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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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기 배달, 올 겨울 따뜻했네

‘연탄은행’ 자원봉사자 추위 녹이는 구슬땀 매년 연탄값 올라 서민들 하루가 걱정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8-01-09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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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온기 배달, 올 겨울 따뜻했네
    혹시 나를 기억하세요? 원통형 몸에 22개의 눈을 가지고 있고(내 친구 중엔 눈이 25개인 녀석도 있죠), 평소엔 탄탄하고 새까만 피부를 자랑하지만 한번 열을 내면 새빨개졌다 결국 하얗게 부서져버리는 나를 기억하나요?

    그래요, 내 이름은 ‘연탄’입니다.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차가운 새벽녘 내복 차림으로 나와 오들오들 떨면서 갈아줘야 하는 귀찮은 존재죠. 부지깽이 힘 조절을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부서지기 일쑤인 예민한 존재이기도 하고요.

    혹 내가 내보낸 독가스 때문에 동치미 국물을 들이켰던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연탄불 구이 전문점’이나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 맛’이라는 노랫말처럼 나는 맛을 돋우는 기특한 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연탄이 웬말이냐고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뿜어내는 온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답니다.

    석유값 폭등 지난해부터 수요 폭증



    나는 1월2일 새벽 5시, 서울엔 한 곳뿐인 동대문구 이문동 연탄공장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른 새벽, 공장 앞에 줄서 있는 연탄소매상 인파를 보신다면 요즘 내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실감하실 겁니다. 경기가 안 좋아지고 석유값이 폭등하면서 지난해부터 나를 찾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거든요. 이 공장의 경우 지난해의 2배 가까운 양(하루 평균 35만 장)을 찍어내느라 쉴 틈이 없을 정도니까요.

    나는 태어나자마자 인천에서 온 한 소매상 부부의 2.5t 화물차로 옮겨졌습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기 위해 새벽 3시에 집을 나섰다고 합니다.

    “1980년대까지 계속 하향세였다가 요새 연탄보일러 설치한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그래도 연탄이 기름에 비하면 싸니까. 그만큼 다들 살기 힘들다는 얘기죠.”(연탄소매상 박모 씨)

    소매상 부부의 첫 손님은 인천의 한 봉사단체였습니다. 오늘 나를 사준 분들이기도 하죠. ‘연탄은행’이라는 이름의 이 봉사단체는 2002년 강원도에서 처음 만들어진 뒤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소외계층에 연탄을 제공하는데, 요즘 갑자기 추워진 탓에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이 많아졌다네요.

    사랑의 온기 배달, 올 겨울 따뜻했네

    연탄나눔 봉사를 하는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정부에서 발표하기는 전국적으로 19만 가구, 저희 단체에선 26만 가구 정도가 연탄을 쓰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 연탄 지원이 필요한 가구는 10만이 넘고요.”(인천 연탄은행 정성훈 목사)

    인천 연탄은행을 맡고 있는 정성훈 목사는 가장 어려운 것이 봉사자 구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연말엔 각 기업의 후원 등이 있어 든든했지만, 연초가 되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아쉬워하네요. 연탄 후원 못지않게 연탄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도 번거로운 작업이거든요. 막 태어나면 3.6kg, 건조한 상태에선 3.3kg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나를 수천 장 나르는 게 쉬운 일이겠어요?

    다행히 오늘은 지역 구청 자원봉사센터에 등록된 아주머니 세 분이 오셨어요. 자녀를 키운 뒤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수년째라는 이분들은 스스로를 ‘선수’라고 칭합니다. 면장갑에 고무장갑, 검정 앞치마 차림에서부터 연탄집게 하나당 2개의 연탄을 꽂아 양팔로 4개의 연탄을 나르는 ‘폼’이 정말 ‘선수’답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한 줄로 죽 늘어서 전달하겠지만, 오늘은 일일이 들고 나르는 방식을 택해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수백 장의 연탄을 30여 분 만에 뚝딱 해치우시네요. 아주머니들은 연탄나눔 활동을 지난해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혼 때 연탄보일러를 땠는데 10여 년이 넘어서 보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몸은 고돼도 다른 사람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져요.”(봉사자 성경자 씨)

    “저는 어릴 때 좀 땠던 것 같은데 제가 직접 연탄을 갈아본 기억은 없어요. 고맙게도 혜택 받고 살아왔으니 남에게 베푸는 게 당연하죠.”(봉사자 전영숙 씨)

    오늘 내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김모 할아버지 댁이에요. 70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1급 장애인인 40대 아들을 돌보며 사는 가정이죠. 기름보일러를 때는 단칸방에 아들이 누워 있는 탓에 노부부는 옆 공터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외풍이 심한 이 공간에 온기를 주는 것은 연탄난로와 전기장판뿐이에요. “겨울엔 이거(연탄) 없으면 못 살지.”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흐뭇하게 혼잣말을 하십니다.

    “당분간 추위 걱정 덜었어…정말 고마워”

    하루 세 번 정도 연탄을 갈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12시간마다 한 번씩 두 차례만 갈아준다고 해요. 때문에 할아버지처럼 연탄 한 장이 아쉬운 사람들에겐 매년 이어지고 있는 연탄값 인상이 보통 걱정이 아닙니다.

    얼마 전 산업자원부는 무연탄 수급 안정을 위해 올해 4월부터 연탄값을 40% 올리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장당 340원이던 내 몸값이 400원을 넘게 된 것이죠. 내년 겨울을 생각하면 걱정이라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래도 오늘 나를 선물 받고는 한결 마음이 놓이신다고 합니다. “당분간 추위 걱정은 덜었다”며 나를 옮겨온 봉사자들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시네요. 옷에 검댕이 묻고, 연탄가루 때문에 코밑도 까매졌지만 “봉사활동이라는 게 마약 같아서 한번 하면 또 하고 싶다”는 아주머니의 말은 다 이러한 보람을 뜻하는 것이겠죠.

    나 역시도 한 시절 수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줬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답니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잖아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물론 나는 누군가의 지적처럼 “치명적 결함이 있는” 연료인지도 몰라요. 기름이나 가스처럼 ‘뒤끝이 깨끗한’ 연료와 경쟁이 안 되는 거죠. 하지만 이런 나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답니다. 내 인기가 불경기의 상징이라니 어쩌면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그래서 혹 나를 구태의연하게 느낄지도 모를 당신이,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 이상으로 한 번 더 나를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여전히 세상엔 내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요. 더불어 당신 마음의 온기도 그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연탄나눔에 참여할 수 있는 곳]

    연탄은행 www.babsang.or.kr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www.lovecoal.org

    ‘주간동아’가 따뜻한 세상의 이야기를 찾습니다

    ‘주간동아가 만난 따뜻한 세상’에 소개할 사연, 인물 또는 단체를 찾습니다. 세상을 훈훈하게 하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귀띔해주세요. 훌륭한 업적을 세운 분도 좋지만,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힘은 작지만 착한 움직임에서 시작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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