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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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하고 탱탱한 랩의 질감과 비트

‘에픽하이’ Epilogue

  • 현현 대중문화평론가 hyeon.epi@gmail.com

    입력2010-03-31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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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싱하고 탱탱한 랩의 질감과 비트

    ‘에픽하이’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순례하지만 힙합 마니아들에게 외면받지 않는다. 그들만의 애티튜드 때문이다.

    ‘에픽하이’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일종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송라이팅과 프로듀싱이 가능한 셀프 프로듀싱 그룹의 면모를 지니는가 하면, 한국 힙합계보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잦은 편은 아니지만 방송에 적응을 잘하는 스타 중 하나인 동시에, 음악성을 추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그룹이기도 하다. 이전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떠오르는 위치지만, 여러 음악 장르를 순례하던 서태지와 달리 힙합 기반의 팝음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교조적 힙합 그룹들의 엄숙주의로부터 자유롭고 한국 대중음악의 나약함에서도 탈출한 에픽하이는 어쨌든 음악시장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DJ 투컷이 입대하자 에픽하이가 활동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투컷 자리를 비워놓고 음반을 발표했다. 이것은 ‘배신’이 아니라 일종의 ‘사이드 프로젝트’다. 지금까지의 작업 중 정규 음반에 선택되지 않은 ‘미완성 트랙’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왕성한 창작력을 확장해 보여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음반에 수록된 트랙들의 함량이 다른 그룹들의 이른바 ‘B 사이드 앨범’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첫 트랙 ‘서랍’은 이 음반이 그동안 서랍 속에 들어 있던 악보들을 꺼내 새로운 옷을 입힌 작업이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어지는 트랙 ‘Run’은 요즘 한창 프로모션 중인 곡이다. 청아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데 에픽하이가 즐겨 사용하는 빠른 템포의 리듬이 돋보인다. 에픽하이가 한국 대중음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힙합 중심주의적 청취 성향을 지닌 사람들도 거부하지 않는 랩의 질감에 있다. 타블로와 미쓰라 진이 만들어내는 선도 높은 랩은 그들의 장기인 일렉트로니카적 감성과 만나 강한 대중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리고 에픽하이가 지닌 비장의 카드, 클라이맥스의 집중도 높은 멜로디라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에픽하이는 미국식의 다운 템포 힙합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지니면서도 일렉트로니카의 뼈대를 과감히 이용한다. 그런데도 힙합 마니아들에게 외면받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애티튜드 때문이다. 그들은 랩이 지닌 감각적 측면인 기민한 플로와 재치 있는 라임으로 힙합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물론, 다른 장르를 수용하면서도 결코 거기에 빠지지 않는 뚝심도 있다. 특히 일렉트로니카 중에서도 하우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아티스트들이 브레이크 비트에 무관심하거나 잘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강한데, ‘Run’ 같은 업 템포의 노래에서도 힙합 본성을 자극하는 브레이크 비트를 자연스럽게 운용하고 있다.

    브레이크 비트의 이해도가 잘 구현된 노래가 바로 ‘Wordkill’이다. 이 곡은 타블로가 지닌 순문학적 정서가 잘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꾸준히 한 장르만으로 활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터운 장르적 베이스가 없으면 금세 음악적으로 바닥 나버리기 때문이다. 대중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런데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에픽하이가 지겹지 않다. 함량 높은 음악 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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