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윤리법의 퇴직 공직자 취업 제한 규정에도 1급 퇴직 공무원의 민간기업 재취업은 꾸준히 늘고 있다. 업무 관련성이 있는 업체로의 재취업은 ‘공직자의 이해 충돌’ 문제를 가져온다.
고위 공무원들의 민간기업 재취업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5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수요는 경기불황 속에서도 꾸준하다. 특히 1급을 지낸 고위 공무원들의 몸값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 몸담았던 부처 유관 기업, 각종 협회, 산하단체 등에서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한 고위 공무원들의 민간기업 러시는 계속될 것이다.
퇴직 후 평균 2개월여 만에 다시 출근
‘주간동아’는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와 한나라당 구본철 김태환 윤두환 정갑윤 주광덕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2007~2008년 재취업한 1급 상당 고위 공무원들의 ‘퇴직 후 재취업 현황’을 분석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1급 상당 고위 공무원들의 재취업 전 최근 3년간 소속 기관과 부서, 퇴직 일자와 재취업 일자, 취업 업체와 취업 직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표 참조).
퇴직한 1급 상당 고위 공무원들의 경우 유관 기업으로의 재취업이 눈에 띈다. ‘주간동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90명 중 68%에 이르는 61명이 재직 당시 부처와 관련된 업체에 들어갔다. 퇴직 부서의 산하단체 및 건설근로자공제회, 해외건설협회 등 관련 협회의 장으로 간 경우도 32명(35.6%)에 달했다. 국방부 퇴직자 14명은 해당 부처의 정책결정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업체에 취직했다. 금융감독원, 국세청,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와 산하기관 등 경제 관련 부처 퇴직자 28명 중 18명도 유관 기업으로 재취업했다. 예를 들면 국방부 출신들은 두산인프라코어, 항공우주산업, LIG넥스윈, 현대중공업 등 방위산업체로, 금융감독원 출신들은 부산은행, 광주은행, 메리츠증권, 알리안츠보험 등 금융계 회사로 재취업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1급 상당 고위 공무원이기 때문에 민간기업에 재취업하는 경우 부사장, 상무, 상무보대우 등 임원직급으로 가게 된다. 고문이나 사외이사도 재취업 시 흔히 따라붙는 직책이다. 조사 대상자 90명 중 사외이사는 8명(8.9%), 고문(상근, 비상근 고문 포함)은 16명(17.8%)에 이른다. 1급 상당 고위 공무원들의 퇴직 후 재취업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퇴직 후 재취업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2.19개월이었다. 조사 대상자 중 재취업까지 24개월, 22개월이 걸린 두 사람을 제외하면 재취업에 걸린 시간은 평균 1.72개월로 크게 낮아진다. 특히 퇴직과 동시에 재취업한 공무원들도 50명(56%)에 이르러 ‘갈아타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고위 공무원들의 재취업을 단지 전관예우, 공무원에 대한 로비 등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달라”고 강변한다. 국내 대형 로펌 관계자는 “고위 공무원들이 로펌에 오는 경우가 늘었지만 이는 그들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로펌에 오는 대부분의 공무원은 회계사, 세무사 등의 라이선스를 갖고 있다”며 “고위 공무원 출신 고문들은 변호사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세세한 분야까지 전문성을 갖고 컨설팅한다”고 설명했다.
“전문성 vs 전관예우” 끊이지 않는 구설
국방부 출신 1급 공직자들의 군수업체 재취업이 두드러졌다. 사진은 방위사업청이 발주해 한진중공업이 수주한 해군 차기 고속정(PKX).
이런 주장에도 퇴직 고위 공무원들의 민간기업 재취업을 둘러싼 구설은 끊이지 않는다.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 후 유관 기업에 종사하면서 불법 로비를 벌이는 일을 근절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해군본부의 군수지원계획 수립, 군수물자 소요제기, 조달·보급을 담당하는 해군본부 군수참모본부장이 조선업체로 가거나 지식경제부(구 산업자원부)의 반도체 산업 기본정책을 수립 및 지원하는 반도체전기과 공무원이 국내 반도체 회사에 취직하는 등 오해의 소지가 있는 유관 기업 재취업도 계속되는 상황이다(표 참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처럼 실제로 퇴직 공무원과 기업의 부적절한 관계로 오인받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05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두산인프라코어에 ‘지게차 가격을 담합했다’며 15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06년 1월 142억원으로 조정됐지만 두산은 이에 불복하고 법무법인 세종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 3개월 후 세종은 두산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관여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인 공정위 상임위원을 고문으로 영입했고, 공정위 약관제도팀장을 지낸 이를 상무로 영입했다. 두산은 2006년 10월 고등법원에서는 패했지만 2007년 대법원 선고에서는 일부 승소했다. 당시 세종과 두산은 어떤 로비나 공정위와의 연관성도 없다고 밝혔지만, 소송 과정에서 기업과 공무원 간 유착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들이 로비스트로 활동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전문성을 우선시한다지만 실제로는 ‘해당 부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국 사회에선 아직 인맥을 무시할 수 없다. 퇴직 관료들이 공직에 있으면서 쌓은 인맥과 정보는 기업이 업무를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2008년 8월29일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재취업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석 달 뒤인 11월28일 정부가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일부 개정안은 공직자 재산등록 범위를 조정하고,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에게 재산 등록 및 공개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만 담고 있을 뿐이다. 입법예고 당시 개정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퇴직 후 취업 제한 강화’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후 정부 각 부처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일부 조정이 있었다. 퇴직 공무원은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인데, 재취업 제한은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기본권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관점에서 다시 논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물론 기존의 공직자윤리법도 취업을 제한한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직급 또는 직무 분야에 종사하였던 공무원과 공직 유관단체의 임·직원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하였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 또는 영리사기업체의 공동이익과 상호협력 등을 위하여 설립된 법인·단체에 취업할 수 없다’(공직자윤리법 제17조 ①항)는 조항이다(상자 기사 참조). 그럼에도 조항이 느슨해 사실상 비윤리적 관행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무원들이 재취업을 예상하고 퇴직하기 3년 전부터 이른바 ‘노는 부서’에 적(籍)을 두고 ‘경력세탁’을 하기 때문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취업 승인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관행을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던 것. 업무 연관 기업의 취업이 제한되는 퇴직 전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자본금 50억원 미만, 연간 외형 거래액 150억원 미만 기업이나 협회에 ‘일정액 이상의 보수’를 받는 조건으로 취업할 때도 해당 분야를 관할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확인이나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편 공무원 재취업의 지나친 제한은 공무원의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의 한 공무원은 “현행 규정에 의하면 사실상 퇴직하기 직전 3년간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냥 쉬라는 뜻 아니냐”며 “결국 공무원이 전문성을 잃고 난 뒤에나 재취업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퇴직 공무원의 전문성을 사장시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사회적 손실” … 공직자윤리법 강화 목소리
부산지방중소기업청장을 하다 2008년 5월 퇴직 후 한국산업기술시험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종 원장은 “외부 공무원이 민간으로 가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내부 승진으로 조직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외부로 나가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발휘할 수 있다”며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 처음 왔을 때 조직이 정체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이 수혈됨으로써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공무원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이익 측면보다 유관 기업에 재취업해 사회에 미치는 손실이 더 크다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방송통신대 이선우 교수(행정학)는 “퇴직 공무원의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는 점도 분명히 있고, 억울하게 취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며 “그럼에도 유관 기업에 재취업하면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 로비해 비리와 연관될 수 있다. 특히 공무원들이 퇴직 후를 생각해 공직 재직 시 관련 업체에 편의를 봐주는 일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공직자윤리법의 강화는 필요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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