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비리와 관련,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지난해 12월4일 구속된 노건평 씨.
검찰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기인 정화삼(전 제피로스 골프장 대표, 구속), 정광용(구속) 형제와 함께 세종증권 최대 주주인 세종캐피탈 인사에게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청탁 사례금 명목으로 29억63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가 드러났다. 건평 씨에겐 알선수재 혐의 외에도 본인이 실질적으로 운영한 정원토건의 공금 횡령 및 세금 포탈에 따른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까지 추가됐다.
오래전부터 고향 땅 순차 매입
초점은 대가성 여부로, 정씨 형제가 받은 29억여 원 가운데 얼마가 건평 씨에게 건너갔고 이 돈이 어떤 용도로 쓰였는가 하는 점이다. 12월30일 첫 공판에서 건평 씨는 검찰 수사 초기 단계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것과 달리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청탁 대가로 3억원을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정씨 형제 사건과 병합되는 재판에서 추가 수수 여부와 함께 이 돈의 단계별 흐름에 대한 규명이 비중 있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29억여 원의 행방뿐 아니라 검찰이 건평 씨가 횡령한 것으로 결론 내린 정원토건 법인 자금 15억원, 그리고 건평 씨 가족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세종증권 주식투자로 얻은 억원대 수익의 이동 경로 역시 사건과 떼어놓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되는 부분이 바로 건평 씨의 부동산 투자다. 2006년 2월 세종캐피탈 측에게 받은 돈이 건평 씨 진술대로 3억원뿐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고, 비슷한 시점에서 이뤄진 건평 씨 가족의 세종증권 주식투자 수익금 이동 흐름을 포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원토건 법인 자금 약 15억원 가운데 5억2500만원은 건평 씨가 고향 후배 B씨의 명의를 빌려 부동산을 구입하는 데 쓴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에 건평 씨는 첫 공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사적 용도로 부동산을 매입한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법인 자금 운용 실례로 보아 세종캐피탈 측에서 건평 씨에게 전해진 돈 역시 여러 채널을 통해 개인적인 부동산 투자로 일부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주변에서도 이런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주간동아’는 건평 씨가 노무현 정부 당시 꾸준히 땅을 매입했고, 특히 세종증권 관련 비리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까지도 부동산을 사들인 사실을 확인했다.
건평 씨는 오래전부터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부근의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1972, 73, 88, 90, 96년 건평 씨가 순차적으로 매입한 것으로 ‘주간동아’가 확인한 부동산은 주택을 포함해 20여 필지에 이르며, 면적도 1만㎡에 육박한다. 국토해양부가 산정한 현재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부동산 평가액을 계산하면 4억~5억원대에 이른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는 정원토건 이사인 부인 민미영 씨의 명의로 2003년 7월23일 본산리 22-X번지 등 5필지를 사들였고, 이듬해 9월13일에는 건평 씨의 명의로 본산리 96-X번지의 임야 1051㎡를 매입했다.
1997년 매입한 거제시 성포리 317-XX번지 일대 6필지 2300여 ㎡는 2007년 개인에게 매각하거나 거제시에 공공용지로 넘겨줬지만 부동산은 더 늘었다.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가 완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6년 11월에는 본산리 29-X번지의 549㎡ 밭을 수개월 전부터 가등기까지 해가면서 사들였으며, 2008년 4월21일에는 본산리 30-X번지의 744㎡ 전답을 1억9500만원에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2005년 9월과 11월에는 B씨의 명의로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 45X번지 외 4필지를 업무상 보관하던 정원토건 법인 자금 5억2500만원으로 매수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10월에도 아들 명의로 982㎡ 사들여
노건평 씨와 아들 상욱 씨가 10월과 11월 매입한 땅의 등기부등본.
11월에 매입한 땅은 노 전 대통령 사저인 본산리 30-6번지와 인접해 있다. 30-6번지 대지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구속)이 농협으로부터 헐값에 인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휴켐스의 정승영 전 대표이사가 2004년 12월28일 매입한 것으로, 사실상 노 전 대통령에게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는 땅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10월 이 땅을 1억9455만원에 매입했고, 2008년 7월 소유권 절반을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증여했다.
정 전 대표이사는 박 회장의 최측근으로 태광실업 자회사인 정산개발의 대표이며, 세종증권 및 휴켐스 인수 관련 비리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대지 북쪽으로도 정 전 대표이사가 2004년과 2005년 매입한 2만2000여 ㎡ 임야 2필지가 넓게 자리하고 있는데, 건평 씨가 구속 직전 매입한 땅이 공교롭게도 이 땅 사이에 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사실, 그리고 법인 자금으로 부동산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건평 씨의 부동산 불리기에도 의혹의 눈길이 쏠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