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한 회색 정장에 화려한 나비넥타이로 포인트를 준 차림.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날에는 어김없이 입을 옷을 고민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옷을 멋지게 차려입는 날이 줄어든다면 좀 서글픈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A매치 축구경기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즐거움, 편안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거나 좋은 향이 나는 샴푸와 로션을 쓰는 즐거움을 모르는 것 또는 그 횟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패션디자인을 하는 나 같은 사람도 평소 회사에서 작업할 때는 될 수 있는 한 편하고 심플한 옷을 입는다. 그렇지만 옷을 입을 때마다 계산된 나만의 원칙을 시도할 때가 더 많다. 가령 하얀색 반팔 저지 톱과 일자 울 팬츠를 심플하게 입었을 경우에는 눈부시도록 깨끗한 원색 운동화로 스타일링한다. 이렇게 작은 포인트로 전체적인 룩을 재미있게 변화시키는 것 또한 옷을 즐기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몇 달 전 프랑스 파리를 경유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류승범 씨를 만났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서로 안부를 묻고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긴 비행시간이 덜 지루했다. 류승범 씨는 옷을 잘 입기로 유명하다. 그는 심플한 면바지와 셔츠를 입었는데 셔츠 소매를 멋지게 잘 접어 입고, 양말 없이 갈색 로퍼를 신은 것으로 멋지게 공항룩을 완성했다. 이렇게 무심한 듯하면서도 신경 쓴 옷차림은 그가 매우 섬세하고 옷 차려입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임을 조용히 속삭여준다.
매일매일 옷을 차려입는 것을 즐기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맛집 냉면을 줄서서 기다려 먹듯이, 자신을 위해 옷을 잘 차려입는 것은 매우 즐겁고 중요한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고로 멋지게 차려입으면 어떨까.
매주 일요일 종교행사에 가는 사람이라면 온 가족이 멋지게 차려입자.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만나는 사람과 인사도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회사의 공식 회의가 있는 월요일에는 멋지게 타이를 맨 뒤 포켓에 행커치프를 한 정장을 입고 회의에 참석해보자. 한 주에 한 번씩만 꾸준히 멋지게 차려입어도 사람들이 나를 보기를 즐거워할 것이다. 내가 소개팅하던 날이나 프레젠테이션하던 그날처럼 옷을 입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한상혁·제일모직 남성복 부문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0년 ‘코리아 라이프 스타일 어워드’에서 ‘올해의 브랜드’와 ‘디자이너’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소년의 꿈’을 가진 ‘단정한 청년’이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