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간단하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이 있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침묵의 공간에서 울리는 공기가 고막을 타고 뇌로 스며들어 감동을 만들어낸다. 옛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영성이라 불렀다. 중세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신앙심을 북돋았고 지배자의 권위를 강화했다. 오랜만에 어떤 장치도, 기술도 없이 오직 날것의 목소리와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는 경험을 했다. 11월 15일 서울 홍대 무브홀에서 열린 멈포드 앤 선즈(Mumford & Sons)의 공연이었다.
미국 밴드보다 더 미국적인 영국 밴드
밴조를 연주 중인 기타리스트 윈스턴 마셜(왼쪽)과 기타리스트 겸 리드 보컬인 마커스 멈포드. [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기타뿐 아니라 밴조, 만돌린, 아코디언을 적극 사용한 그들의 음악은 오히려 미국 컨트리와 블루그래스(밴조 연주가 곁들여진 초기 컨트리 음악)에 가까웠다. 마커스의 보컬 역시 1970년대 이후 미국 록의 멜로디와 흡사했다. 데뷔 앨범 수록곡이자 2011년 그래미어워드 최우수 록 노래 부문 후보에 오른 ‘Little Lion Man’은 그들의 방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노래다. 컨트리 음악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비트의 스트로크로 시작하는 이 곡은 기타 커팅과 밴조가 교차하며 감정을 고양한다. 밴조나 만돌린을 컨트리 음악의 전유물에서 팝의 세계로 이끌었던 R.E.M.의 ‘Losing My Religion’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그들은 이 ‘구닥다리’ 악기가 새로운 록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이런 미국적 사운드가 그들의 출신을 알게 된 애호가들을 놀라게 했고, 당시 미국 밴드보다 더 미국적인 영국 밴드라는 반응을 낳았다. 현대 대중음악의 본고장인 미국 음악을 영국에서 한 단계 발전시킨 사례는 많다. 비틀스에서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까지 이어진 그 계보를 멈포드 앤 선즈가 계승했다고 봐야 한다. 보수적인 그래미어워드가 최고상을 그들에게 안긴 것도 납득이 된다(공교롭게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그래미어워드 올해의 앨범은 모두 비미국 뮤지션이 탔다. 캐나다 출신인 아케이드 파이어, 영국 출신인 아델과 멈포드 앤 선즈, 그리고 프랑스 출신인 다프트 펑크). 그들은 이후에도 각각 북미와 유럽을 대표하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참가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발표한 네 번째 정규 앨범 ‘Delta’에서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얹는 등 안주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명성에 비해 너무 작았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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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연주자 테드 드웨인. [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이런 사실은 공연 당일 한국인과 외국인(특히 백인 남성) 관객의 비중이 엇비슷했다는 점에서도 확인됐다. 저녁 8시 정각, 무대에 오른 그들은 처음부터 관객을 압도했다. 가스펠을 연상케 하는 ‘Snake Eyes’로 한국 관객들에게 일성을 터뜨린 그들은 이후 자신들의 음악적 역량을 아낌없이 과시했다.
밴드 구성원 모두 한 악기만 소화하는 게 아니라 기타와 드럼, 밴조와 일렉트릭 기타를 오가며 재능을 뽐냈다. 공연이 정점으로 향할수록 더 큰 무대와 더 큰 사운드가 아쉽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바로 그 순간 3집 ‘Wilder Mind’에 수록된 ‘Ditmas’를 연주하던 리더 마커스가 노래 중간에 객석으로 내려왔다. 관객은 환호했지만 막바지에 그만 마이크가 끊겼다. 보컬이 없는 채로 노래가 마무리됐다. 객석은 술렁였다.
갈대처럼 고개 숙인 관객들
그때 마커스는 무대 위 나머지 멤버를 객석 한가운데로 끌어내렸다. 멤버 4명은 마이크도, 앰프도 없는 상태에서 노래와 어쿠스틱 기타, 밴조로 ‘Timshel’과 ‘Forever’를 연주했다. 바람 앞에 허리를 꺾는 갈대처럼, 침묵 속에 울려 퍼지는 그들의 목소리와 연주에 관객들은 뒷사람을 배려해 하나 둘 허리를 숙였다.숨소리조차 소음이었다. 오직 노래가 있었다. 음악이 있었다. 그 순간 홍대 앞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 음유시인들의 연주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중세의 마을 광장처럼 느껴졌다. ‘전자’는커녕 ‘전기’조차 없는 소리를 당대 밴드로부터 직접 듣는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음향 사고가 수습된 후 그들은 다시 무대에 올랐고 3곡을 더 연주했다. 대표곡인 ‘I Will Wait’로 첫 내한공연의 끝을 장식했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켜졌다. 빠져나가는 사람들 틈에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수많은 공연을 다니면서 나태해지고 익숙해진 나 자신을 돌아봤다. 2시간 공연 중 10분 남짓을 차지한, 음악의 본원적 순간을 곱씹었다. 누군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선창하면 함께 따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꼈던 과거 어느 날을 떠올렸다. 수많은 음악이 스트리밍을 타고 공기처럼 흘러가는 게 당연한 시대, 멈포드 앤 선즈는 왜 우리가 음악과 사랑에 빠졌는지에 대한 본질적 답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