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강동원 당선인(59·전북 남원순창)은 4·11 총선에서 ‘최대 이변의 주인공’으로 통한다. 그는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16대 총선부터 내리 3선을 지낸 이강래 민주당 의원을 눌렀다.
통진당은 당초 이 지역에서 의석을 얻으리라 예상치 못했다. 호남은 야권연대 예외 지역이어서 민주당과 통진당이 각각 후보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강 당선자는 “이번 선거는 정치인이 유권자를 외면하고 지역을 방기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줬다”며 “민심을 파고든 것이 가장 큰 승리 요인”이라고 말했다. ‘호남에서 민주당의 일당독식을 막아야 한다’는 견제론이 힘을 얻은 셈이다.
그는 돈과 조직 없이 발로 뛰는 선거운동으로 승부를 걸었다. 지역구 850여 개 마을을 나 홀로 찾아다니며 여론을 피부로 느끼고 그것을 정책화해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 나온 공약이 바로 ‘반값 비료’ ‘반값 기름값’이다.
그는 ‘반값 비료’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땅값이 5%만 뛰어도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안정화정책을 발표하는 등 법석을 떨면서도 기본 주곡 생산에 필수적인 비료값이 100% 오르는 동안에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담합이 일어났기 때문에 거품을 완전히 제거하면 가격을 반값 이하로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거를 치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그는 “과거 빨치산 등 좌익세력에게 피해를 당한 분들의 ‘레드 콤플렉스’ 탓에 진보정당에 대한 지역주민의 이해가 부족했다. 일각에서는 무소속으로 나왔으면 일찍 승부가 결정됐으리라는 지적도 있었다”면서 “상대 후보가 빨갱이로 몰아가 사상 논쟁도 심하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선 인사 겸 주민의견 청취 중
그의 서포터스들은 선거운동 기간에 통진당의 상징색인 보라색 점퍼를 입고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든 채 지역구를 청소하며 다녔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주민의 삶을 바꿔놓는 것이 진보정치임을 각인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지역주민이 ‘신선하다’ ‘충격이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당선 인사를 다니며 주민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강 당선자는 20여 년간 김대중(DJ),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비서로 출발해 1997년 대통령 당선 때까지 DJ를 도왔다. 2001년에는 누구보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당시 노무현 대선후보의 호남조직 특보를 맡는 등 참여정부 출범의 주요한 구실을 했다. 2004년부터 3년간은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로 일했다.
참여정부가 끝나면서 그는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농업 관련 현지법인 사장을 맡아 2년간 농사를 지었다. 그가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실무 경험도 깔렸다. 그는 2010년 귀국해 국민참여당에 입당한 뒤 지난해 12월 통합진보당이 창당되면서 합류했다.
최근 그의 당면 과제는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과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로 내홍을 겪는 통진당의 당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그는 “(당권파의)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는 부끄러운 추태로 국민께 죄송하다”며 “대중 눈높이에 맞는 진보정당을 만들어나가는 데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의정활동 포부에 대해서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들어가 ‘춘향전’의 본고장인 남원을 문화예술의 메카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통진당은 당초 이 지역에서 의석을 얻으리라 예상치 못했다. 호남은 야권연대 예외 지역이어서 민주당과 통진당이 각각 후보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강 당선자는 “이번 선거는 정치인이 유권자를 외면하고 지역을 방기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줬다”며 “민심을 파고든 것이 가장 큰 승리 요인”이라고 말했다. ‘호남에서 민주당의 일당독식을 막아야 한다’는 견제론이 힘을 얻은 셈이다.
그는 돈과 조직 없이 발로 뛰는 선거운동으로 승부를 걸었다. 지역구 850여 개 마을을 나 홀로 찾아다니며 여론을 피부로 느끼고 그것을 정책화해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 나온 공약이 바로 ‘반값 비료’ ‘반값 기름값’이다.
그는 ‘반값 비료’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땅값이 5%만 뛰어도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안정화정책을 발표하는 등 법석을 떨면서도 기본 주곡 생산에 필수적인 비료값이 100% 오르는 동안에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담합이 일어났기 때문에 거품을 완전히 제거하면 가격을 반값 이하로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거를 치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그는 “과거 빨치산 등 좌익세력에게 피해를 당한 분들의 ‘레드 콤플렉스’ 탓에 진보정당에 대한 지역주민의 이해가 부족했다. 일각에서는 무소속으로 나왔으면 일찍 승부가 결정됐으리라는 지적도 있었다”면서 “상대 후보가 빨갱이로 몰아가 사상 논쟁도 심하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선 인사 겸 주민의견 청취 중
그의 서포터스들은 선거운동 기간에 통진당의 상징색인 보라색 점퍼를 입고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든 채 지역구를 청소하며 다녔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주민의 삶을 바꿔놓는 것이 진보정치임을 각인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지역주민이 ‘신선하다’ ‘충격이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당선 인사를 다니며 주민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강 당선자는 20여 년간 김대중(DJ),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비서로 출발해 1997년 대통령 당선 때까지 DJ를 도왔다. 2001년에는 누구보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당시 노무현 대선후보의 호남조직 특보를 맡는 등 참여정부 출범의 주요한 구실을 했다. 2004년부터 3년간은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로 일했다.
참여정부가 끝나면서 그는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농업 관련 현지법인 사장을 맡아 2년간 농사를 지었다. 그가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실무 경험도 깔렸다. 그는 2010년 귀국해 국민참여당에 입당한 뒤 지난해 12월 통합진보당이 창당되면서 합류했다.
최근 그의 당면 과제는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과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로 내홍을 겪는 통진당의 당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그는 “(당권파의)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는 부끄러운 추태로 국민께 죄송하다”며 “대중 눈높이에 맞는 진보정당을 만들어나가는 데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의정활동 포부에 대해서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들어가 ‘춘향전’의 본고장인 남원을 문화예술의 메카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