 두 개에서 많게는 대여섯 개까지 입에 털어 넣었다. 새콤달콤한 향이 입속에 가득 퍼졌다. 껌을 씹을 때마다 턱이 아팠지만 “말똥을 이고 가는 말똥구리”처럼 나는 묵묵히 씹고 또 씹었다. “터질 때까지” 풍선을 불고 또 불었다. 매일매일 풍선이 커지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얼마 후 나는 눈대중으로도 풍선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유독 컨디션이 좋았다. 네 개를 입안에 털어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입천장을 두드리는 껌의 촉감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겠다 싶었을 때, 나는 힘차게 풍선을 불었다. 풍선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기 시작했다. 숨이 다 막힐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거의 다 되었어. 나는 안간힘을 썼다. 신기록을 세우려는 순간, 풍선이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더는 “하얀 구체”는 없었다. “푸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코에 붙은 껌에서 과일향이 물씬 풍겼다. 목구멍 뒤로, 군침이 꼴깍 넘어갔다.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