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작 ‘Climbers’.
지난해 12월20일부터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이상원 씨의 그림도 멀리서 본다면 이런 유행에 편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에 조금만 더 다가가 살펴본다면 오해는 곧 사라질 것이다.
이씨의 그림에는 ‘회화’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지칭하는 붓자국(brushwork)이 많다. 즉, 붓과 물감을 이용해 작가가 ‘그리는 행위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얼마나 잘 그렸느냐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사각형의 캔버스와 물감이 합쳐져 회화라는 매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작가는 스키장, 수영장, 한강 둔치, 등산 장면 등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주소재로 삼았다. 작가가 한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정교한 인물 묘사 아기자기한 내면 추구
작가는 먼저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찾아가 수많은 사진을 찍어 이미지를 수집한다. 그리고 그 공간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구도와 시점을 잡은 뒤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나열한다. 이때 유화물감이 가진 특성과 기법, 예를 들면 물감을 캔버스에 흘리기, 물감 뿌리기, 두껍게 칠하기, 얇게 칠하기, 거친 붓자국이 남게 칠하기 등을 최대한 활용해 자연, 인간, 인공구조물을 각기 다른 뉘앙스로 그린다. 다시 말해 물체에 따라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잔디밭과 물은 자연의 느낌을 부각하고, 더불어 표현 자체에서도 자연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물감을 흘러내리게 하거나 부드럽게 칠한다. 반면 파라솔, 도로, 표지판 등 인공물은 물감이 다른 구역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테이프를 붙이고 칠함으로써 형상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도록 한다.
그 다음 사람들을 정교하게 그려 넣는다. 사람들의 작은 동작까지 매우 세밀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 장소에 실제 있었던 사람이 그림을 본다면 아마 자기 자신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매스미디어 사회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흐름에 맞춰 미술도 스펙터클하거나 강렬한 작업이 많다. 하지만 이씨는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아기자기한 내면을 추구한다. 관람자들은 그의 그림에서 숨겨진 회화적 요소를 하나 둘씩 발견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는 그의 그림을 통해 안식처 같은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전시는 1월20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