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의 위작 사건”](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1/04/200411040500028_1.jpg)
이인성의 \'반라\'(좌) 와 \'미공개 작품전\'에 출품된 \'누드반신상\'
한국 화단에서 최고가에 거래되는 박수근의 작품은 호당 1억원이 넘는다. 또 나혜석은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이 30여점에 불과하다. 이런 화가들의 그림이 한두 작품도 아니고 무려 20여점이나 처음 공개된다면 미술계로서는 어마어마한 뉴스일 수밖에 없다.
소장자 “화랑협회 감정 못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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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감정은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다. 한 작품의 진위 여부를 두고 시비가 벌어지는 일은 사실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처럼 한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전체가 위작 시비에 휩싸인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더구나 이 작품들이 △모두 한 사람의 소장자에게서 나왔다는 점 △전시 전에 감정을 거쳐야 한다는 수차례의 권고를 소장자가 ‘화랑협회의 감정은 믿을 수 없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뿌리쳤다는 점 △국립현대미술관 등 서울의 유수한 미술관을 두고 지방인 수원미술전시관을 첫번째 공개 장소로 택했다는 점 등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랑협회는 현재 국내에서 공인된 유일한 감정기관이다.
전시된 그림을 둘러본 경원대 윤범모 교수(한국미술감정가협회장), 이채원 이인성기념사업회장, 송향선 전 화랑협회 감정위원장 등은 “전시작이 거의 다 위작이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윤범모 교수는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유치할 정도였다”며 “진위 여부를 논의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획전을 하기 위해서는 전시조직위원회를 조직해 1차로 작품의 진위를 확인하고 다시 화랑협회의 감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전시가 열렸다. 모든 작가는 고유의 선이 있고 데생 방법이 있게 마련이다. 전시작들은 그런 기본을 아예 무시한 수준이었다.” 윤범모 교수는 “이인성의 유족들이 ‘그림을 떼라’고 요구하고 박고석의 가족이 그림을 회수해 갈 때 소장자측은 한마디 반박도 못했다. 만약 그들이 이 그림이 진품이라는 확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겠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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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문제를 제기한 나혜석기념사업회의 유동준 회장은 “전시작들이 만약 진품이라면 최소한 50억원이 넘는다”며 “그 정도 가치의 그림들을 1점에 40만원 선인 감정도 받지 않은 점, 전시기간에 보험도 들지 않은 점 등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미공개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의 생전에 전시되지 않아 도록에 수록된 적은 없으나, 유족이 소장하고 있거나 감정 절차를 거쳐 진품이 확실시되는 그림에 국한된다. 어차피 완전한 감정은 있을 수 없으며 감정 이상의 대안도 없다. 그런데 감정을 못 믿겠다는 이유로 감정 자체를 안 받고 진품이라고 주장한다면 누가 그 말을 증명해 줄 수 있는가.”
유동준 회장은 전시를 앞두고 수차례 수원시와 수원미술전시관측에 전시 철회를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수원미술전시관측은 “소장자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전시를 강행했다.
그림의 소장자 윤모씨는 “독립운동을 한 시조부모가 구해 3대째 소장해 온 그림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소장자측은 “그림을 판매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감정을 거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작품을 공개해 판정받으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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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무지의 소치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위작 만들기 작업이다. 사과 정도로 대충 넘어가면 나중에는 이 위작들이 진품으로 둔갑하게 된다. 도록 회수는 물론, 기념사업회 차원에서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인 모든 대응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이채원 회장은 “소장자 본인은 물론 수원미술전시관,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 등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를 후원한 수원시 문화관광과측은 “아직 진품인지 위작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단순히 전시를 한 것은 문제가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수원시는 이번 전시에 1000만원을 지원했다.
한편 전시를 주최한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의 이석기 지부장은 이번 전시에 잘못된 점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기획 초기에는 작가의 진품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도록은 소장자 본인이 인쇄한 것이지만 협회 차원에서 회수하고 있다. 해서는 안 될 전시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미협 수원시지부의 자문을 거쳤으며 소장자의 집에 3대째 걸려 있었기 때문에 진품이 확실하다”는 수원미술전시관측의 주장은 차라리 순진하게까지 들린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감정전문가의 절대적인 부족, 비전문가들의 미술관 운영, 한 건 해보려는 성급한 공명심 등이 한데 합쳐 일어난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해프닝’으로 지나치기 힘들 듯하다. 음지에서 돌아다니던 위작들이 미술계의 허점을 이용해 양지로 나오려는 시도를 단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위작 사건”이라는 한 전문가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