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의 물고기.’유진룡(52·사진) 을지대 부총장(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고위 공무원을 그렇게 표현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뜻인데, 기자에게는 이 말이 ‘그만큼 외부 압력이나 유혹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뜻으로 들렸다.
유 전 차관은 2006년 차관 취임 6개월 만에 전격 경질됐다. 청와대의 부당한 인사청탁에 맞선 게 화근이었다. 당시 “배째드리겠다”던 청와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의 말이 화제가 됐다.
행정고시 22회 출신인 유 전 차관은 28년7개월간 국가의 녹을 먹었으며, 공직을 떠난 지 2년이 넘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에 임명되면서 다시 관(官)계에 발을 들였다.
1급 공무원 출신인 그가 생각하는 ‘고위(1급) 공무원’이 궁금했다. 을지대 성남캠퍼스에서 만난 유 전 차관은 회상하듯, 그리워하듯 아련한 단어들을 던지며 이런저런 생각을 전했다. 대화 주제는 ‘1급 공무원이던 나의 경험과 생각’이었다.
‘1급 공무원’은 어떤 자리인가.
“쉽게 말하면 정점에 있는 테크노크라트다. 권한도 크고 책임도 크다. 장·차관을 보좌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다.”
요즘 1급 공무원들이 줄사표를 내고 있다. 공무원 사회를 쇄신한다는 명목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있던 일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 직후 칼을 댄 반면, 이번 정부는 1년여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 칼을 댄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정치권에선 이를 ‘공무원 사회 혁신’이라고 한다. 동의하나.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권력이 전문가 집단을 포용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이런 식으론 공직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고 공무원들의 의욕을 꺾는다. 강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걱정이다.”
지난 정권 때는 어땠나.
“(고위 공무원 쳐내기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본격화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를 정상화해야 했는데 못했다. 칼을 휘두르기 전 설득에 나서야 했는데 내 편 네 편 가르기를 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그 과정에서 고위 공무원 사회의 긍정적 기능이 사라졌다. 고위 공무원이 정치화했고 조직 내 안정성도 깨졌다. 한마디로 ‘룰’이 깨졌다.”
룰이 깨졌다?
“공무원 사회에는 일종의 룰이 있다. ‘적합한 사람을 적합한 자리에 앉힌다’는 암묵적인 룰. 공무원의 전문성을 지킨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데 이것이 노무현 정부에서 완전히 깨졌다.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리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그 룰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동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일도 안 됐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한 청와대 수석이 사석에서 ‘(공무원) 1급쯤 되면 집에 가야지’라는 발언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 일정을 잡으며 기자는 유 전 차관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2006년 인사청탁 파문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공무원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대화는 자연스레 그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인터뷰 주제가 ‘1급 공무원’이라 고위 공무원과 정치권과의 갈등, 유착 같은 얘기들이 묻어나왔다.
고위 공무원에게 정치적 외압이 많은가.
“사무관이나 과장까지는 대체로 소신 있게 행동한다. 그러나 국장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외부 압력이 많아지고 본인도 ‘여기서 나가면 뭐 하나’라는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외부 압력에 약해진다.”
외압이라면 주로 어떤 것인가. 또 외압을 넣는 곳은?
“(내 경우) 말도 안 되는 단체에 지원금을 달라거나 인사청탁이 대부분이었다. 장·차관이 무슨 행사에 참석하도록 해달라는 식의 청탁도 많았다. 외압을 넣는 곳은 대부분 국회였고 청와대도 적지 않았다.”
저항할 수 없었나.
“국장 이상 고위직이 권력자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은 ‘그만두겠다’는 뜻 아닌가. 정치가 곧 ‘자리 따먹기’라고 생각하면 (이런 현상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공무원의 정치중립을 해치는 것으로 이어져선 곤란하다. 아리랑TV 인사청탁 사건도 결국은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이 쌓이고 쌓여 터진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지난 정권은 겉으로는 ‘인사청탁을 안 한다. 인사청탁을 하면 패가망신시킨다’고 했지만, 그래서 남을 자살하게까지 만들었지만 자기들은 할 짓 다 했다. 바로 그게 문제다.”
정당하다고 볼 만한 인사청탁이나 정치적 외압은 없나.
“예를 들어, 비슷한 조건을 가진 두 사람이 있을 때 같은 값이면 정치권력이 원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자기편이라 해도 최소한 격에 맞는 사람을 보내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압은 그렇지 않다. 아리랑TV 인사청탁 문제도 그랬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니 후회 없이 살자’고 생각했다.”
정치권에서 외압을 넣으며 미안해하지는 않던가.
“미안한 마음이 없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저렇게 오만해도 되나. 권력의 꼬리를 잡았다고 저래도 되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와 대화가 안 되자 힘없는 장관이나 청와대 다른 인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청탁을 해왔다.”
통계를 보니 고위 공무원들이 재직 중이나 퇴임 후 러브콜을 많이 받는 모양인데.
“고시 출신들을 보면 과장(서기관) 말기에 특히 많이 받는다. 친구나 선후배 중에도 수억원대 연봉을 받고 자리를 옮긴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부서(문화관광부) 특성 때문인지 내 경우엔 러브콜이 많지 않았다. 있어도 대부분 ‘돈 안 되는 곳’(대학 등)들이었다.”
그런 선후배들이 부럽진 않았나.
“나는 문제라고 본다. 고위 공무원을 지낸 사람이 기업 같은 곳에서 수억원씩 연봉을 받으며 사는 것, 더 잘살기 위해서 일을 찾는 것은 잘못이다. 고위 공무원 출신 대부분이 ‘정치’를 꿈꾸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았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주변에서 ‘철없는 소리’라고들 한다. 내가 좀 까칠하다. 솔직히 공무원 스타일이 아니란 걸 잘 안다. 고시에 붙은 뒤 공무원연수원에서 교육받을 때도 교수부장이 내게 ‘당신은 아무래도 공무원 하기 힘들겠다. 퇴소하는 게 어떻겠나’라고 했을 정도다.(웃음)”
유 전 차관은 2006년 차관 취임 6개월 만에 전격 경질됐다. 청와대의 부당한 인사청탁에 맞선 게 화근이었다. 당시 “배째드리겠다”던 청와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의 말이 화제가 됐다.
행정고시 22회 출신인 유 전 차관은 28년7개월간 국가의 녹을 먹었으며, 공직을 떠난 지 2년이 넘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에 임명되면서 다시 관(官)계에 발을 들였다.
1급 공무원 출신인 그가 생각하는 ‘고위(1급) 공무원’이 궁금했다. 을지대 성남캠퍼스에서 만난 유 전 차관은 회상하듯, 그리워하듯 아련한 단어들을 던지며 이런저런 생각을 전했다. 대화 주제는 ‘1급 공무원이던 나의 경험과 생각’이었다.
‘1급 공무원’은 어떤 자리인가.
“쉽게 말하면 정점에 있는 테크노크라트다. 권한도 크고 책임도 크다. 장·차관을 보좌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다.”
요즘 1급 공무원들이 줄사표를 내고 있다. 공무원 사회를 쇄신한다는 명목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있던 일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 직후 칼을 댄 반면, 이번 정부는 1년여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 칼을 댄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정치권에선 이를 ‘공무원 사회 혁신’이라고 한다. 동의하나.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권력이 전문가 집단을 포용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이런 식으론 공직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고 공무원들의 의욕을 꺾는다. 강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걱정이다.”
지난 정권 때는 어땠나.
“(고위 공무원 쳐내기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본격화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를 정상화해야 했는데 못했다. 칼을 휘두르기 전 설득에 나서야 했는데 내 편 네 편 가르기를 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그 과정에서 고위 공무원 사회의 긍정적 기능이 사라졌다. 고위 공무원이 정치화했고 조직 내 안정성도 깨졌다. 한마디로 ‘룰’이 깨졌다.”
룰이 깨졌다?
“공무원 사회에는 일종의 룰이 있다. ‘적합한 사람을 적합한 자리에 앉힌다’는 암묵적인 룰. 공무원의 전문성을 지킨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데 이것이 노무현 정부에서 완전히 깨졌다.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리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그 룰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동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일도 안 됐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한 청와대 수석이 사석에서 ‘(공무원) 1급쯤 되면 집에 가야지’라는 발언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 일정을 잡으며 기자는 유 전 차관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2006년 인사청탁 파문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공무원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대화는 자연스레 그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인터뷰 주제가 ‘1급 공무원’이라 고위 공무원과 정치권과의 갈등, 유착 같은 얘기들이 묻어나왔다.
유진룡 전 문광부 차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 공무원 인사의 ‘룰’이 깨졌다고 말했다. 고위 공무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일할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
“사무관이나 과장까지는 대체로 소신 있게 행동한다. 그러나 국장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외부 압력이 많아지고 본인도 ‘여기서 나가면 뭐 하나’라는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외부 압력에 약해진다.”
외압이라면 주로 어떤 것인가. 또 외압을 넣는 곳은?
“(내 경우) 말도 안 되는 단체에 지원금을 달라거나 인사청탁이 대부분이었다. 장·차관이 무슨 행사에 참석하도록 해달라는 식의 청탁도 많았다. 외압을 넣는 곳은 대부분 국회였고 청와대도 적지 않았다.”
저항할 수 없었나.
“국장 이상 고위직이 권력자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은 ‘그만두겠다’는 뜻 아닌가. 정치가 곧 ‘자리 따먹기’라고 생각하면 (이런 현상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공무원의 정치중립을 해치는 것으로 이어져선 곤란하다. 아리랑TV 인사청탁 사건도 결국은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이 쌓이고 쌓여 터진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지난 정권은 겉으로는 ‘인사청탁을 안 한다. 인사청탁을 하면 패가망신시킨다’고 했지만, 그래서 남을 자살하게까지 만들었지만 자기들은 할 짓 다 했다. 바로 그게 문제다.”
정당하다고 볼 만한 인사청탁이나 정치적 외압은 없나.
“예를 들어, 비슷한 조건을 가진 두 사람이 있을 때 같은 값이면 정치권력이 원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자기편이라 해도 최소한 격에 맞는 사람을 보내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압은 그렇지 않다. 아리랑TV 인사청탁 문제도 그랬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니 후회 없이 살자’고 생각했다.”
정치권에서 외압을 넣으며 미안해하지는 않던가.
“미안한 마음이 없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저렇게 오만해도 되나. 권력의 꼬리를 잡았다고 저래도 되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와 대화가 안 되자 힘없는 장관이나 청와대 다른 인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청탁을 해왔다.”
통계를 보니 고위 공무원들이 재직 중이나 퇴임 후 러브콜을 많이 받는 모양인데.
“고시 출신들을 보면 과장(서기관) 말기에 특히 많이 받는다. 친구나 선후배 중에도 수억원대 연봉을 받고 자리를 옮긴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부서(문화관광부) 특성 때문인지 내 경우엔 러브콜이 많지 않았다. 있어도 대부분 ‘돈 안 되는 곳’(대학 등)들이었다.”
그런 선후배들이 부럽진 않았나.
“나는 문제라고 본다. 고위 공무원을 지낸 사람이 기업 같은 곳에서 수억원씩 연봉을 받으며 사는 것, 더 잘살기 위해서 일을 찾는 것은 잘못이다. 고위 공무원 출신 대부분이 ‘정치’를 꿈꾸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았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주변에서 ‘철없는 소리’라고들 한다. 내가 좀 까칠하다. 솔직히 공무원 스타일이 아니란 걸 잘 안다. 고시에 붙은 뒤 공무원연수원에서 교육받을 때도 교수부장이 내게 ‘당신은 아무래도 공무원 하기 힘들겠다. 퇴소하는 게 어떻겠나’라고 했을 정도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