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여행사의 사기사건이 빈번하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어 피해가 늘고 있다.
낙원을 꿈꾸고 떠난 신혼여행지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5월 14일 결혼식을 마치고 인도양 중북부 몰디브로 떠난 A씨(29) 부부 등 신혼부부 3쌍은 말레공항에서 첫날밤을 보내야 했다. A씨 부부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B몰디브여행사에서 700만 원 상당의 신혼여행 상품을 계약했다. 하지만 B몰디브여행사는 신혼부부들이 묵을 리조트를 예약하지 않고 귀국 항공편조차 모두 취소해버린 상태였다. 결국 A씨 부부는 기대했던 신혼여행을 망친 채 자비를 들여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는 A씨 부부만이 아니다. 신혼부부 50여 쌍이 신혼여행 계약금 1억5000만 원 상당의 피해를 보았다. 이들은 무조건 싼 여행사를 피하고 상품 구성과 평판 등을 꼼꼼히 따져 여행사를 골랐지만, 사기를 피할 수 없었다. 그중 10여 명이 서초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해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피해 금액을 돌려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여행사가 계약금을 가로채거나 고의로 폐업하는 사기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2월에는 부산의 C여행사 대표가 신혼부부, 예비부부 80여 쌍을 상대로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계약금을 가로채 해외로 도피했다. 서울북부지검은 2010년 6월 여행상품을 판매한 뒤 고의로 폐업한 3개 여행사 대표 3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160여 차례에 걸쳐 270명에게 11억여 원을 가로챘다.
올 3월 기준 1만 2700여 곳
여행사 사기사건이 빈번한 가장 큰 이유는 여행사 개업이 쉽기 때문이다. 관광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여행업은 크게 일반여행업, 국외여행업, 국내여행업으로 나뉜다. 일반여행업의 자본금 기준은 2억 원, 국외여행업은 6000만 원, 국내여행업은 3000만 원 이상이다. 여기에 소유권이나 사용권을 가진 사무실만 있으면 조건이 충족된다. B몰디브여행사는 국외여행업으로 등록한 업체였다.
자본금 규정이 2009년 12월 크게 완화됨에 따라 여행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집계 자료에 따르면, 2000년 6700여 개이던 여행사 수는 2009년 9200여 개, 2011년 3월 기준 1만2700여 개로 크게 증가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일반여행업 자본금이 3억5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줄어드는 등 규제가 크게 완화됐다. 자본금 기준이 낮다고 생각하지만, 현 정부의 기조가 규제 완화에 맞춰 있어 더 낮추라는 요구가 밖에서 계속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구·군청에서 한두 명이 관리 감독
여행사 수가 늘어나는 반면, 관리감독은 부실하다. 문화부에서 담당하던 여행업 등록 업무는 각 시도(광역자치단체)로 넘어갔다가 각 구·군청으로 이관됐다. 2009년 9월부터 각 구·군청이 일반여행업, 국내여행업, 국외여행업 등록 업무 및 불편불만 접수, 민원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것.
하지만 각 구·군청 담당자들은 “구별로 등록 여행업체 수가 크게 차이 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한두 명의 담당자가 맡기엔 벅찬 업무”라며 하소연했다. 한 구청 담당자는 “일단 업체가 여행업에 등록하면 영업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소재지 변경 신고를 하지 않는 등 법규를 위반할 때만 조치를 취한다. 현장에 나가 보지 않으니 여행사가 등록 당시 주소에서 영업하는지, 보험가입을 연장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구청은 많게는 1000여 개가 넘는 여행사를 관리한다.
이러니 불량 여행사를 가려낼 여행사 이력 관리는 각 구·군청으로선 언감생심이다. 서울북부지검이 구속했던 여행사도 폐업한 뒤 상호를 바꿔 다른 여행사로 둔갑해가며 사기 행각을 이어갔고, B몰디브여행사도 등록 당시 대표 이름과 계약서상 대표 이름이 달랐다. 한 업체가 여러 회사 이름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여행객을 모은 뒤 잠적하기도 했다.
여행업 등록을 아예 하지 않고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여행객을 모집하는 불법 업체도 경계 대상이다. 이들 불량, 불법 여행사들은 유명 여행사 이름과 유사한 간판을 내걸고 사기 행각을 벌인다. 한국일반여행업협회 배영창 부장은 “폐업 신고를 한 뒤 주소를 옮겨 신규로 개업할 때는 업체에 일정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이력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화부 관계자는 “지방 분권 흐름에 맞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책임질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믿을 만한 대형 여행사 상품을 계약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대형 여행사 대부분은 각 지점 아래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각 대리점 업주는 여행 상품 판매 수수료를 받아 이윤을 남긴다. 대리점에서 여행 상품을 계약할 때는 본사에서 그 상품이 실제로 판매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일부 부도덕한 대리점이 본사에서 팔지도 않는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본사를 둔 여행사의 상품을 지방 대리점에서 계약한 경우에는 상품에 문제가 생길 때 본사 소재지의 구·군청을 통해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한 40대 여행객은 “단체여행을 가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대리점마다 가격이 달랐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행사가 가입한 영업보증보험 가입 금액을 확인하는 것이다. 여행사가 고의로 폐업하거나 부도를 냈을 경우 여행자는 영업보증보험 가입액만큼만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전문가들은 “보험 가입액이 최소 2억 원이 넘어야 안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B몰디브여행사의 경우 영업보증보험 가입액이 3000만 원에 불과해 피해자들은 피해금액을 충분히 보상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B몰디브여행사의 상품을 계약했다가 계약금만 떼인 피해자 손모 씨도 당초 무조건 싼 여행사를 피하고 상품 구성 및 평판까지 꼼꼼히 따졌지만, 영업보증보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여행업체 종사자도 영업보증보험의 중요성을 모르는 게 현실. 실제 손씨는 “신혼여행 상품을 다시 구매하려고 20군데가 넘는 여행사에 문의했지만 영업보증보험을 아는 상담원은 전무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영업보증보험에 가입한 여행사라도 가입액이 3000만~5000만 원에 불과했다. 일반여행업협회 배영창 부장은 “영업보증보험을 챙기고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해야 믿을 만한 상품을 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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