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4월10일 두바이 셰이크 모하메드 궁에서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지도자와 대화하고 있다.
“기업인들이 원하는 게 있다면 나한테 직접 전화해도 좋다.”
MB는 지난해 12월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국가의 CEO(최고경영자)가 되고자 한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거침없이 나에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MB의 이 발언은 두바이를 이끄는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지드 알 마크툼에게 ‘배운’ 것이다.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의 설명을 들어보자.
“어리석다·미친 사람 소리 들었죠”
“지난해 4월 당선인이 두바이를 방문해 모하메드 국왕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투자자가 국왕에게 휴대전화로 애로사항을 전했다. 당선인이 그 모습을 보고 느낀 게 많은 것 같다.”
MB는 4월10일 두바이에서 모하메드를 만났는데, 두 사람은 ‘창조적 리더십’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모하메드가 먼저 물었다.
“고가도로를 헐고 청계천을 복원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처음엔 어리석다(stupid)는 말을 들었죠.”
“나도 미친(crazy)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하하.”
모하메드가 통치하는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7개 토후국 중 하나다. 모하메드의 지도자로서의 지위는 ‘국왕’이라는 표현보다는 ‘족장’이라는 단어가 적확하다. 두바이가 중동의 보석이 된 것은 120만명의 ‘족(族)’을 이끄는 ‘장(長)’의 리더십 덕분이다.
“모두가 사막을 그저 황무지라고 부를 때 그들만은 그곳이 황금의 땅이 되리라 믿었다. 아랍어로 두바이는 ‘작은 메뚜기’라는 뜻이다. 7개 토후국 중 가장 작은 두바이는 열심히 그리고 멀리 뛰고 있다. 자신의 몸길이보다 높게 뛰는 메뚜기의 점프가 지금 두바이의 모습이다.”(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두바이의 경쟁력은 MB가 강조한 ‘글로벌’과 ‘실용’에서 나온다. 동아시아의 ‘샌드위치’에게도 ‘두바이 모델’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모하메드는 ‘우리가 세계 각국의 자본가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세계의 자본가가 우리를 원하게 될 것’이라면서 두바이의 엔진을 켰다. 여기서 잠시, 그의 어록(語錄)을 살펴보자.
“나라를 부흥하는 데 국적 타령은 필요 없다.”
“미래를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은 사람은 과거의 노예 처지에 머무르게 된다. 어려운 도전을 생각하지 않고는 밝은 미래를 논할 수 없다.”
“경제는 말(馬)이요, 정치는 마차다. 말은 마차를 끌 수 있지만, 마차가 말을 끌 수는 없다. 일은 신이 주신 축복이다.”
“사슴은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사자보다 날쌔야만 한다는 걸 머리에 되새긴다. 사자는 눈 뜨자마자 굶어죽지 않기 위해선 사슴보다 더 빨라야 함을 깨우친다. 당신이 사슴이든 사자든 다른 이보다 빨라야 성공할 수 있다.”
MB가 모하메드의 창조적 리더십을 ‘흉내내겠다’고 나선 만큼, 중동의 소국 두바이는 ‘먼 이웃나라’가 아닌 ‘지금’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키워드다. 데이비드 엘던 두바이국제금융센터(DIFC) 회장이 MB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으로 선임된 것도 의미가 작지 않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포함한 외국인들에게 왜 한국 같은 나라가 일류국가 단계에 오르지 못하는지가 수수께끼였다. 한국은 훌륭한 인재와 첨단기술, 삼성 LG 같은 글로벌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립된’ 느낌이다.”
두바이는 세계화 전략으로 돈·사람·기업을 빨아들이는 ‘부의 깔때기’로 거듭났다.
“훌륭한 인재 보유에도 한국은 고립된 느낌”
신시도에서 부안 쪽으로 뻗은 새만금 방조제. 이명박 당선인은 새만금 개발과 관련해 ‘두바이식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두바이 모델을 ‘마천루 경제’라고 깎아내리기는 어렵다. 엘던 위원장이 이끈 DIFC를 톺아보면 MB의 ‘머릿속’을 엿볼 수 있다. ‘엘던’이라는 인물은 언론에 상세히 소개됐으나 DIFC가 어떤 조직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DIFC는 두바이에서 전 지구적으로 움직이는 자본(돈+사람+기업)을 ‘당겨오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DIFC는 두바이에서 가장 너른 길인 ‘셰이크 자이드 로드’에 있다. 두바이 금융의 허파 구실을 하는 이곳은 중동의 오일달러를 비롯해 세계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심장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세워진 DIFC의 게이트는 돈이 모였다가 퍼져나가는 ‘입출구(入出口)’를 나타낸다. 두바이는 알려진 것과 달리 ‘석유 부국’이 아니다. 마천루로 상징되는 인프라는 DIFC가 유치한 ‘자본’ 덕분이다.
엘던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말 한국에서 MB를 만났는데 “석유자금을 포함해 외국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새만금 사업은 앞으로 10년, 20년은 더 걸린다. 당신이 은행에 넣어두기 힘든 자금을 주선해줄 수 있겠느냐”고 MB가 엘던 위원장에게 협조를 부탁했다고 한다. 엘던 위원장의 인수위 참여도 그즈음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바이의 발전 전략은 관광·무역·금융 허브화다. 엘던 위원장은 지난해 10월26일 기자간담회에서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을 거론하며 “서울은 관광도시라기보다는 비즈니스 도시로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개발 여지가 많다. 랜드마크가 될 혁신적인 빌딩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두바이는 외국의 기술과 사람을 데려오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고도 했다.
동아시아 허브가 되겠다는 말과 정책은 지금까지 많았다. 그러나 말만 그럴듯했을 뿐 우물 안 개구리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의 규모와 배경이 다른 두바이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이식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두바이가 보여준 ‘실용주의’ ‘세계화’가 선진화의 필요조건이라고 자유주의자들은 입을 모은다.
요컨대 MB노믹스의 열쇳말은 ‘고립의 탈’을 벗겨내는 ‘세계화’다. 적극적인 개방정책으로 돈·사람·기업이 모이는 ‘허브’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엘던의 영입을 새만금 프로젝트 등으로 국한해 좁게 보는 시각이 있는데, 새만금을 한국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은 두바이 모델의 일각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MB노믹스의 두바이식 ‘세계화’는 뉴라이트그룹의 이론가로서 새 정권의 이데올로그로 평가되는 안병직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서울대 명예교수)의 ‘캐치업’ 이론과도 맥이 닿는다. 안 소장은 마오쩌둥(毛澤東) 이론을 응용한 반봉건사회론으로 진보학계를 대변하다가 중진자본주의론→캐치업 이론으로 이동하면서 우파 사상가로 자리매김했다.
“선진국과 후진국 간에 자유롭게 기술이 이전되고 정보가 소통된다면, 그리고 후진국이 선진 기술과 제도를 수용할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경제성장을 개시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게 캐치업 이론의 요지로, “다국적 자본을 유치해 그것을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국가개조 수준의 세계화 전략’이 요구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분야는 철강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다. 그러나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포스코 같은 기업 10개를 새로 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텔은 지난해 초 25억 달러 규모의 투자처를 놓고 계산기를 두들기다 중국을 선택했는데, 한국으로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큰 기업’ 한 곳을 놓친 셈이다.
실용적 목표지향주의자 추구
세계화 속도는 눈부시다. 두바이는 돈·사람·기업을 끌어들이는 일이라면 나라를 뒤집어도 좋다는 발상으로 정책을 개혁했다. 사공일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은 “세계화 시대에 경제 입지에 관한 한 국경은 이제 칸막이로서의 의미를 잃었다”면서 “기업하기 좋은 요건을 만드는 것은 세계화 시대의 요청이자 절체절명의 명제”라고 주장했다.
MB노믹스는 경쟁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유시장’을 강조한다. 한국 사회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新)보수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좌파 진영에선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토목경제까지 등장했다”며 MB노믹스의 전개를 우려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문제는 서구사회가 앓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결과다. 지나친 기업 위주 정책이 비정규직의 확산과 만성 실업을 낳았고, 사회양극화의 심화와 새로운 빈곤을 초래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된 결과 가운데 하나였다.”
MB는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이념에 상관없이 실속 있게 목표를 달성해가는 ‘실용적 목표지향주의자’가 되겠다면서 ‘신발전 체제’ 구상을 발표했는데 “경제 선진화와 삶의 질 향상이 함께 가고, 성장의 혜택이 서민과 중산층에 돌아간다”는 게 이 구상의 요지다.
‘이명박 정부’는 목표한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면서 ‘성장의 질’도 높이겠다는 ‘쪽빛 구상’을 과연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금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행로가 전변(轉變)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