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3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4개의 형광등

댄 플래빈의 ‘매복 중 살해된 이들을 위한 기념비4’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09-07-01 13: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4개의 형광등

    댄 플래빈, ‘Monument 4 for those who have been killed in ambush:to P.K who reminded me about death’, 1966, 붉은 형광등, 243.8×243.8cm

    하나, 둘, 셋, 넷. 벽에 걸린 4개의 붉은 형광등 용도가 궁금하시죠?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정육점에 걸린 형광등이 생각났는데, 조명이 뿜어내는 예사롭지 않은 붉은빛 때문이었죠.

    정육점 형광등의 색깔이 붉은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대개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붉은색은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고기를 선홍빛으로 물들여 육질을 좋게 보이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때때로 정육점에 통째로 걸린 도살된 소나 돼지들은 죽음의 잔혹한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육점 형광등 같은 댄 플래빈(Dan Flavin, 1933~1996)의 작품에는 ‘매복 중 살해된 이들을 위한 기념비4’(내게 죽음을 일깨운 P.K에게 헌정함)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이 붙었습니다.

    그의 작품 대다수가 ‘무제’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매우 구체적으로 주제를 언급했는데요. 4개의 붉은 형광등은 무엇을 기념하는 것일까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작품의 제작연도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제작된 이 작품은 당시 미군 전사자들에 대한 신문 헤드라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수백명의 미군이 매복 중 집단 생매장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작품에 붙은 부제 또한 아리송합니다.

    부제의 P.K는 당시 미국 화단에서는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그의 형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화가이자 구겐하임미술관의 전속 사진가이던 폴 카츠(Paul Katz)로 밝혀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그에게서 전쟁의 상흔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댄 플래빈은 6·25전쟁 당시 미군 소속의 기상관측 기술자로 한국에서 복무하기도 했는데요. 냉전이 낳은 6·25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했던 그가 제작한 이 작품은 따라서 베트남전쟁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경험한 모든 전쟁이 부른 죽음에 대한 기념비라고 해석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4개의 평범한 형광등은 위나 아래서 보면 팽팽하게 시위가 당겨진 석궁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석궁이 겨냥한 새하얀 벽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보통 전쟁기념비가 피라미드형으로 영웅을 꼭대기에 배치하고 나머지 인물을 아래쪽에 배치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4개의 형광등이 동일한 위치에 있으며 어떤 영웅도 없습니다. 전쟁이 남긴 음울한 피만이 낭자할 뿐입니다.

    기존 기념비의 형식과 내용을 파격적으로 넘어선 그의 기념비는 미술사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데요. 형광등뿐 아니라 거기서 뿜어 나오는 빛이 머무는 공간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조각의 영역을 한없이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레디메이드’ 재료인 형광등이 시공간을 넘어 상징적인 전쟁기념비로 변신한 이유는 시대와 미술사에 대한 댄 플래빈의 남다른 인식 덕분입니다.

    New Exhibition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4개의 형광등

    미술과 놀이展

    이우림展 작가 이우림은 섬세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현실의 익숙한 공간과 인물을 표현한다. 꽃무늬 원색 옷을 입은 인물과 배경은 현실적이면서 또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 관객으로 하여금 몽롱한 긴장감을 갖게 한다/ 7월25일까지/ 표갤러리/ 02-543-7337
    2009 미술과 놀이展 2003년부터 개최돼온 ‘미술과 놀이展’은 놀이라는 대중적 언어를 통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취지로 마련됐다. 올해는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마오쩌둥 등 우리 시대 스타를 다룬 작품 150여 점으로 구성된다. 부제는 ‘아트 인 슈퍼스타(Art in Super Star)’/ 7월17일~8월23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02-580-1600

    호경윤 ‘아트인컬처’ 수석기자 www.sayho.org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