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은 자기 지역의 이해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방의원은 4년 임기며 연임이 가능하다. 전국 246개 지방의회 소속 지방의원은 크게 광역의원(시·도의회)과 기초의원(시·군·구의회)으로 나뉜다. 국정 전반에 대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입법권을 가지는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의원은 각각 광역단체와 시·군·구의 행정을 감시하는 기능을 한다.
지방의원들 스스로는 “지방의원은 지위도 낮고 가진 권한도 적다”고 말한다. 국회의원과 비교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국회의원은 유급 의원보좌관제를 통해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1명, 6·7·9급 비서 1명 등 모두 6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여기에 필요에 따라 2명의 인턴까지 둘 수 있다. 반면 지방의회에는 유급 의원보좌관제가 적용되지 않아 의원이 직접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일정을 짜는 등 혼자 활동해야 한다. 일부 지방의원은 사비를 들여 비서를 두기도 하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보좌진은 아니다.
국회의원은 또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 한다’는 헌법 제45조를 통해 발언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이른바 ‘면책특권’이다. 하지만 지방의원은 이런 특권을 누릴 수 없다. 지방의회에서 행한 의원의 발언은 경우에 따라 민사상, 형사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국회의원이 갖는 불체포특권도 지방의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대만처럼 지방의원에게 국회의원과 동일한 특권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선 한국이나 일본처럼 특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처럼 철도, 비행기, 선박을 무료로 이용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방의원 스스로 느끼는 특권의식만큼은 결코 국회의원에 뒤지지 않는다. 서울 관악구의 한 주민은 “선거 때는 머슴이 되겠다고 하더니 당선만 되면 뻣뻣하게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면서 “정치인들은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고 꼬집었다. 특히 지방일수록 의원들의 특권의식은 높은 편이다. 경북 울진사회정책연구소 조상현 소장은 “지방의원들은 자신들을 특수한 존재로 여길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지방의원이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원들의 특권의식은 그들이 가진 영향력에서 나온다. 아직까지도 사업가, 대규모 자영업자, 땅부자 등 지역의 유력 인사가 지방의회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 더욱이 지역주민과 밀착해 생활정치를 하는 처지라 주민들의 민원을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가 ‘능력 있는 의원’의 기준이 된다. 주민들로서도 자신의 민원을 잘 들어주고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지방의원의 권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권한이 미미하다는 지방의원들의 ‘엄살’과는 딴판으로 지방자치법은 그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례 제정권으로 대표되는 의안 발의권이다. 헌법 제117조 제1항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자치입법권을 보장한다. 자치입법에는 지방의회가 그 지방의 사무에 관해 정하는 조례, 조례의 범위 내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그 권한에 속하는 사무를 정하는 규칙이 있다. 지방의원은 지방자치법 제39조에 규정된 것을 비롯해 기타 사업허가의 승인 등 주요 결정사항에 대한 의결권도 갖고 있다.
‘권한은 별로’라고? 천만에!
예산안 심의권도 지방의원의 큰 권한이다. 예산안 심의란 지방정부에서 편성된 예산안을 지방의회에서 심의, 확정하는 일이다. 수백억, 수천억원의 예산안 심의가 불과 수십여 명의 의원에 의해 제한된 시간 안에 심의되다 보니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철저한 검토 없이 예산안을 날림으로 심의하거나 선심성 예산 및 불필요한 예산 끼워넣기의 행태도 자주 나타난다.
질의 및 발언권도 지방의원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톡톡히 활용된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장을 압박하면서 공무원을 길들이는 데 질의 및 발언권을 사용하는 식이다. 지방의 한 구청 공무원은 “민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몇 번씩 의회에 불려가 곤욕을 치른다. 그래서 늘 의원님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도 각종 자료 요구권, 동의발의권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 지방의원이 가진 힘의 원천도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막강한 지방의원의 권한을 개인사업에 이용하기 위해 지방의회로 진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주위의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해관계가 얽힌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에 자원하는 경우도 흔하다. 땅이 많은 의원은 건설위원회, 공장주는 재정경제위원회, 숙박업 종사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에 소속되는 식이다.
지방의원은 겸직 금지 조항에 따라 의회에 자신의 직업을 보고해야 하지만, 의회에 보고하는 직업과 사실상의 직업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일부 의원은 편법을 동원해 교묘하게 사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지방의 한 구청 관계자는 “지방자치 초기에는 건설업자 출신의 지방의원이 관급공사를 수주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드러내놓고 관급공사를 수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지역 세탁’이나 하청을 통한 편법 수주는 여전하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건설업자인 A구 지방의원이 A구 내 공사를 수주하는 일은 눈치가 보여도, B구 지방의원과 짜고 서로의 지역에 입찰하면 잘 봐주는 식의 ‘지역 세탁’이 횡행한다는 것. 원계약자는 다른 사람이지만, 그 사업을 자신이 소유한 업체에 하청을 주도록 압력을 넣어 실질적으로 자신이 수주한 것과 마찬가지인 경우도 많다.
지방의원은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직간접적으로 이권에 개입하기도 한다. 서울의 C 구의원은 전반기 임기에서 건설위원회에 소속되자 지인들에게서 “돈 좀 벌었겠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초선인 C의원이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동주택을 철거하고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10억원의 토지보상비가 들어가는 사업이 있었다. C의원은 건설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따라 현장을 방문했다가 의문이 생겼다. 하필이면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공동주택을 철거하고 그곳에 놀이터를 만들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던 것.
견고한 부패 고리, 집요한 로비에 포획되기도
C의원은 그 사정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부지 선정 기간에 전직 구의원 D씨가 구청장실과 의장실을 수시로 오간 사실을 포착했다. 감사 기간 내내 구청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고 그 공공주택에 구의원과 관련된 사람이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결국 C의원의 강력한 반대로 대지 선정을 다시 하게 됐지만, C의원은 동료의원들에게 “밤길 조심해야겠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C의원은 “동네 놀이터 하나 만드는 데도 이렇게 이권이 개입되니 재건축이나 재개발 과정에서는 얼마나 많은 회유, 협박, 이권이 오갈지 짐작할 만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방의원들에게 로비가 집중되는 까닭 역시 그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일부 의원은 자신의 영향력에 도취된 듯 “이런 맛으로 지방의원 하지”라는 우스갯소리도 거리낌 없이 할 정도다. 많은 지방의원들이 자정(自淨)을 호소하고 사정기관에서도 감시의 눈을 번뜩이지만, 지방의회가 부활한 1991년부터 현재까지 2만2600여 명의 지방의원 가운데 5%에 이르는 1025명에 대해 사법처리가 이뤄졌을 만큼 로비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부패 고리는 견고하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로비가 들어오며, 한 번 포획되면 좀처럼 빠져나가기 어렵다. 로비 방법도 진화를 거듭한다. 지방의 E 시의원은 “로비가 이뤄지는 방식이 철저하다. 직접 대면해서 돈을 건네기보다 여러 단계로 우회해 건네는 것이 보통”이라고 귀띔했다. 가족은 물론 스승, 친구 등의 지인들을 통해서도 집요하게 로비가 들어온다. “그냥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전화가 걸려오면 십중팔구 뭔가를 부탁하기 위함이라는 것.
심지어 지역 국회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사업 편의를 봐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서울의 F 구의원은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지역 국회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재고를 부탁하면 참으로 난감하다. 국회의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지방의원 처지에서는 처음처럼 딱 부러지게 거절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서울 도봉구의회 김용석 구의원은 “권한이 있는 만큼 유혹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유혹을 이겨낼 자신이 없고, 부정과 비리에 타협할 사람이라면 애초 지방의회에 진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원은 ‘풀뿌리 민주주의 첨병’ ‘지역 밀착형 해결사’ 등 갖은 수사(修辭)로 묘사된다. 더욱이 지방의회는 정치 신인들이 제도권 정치로 넘어오는 관문으로 작용해왔다. 그런가 하면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지역의 유지들이 맡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냉소적 인식도 여전하다. 오늘은 비록 지방의원이지만 이를 기반으로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으로 수직상승하려는 권력욕 또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주민들이 지방의원에게 막대한 권한을 준 것은 그만큼 책임 있는 정치를 해 지방자치를 발전시켜 달라는 주문일 터. 특권의식에 젖어 책임은 지지 않은 채 갖가지 로비에 포획돼 권력만 좇는 부나방의 모습을 보려고 소중한 한 표를 던진 것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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