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유니클로 플래그샵, 소호의 유니클로 및 질샌더 부티크. 뉴욕에 진출한 일본의 셀렉트샵 비아 버스스톱 내부, 럭셔리 브랜드 ‘질샌더’ 컬렉션(왼쪽부터). 뉴욕 패션위크에서 수상한 ‘질샌더’의 디렉터 라프 시몬스(아래).
절제된 미니멀 디자인으로 90년대를 풍미했고 한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모은 질샌더는 한때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러나 경영 실패가 이어지면서 이탈리아의 패션하우스 프라다에 매각됐다가 2006년에는 런던의 자산운용회사 ‘캐피탈 파트너스(Capital Partners)’에 재매각되는 비운을 겪었다.
최근 벨기에 출신의 재능 있는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가 영입돼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가운데, 9월1일 캐피탈 파트너스는 질샌더를 온워드의 유럽 자회사 격인 ‘지보(GIBO Co.SpA)’에 매각한다고 공표했다.
온워드는 일본 어패럴 업계에서 매출 규모 1, 2위를 다투는 거대 그룹이다. ICB, 로즈불렛(Rose Bullet), 23구, 네이브(Nave), 오대륙(五大陸) 등 남성복과 여성복을 합쳐 10개 이상의 내수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 장 폴 고티에, 미소니, 캘빈 클라인, 폴 스미스, 소니아 리키엘 등 여러 럭셔리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일본에서 전개하고 있는 회사다. 또한 도나 캐런, 마르니, 조제프, 제이 프레스 등을 직수입하고 있는데, 특히 조제프와 제이 프레스는 일본 내 영업으로 얻은 자신감을 기반으로 영국과 미국의 본사를 매수함으로써 현재 전 세계 판권을 온워드가 가진 상태다(서울 압구정동에 자리한 ‘조제프’의 플래그십 매장과 백화점 매장들은 온워드의 지휘하에 진출해 있다).
세계 패션계에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온워드는 내수 브랜드였던 ICB와 네이브를 뉴욕에 진출시켰다. 특히 네이브는 뉴욕 패션위크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인 디자이너를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했는데, 최근까지 뉴욕에서 활동했던 재미 한국인 디자이너 리처드 채(Richard Chai)가 바로 이 자리를 맡았다.
네이브는 뉴욕의 소호 한복판 머서 스트리트(Mercer Street)에 플래그십 매장을 여는 등 과감한 현지화 전략을 펴나가고 있다. 또한 드리스 반 노튼을 포함해 전 세계 특색 있는 디자이너들을 일본에 소개하는 인기 셀렉트샵, 비아 버스스톱(Via Bus Stop)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 진출시키는 발빠른 행보도 보여주고 있다.
온워드는 ‘지보’를 통해 조제프를 이탈리아에서 생산, 관리하도록 하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전략으로 패션기업 매수 이후 떨어질 수 있는 브랜드의 퀄리티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조제프는 유럽과 미국은 물론, 일본 내수시장에서도 판매가 상승하고 있다. 이는 세계 패션시장 진출을 숙원사업처럼 생각하는 한국 패션브랜드에게도 중요한 시사가 될 듯하다. 온워드는 수년간 세계 최고 디자이너 브랜드의 신발을 제조하는 회사들 매수에 총력을 기울이다 질샌더라는 월척을 낚아올렸다는 후문이 나오고 있다.
라프 시몬스 취임 이후 다시 한 번 세계 각국의 패션 매거진들과 백화점 바이어들에게서 각광받는 질샌더를 일본 기업 온워드가 향후 어떻게 이끌어갈지 세계 패션산업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요즘 일본 의류업계에서 화제를 몰고 다니는 기업은 ‘유니클로(Uniqlo)’를 이끄는 ‘패스트 리테일링’(Fast Retailing Co.Ltd.·이하 패스트)이다.
‘패스트’는 ‘유니클로’의 일본 내 히트에 힘입어 2001년 상하이를 시작으로 런던의 매장을 오픈했고, 2006년에는 꿈에 그리던 미국 시장에도 입성했다. 뉴욕 소호의 플래그십 매장 오픈을 위해 일본 최고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사토 가시와를 기용했고, 인테리어 역시 서양에서 흠모하는 디자이너 가타야마 마사미치에게 맡기는 등 정성을 쏟아부었다. 소호의 플래그십 오픈에 맞춰 열린 파티는 지금도 뉴욕 패션피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일본 문화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 행사’로 꼽힐 정도다.
한국에서도 롯데와 손잡고 2006년 오픈해 전국 11개 매장을 운영하는 유니클로는 현재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 8개 국가에서 대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드디어 2009년에는 패션의 발신지 파리의 오페라 지구에 대규모 매장을 열 예정이다. 유니클로가 패스트의 내수 브랜드가 세계무대에 진출한 예라면, ‘아메리칸-재패니즈 캐주얼’을 추구하는 브랜드 ‘씨어리(Theory)’의 매수는 글로벌화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미국 및 유럽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럭셔리 캐주얼 브랜드로 인기가 높은 ‘씨어리’를 운영하는 ‘링크 씨어리 홀딩스(Link Theory Holdings)’의 모회사가 바로 ‘패스트’이기 때문이다.
원래 ‘패스트’는 현재 뉴욕을 근거로 활동하는 엘리 타하리가 1997년 창업한 브랜드 ‘씨어리’의 일본 내 파트너였는데, 2003년 역으로 브랜드를 삼켜버린 것이다. 이를 위해 자회사인 ‘링크 씨어리 홀딩스’를 창립해 2006년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 헬무트 랭을 프라다로부터 인수했다. 또한 밀라노에 근거를 둔 전위적인 브랜드 ‘아스페시(Aspesi)’, 프랑스 캐주얼 브랜드 ‘꼼뜨와 데 꼬또니에(Comptoir des Cotonniers)’도 매수하는 데 성공해 글로벌 패션마켓에서의 파워를 입증했다. 패션 산업에 대한 엄청난 식욕을 보이며 패스트는 2007년 미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백화점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의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패스트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낙찰에 실패, 두바이의 석유 재벌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해외 브랜드의 국내 상륙에 움츠러들거나 국내 기업들끼리 해외 브랜드 수입 쟁탈전을 벌이기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글로벌 패션 시장에 진출해온 일본의 기업들을 보면 살짝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경제 위기가 바로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한국 패션계가 새로운 판로를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