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일은 종교계 뉴스로 시끄럽다. 8년째 정치권과 언론이 쉬쉬한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를 신년 설교로 터뜨린 마르고트 캐스만 루터교 대주교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음주운전으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일이 신교 측 최대 뉴스라면, 구교는 벌써 몇 달째 성직자 성추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베를린에 자리한 카니시우스 학교는 가톨릭이 운영하는 사립 김나지움으로 명문학교에 꼽힌다. 정치가, 외교관 등 유력 집안과 부실한 공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이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 애쓴다. 이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지식만 습득할 게 아니라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훌륭한 교사와 좋은 친구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고액의 학비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더니 급기야 올해 1월 28일 모든 신문이 이 학교의 ‘교사 성추행’ 사건을 전면에 실었다. 교장인 클라우스 메르테스 신부가 “1970~80년대에 교사 2명이 7명의 학생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한 적 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한 것. 교장은 당시 재학생이던 600여 명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냈다.
神父가 성교 강요 일파만파 충격
그러나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지자 피해 신고가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 이미 12명의 전직 교사가 성추행 혐의에 올랐고, 피해자 수는 140명을 넘어섰다. 또 함부르크, 슈바르츠발트, 본, 하노버, 힐데스하임 등 독일 가톨릭이 운영하는 김나지움 교사들의 성추문 고발도 잇따랐다. 결국 가톨릭재단이 운영하는 독일 전역의 학교 및 보육·복지시설에서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학대가 수십 년간 자행됐음이 드러났다. 지금도 신고가 계속 들어와 정확한 피해 규모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롤프 미하엘 데커 씨는 14세 때 기숙사 사감신부 방으로 끌려가 강제로 항문 성교를 당했다. 그는 지금도 수치감에 시달리며 데커 씨의 다른 급우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사건의 발단이 된 카니시우스 학교에서는 종교교사였던 페터 R 신부가 가장 문제였다. 그는 8년간 별도 건물에 있는 청소년센터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에게 온갖 음란한 짓을 벌였다. 그는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비슷한 일을 저질렀다.
추악한 일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톨릭이 신성하게 여기는 교회당, 그것도 고해성사 공간에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일이 잦았다. 15세 소녀의 고해를 받는 자리에서 사제는 언급하기 곤란한 외설적 질문을 던졌고, 본인의 자위행위를 소녀에게 지켜보게 했으며, 참다못해 소녀가 뛰쳐나가자 수녀들이 아이를 붙잡고 매를 때렸다고 한다.
3월에는 독일 최고의 전통과 명성을 자랑하는 소년합창단 ‘돔슈파첸’에서 동성애 매춘 알선이 있었다는 충격적 보도가 있었다. 이 합창단은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친형 게오르크 라칭어가 오랫동안 총책임을 맡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1950년대부터 계속해서 일어난 성추행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수치와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교회에 피해와 재발 방지를 호소해도 “이젠 그만 용서하고 잊으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게다가 독일 형법은 이런 성추행 사건의 공소시효가 10년에 그쳐, 가해자들에게 법적 처벌을 하거나 피해보상을 청구할 길도 요원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독일 가톨릭은 ‘성범죄는 해당 사제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답변하고 있다. 성추문 사건이 거의 매일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2월, 춘계 독일주교단회의가 열려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이 회의 주제는 ‘노령화 사회’였다. 참다못한 로이트 호이서 법무장관은 이날 밤 TV 인터뷰를 통해 “가톨릭교회가 이번 사태를 어떤 식으로 해명할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가톨릭 측은 즉각 ‘국가의 종교 간섭’이라며 반발했다. 독일 가톨릭 최고수장 촐리치 대표주교는 “24시간 안에 장관의 발언 철회가 있기를 기대한다”며 “내일 메르켈 총리에게 전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촐리치 대주교의 교지(敎旨)는 엉뚱하게도 집권당 기민련의 분열을 불러오고 있다. 독일 정계의 열성 가톨릭 신자들은 주로 기민련에 포진해 있는데, 이는 기민련 당수인 메르켈 총리가 루터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메르켈 이전의 기민련에서는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강세였다. 1960년대 당수였던 에어하르츠를 빼고는 아데나워부터 콜까지 당수 모두가 가톨릭 신자였다. 더욱이 메르켈 총리는 가톨릭이 싫어하는 이혼과 재혼 경력이 있는 여성. 열혈 가톨릭 정치인들이 보기에 메르켈은 시류에 편승하는 ‘제멋대로 정치인’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노동생산성을 고양하기 위해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겠다’는 메르켈의 가족 정책은 “구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부인이 봤으면 친구 하자고 반겼을 좌파 정책”이라는 힐난을 듣는다. 그들은 메르켈을 10년째 당수로 둔 기민련이 언제부터인가 세속화해 이제 당명에 포함된 ‘기독교’가 무색하게 됐다고 비판한다.
가톨릭에 등 돌리는 독일 국민들
메르켈 총리도 가톨릭 신자들이 공격할 구실을 어느 정도 제공한 측면이 있다. 예컨대 콜 총리 같았으면 교황을 비판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텐데, 그는 유대인 학살을 부인한 피우스형제단 영입 문제로 교황을 꾸짖다시피 했다. 게다가 메르켈 총리를 에워싼 정권 실세도 모조리 개신교도다. 어느덧 가톨릭 세력이 기민련에서 소수로 몰린 듯하다. 촐리치 대주교가 가톨릭교회와 메르켈 정부를 대결구도로 만들지 않았어도, 당내 가톨릭 세력의 불만은 이미 폭발 직전으로 지난 연말 ‘참여가톨릭교도들연구모임’이 구성됐을 정도다. 가톨릭 성추문 사건으로 교회와 정치의 대립이 기민련 내부에서의 신·구교 파벌 싸움으로 번졌다. 독일에서 이런 일은 1870년대 비스마르크 시대에나 있었다.
독일에서 구교와 신교는 치열한 경쟁관계다. 이번 사건으로 신·구교 양쪽의 손익을 비교해보면 구교 쪽 손실이 더 커 보인다. 치부에 과감히 대처하지 않고 감추기에 급급한 구교에 실망한 독일 국민이 등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베를린에 자리한 카니시우스 학교는 가톨릭이 운영하는 사립 김나지움으로 명문학교에 꼽힌다. 정치가, 외교관 등 유력 집안과 부실한 공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이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 애쓴다. 이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지식만 습득할 게 아니라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훌륭한 교사와 좋은 친구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고액의 학비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더니 급기야 올해 1월 28일 모든 신문이 이 학교의 ‘교사 성추행’ 사건을 전면에 실었다. 교장인 클라우스 메르테스 신부가 “1970~80년대에 교사 2명이 7명의 학생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한 적 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한 것. 교장은 당시 재학생이던 600여 명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냈다.
神父가 성교 강요 일파만파 충격
그러나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지자 피해 신고가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 이미 12명의 전직 교사가 성추행 혐의에 올랐고, 피해자 수는 140명을 넘어섰다. 또 함부르크, 슈바르츠발트, 본, 하노버, 힐데스하임 등 독일 가톨릭이 운영하는 김나지움 교사들의 성추문 고발도 잇따랐다. 결국 가톨릭재단이 운영하는 독일 전역의 학교 및 보육·복지시설에서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학대가 수십 년간 자행됐음이 드러났다. 지금도 신고가 계속 들어와 정확한 피해 규모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롤프 미하엘 데커 씨는 14세 때 기숙사 사감신부 방으로 끌려가 강제로 항문 성교를 당했다. 그는 지금도 수치감에 시달리며 데커 씨의 다른 급우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사건의 발단이 된 카니시우스 학교에서는 종교교사였던 페터 R 신부가 가장 문제였다. 그는 8년간 별도 건물에 있는 청소년센터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에게 온갖 음란한 짓을 벌였다. 그는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비슷한 일을 저질렀다.
추악한 일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톨릭이 신성하게 여기는 교회당, 그것도 고해성사 공간에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일이 잦았다. 15세 소녀의 고해를 받는 자리에서 사제는 언급하기 곤란한 외설적 질문을 던졌고, 본인의 자위행위를 소녀에게 지켜보게 했으며, 참다못해 소녀가 뛰쳐나가자 수녀들이 아이를 붙잡고 매를 때렸다고 한다.
3월에는 독일 최고의 전통과 명성을 자랑하는 소년합창단 ‘돔슈파첸’에서 동성애 매춘 알선이 있었다는 충격적 보도가 있었다. 이 합창단은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친형 게오르크 라칭어가 오랫동안 총책임을 맡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1950년대부터 계속해서 일어난 성추행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수치와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교회에 피해와 재발 방지를 호소해도 “이젠 그만 용서하고 잊으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게다가 독일 형법은 이런 성추행 사건의 공소시효가 10년에 그쳐, 가해자들에게 법적 처벌을 하거나 피해보상을 청구할 길도 요원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독일 가톨릭은 ‘성범죄는 해당 사제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답변하고 있다. 성추문 사건이 거의 매일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2월, 춘계 독일주교단회의가 열려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이 회의 주제는 ‘노령화 사회’였다. 참다못한 로이트 호이서 법무장관은 이날 밤 TV 인터뷰를 통해 “가톨릭교회가 이번 사태를 어떤 식으로 해명할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가톨릭 측은 즉각 ‘국가의 종교 간섭’이라며 반발했다. 독일 가톨릭 최고수장 촐리치 대표주교는 “24시간 안에 장관의 발언 철회가 있기를 기대한다”며 “내일 메르켈 총리에게 전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촐리치 대주교의 교지(敎旨)는 엉뚱하게도 집권당 기민련의 분열을 불러오고 있다. 독일 정계의 열성 가톨릭 신자들은 주로 기민련에 포진해 있는데, 이는 기민련 당수인 메르켈 총리가 루터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메르켈 이전의 기민련에서는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강세였다. 1960년대 당수였던 에어하르츠를 빼고는 아데나워부터 콜까지 당수 모두가 가톨릭 신자였다. 더욱이 메르켈 총리는 가톨릭이 싫어하는 이혼과 재혼 경력이 있는 여성. 열혈 가톨릭 정치인들이 보기에 메르켈은 시류에 편승하는 ‘제멋대로 정치인’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노동생산성을 고양하기 위해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겠다’는 메르켈의 가족 정책은 “구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부인이 봤으면 친구 하자고 반겼을 좌파 정책”이라는 힐난을 듣는다. 그들은 메르켈을 10년째 당수로 둔 기민련이 언제부터인가 세속화해 이제 당명에 포함된 ‘기독교’가 무색하게 됐다고 비판한다.
가톨릭에 등 돌리는 독일 국민들
메르켈 총리도 가톨릭 신자들이 공격할 구실을 어느 정도 제공한 측면이 있다. 예컨대 콜 총리 같았으면 교황을 비판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텐데, 그는 유대인 학살을 부인한 피우스형제단 영입 문제로 교황을 꾸짖다시피 했다. 게다가 메르켈 총리를 에워싼 정권 실세도 모조리 개신교도다. 어느덧 가톨릭 세력이 기민련에서 소수로 몰린 듯하다. 촐리치 대주교가 가톨릭교회와 메르켈 정부를 대결구도로 만들지 않았어도, 당내 가톨릭 세력의 불만은 이미 폭발 직전으로 지난 연말 ‘참여가톨릭교도들연구모임’이 구성됐을 정도다. 가톨릭 성추문 사건으로 교회와 정치의 대립이 기민련 내부에서의 신·구교 파벌 싸움으로 번졌다. 독일에서 이런 일은 1870년대 비스마르크 시대에나 있었다.
독일에서 구교와 신교는 치열한 경쟁관계다. 이번 사건으로 신·구교 양쪽의 손익을 비교해보면 구교 쪽 손실이 더 커 보인다. 치부에 과감히 대처하지 않고 감추기에 급급한 구교에 실망한 독일 국민이 등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