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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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궁 ‘거울의 방’ 매력은 어디 갔나

  • pisong@donga.com

    입력2007-08-22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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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사유궁 ‘거울의 방’ 매력은 어디 갔나

    최근 보수를 끝내고 새로 개장한 베르사유궁 ‘거울의 방’을 찾은 관광객들.

    서울에서 창덕궁, 경복궁이 볼만하듯 파리에서도 루브르궁과 뤽상부르궁, 베르사유궁이 볼만하고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최고의 미술관 루브르궁은 정작 궁으로서는 매력이 떨어진다. 아름답기로는 앙리 4세의 두 번째 부인인 마리 드 메디치가 로마풍으로 세우고 화가 루벤스가 장식을 맡은 뤽상부르궁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장엄함까지 따진다면 역시 베르사유궁이 최고다.

    베르사유궁의 ‘거울의 방’이 얼마 전 보수를 끝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베르사유궁을 찾았다. 여름철 관광성수기여서 관광객이 무척 많았다. 표를 사는 데만 1시간 30분, 또 궁에 들어가는 데 1시간을 뙤약볕 아래서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해서 보게 된 거울의 방은 그러나 실망스러웠다. 예전과는 달리 뭔가 확 달라진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처음 만들어진 17세기 당시 ‘거울의 방’은 산업과 건축이 만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때 유리산업은 첨단산업에 속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그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베네치아산 유리는 인기가 좋아 큰 돈벌이가 됐다.

    대중 관광시대 우아한 정원 모습 비춰보기 어려워



    중상주의자 콜베르(1619~1683)가 이걸 그냥 보고 있을 리 없었다. 프랑스의 유리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베네치아산 유리 수입을 금했다. 그는 자신이 육성한 프랑스산 유리의 품질을 증명해 보일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이런 그에게 미학적으로 아이디어를 댄 사람이 건축가 망사르(1598~1666)였다. 길이가 73m나 되는 거울의 방은 우선 바깥 정원 쪽으로 17개의 대형 창이 나 있고, 이 창들을 마주한 안쪽 벽에 창과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된 17개의 거울이 놓여 있다. 각각 17개의 창과 거울은 통창, 통거울이 아니고 578개의 조각을 아름답게 맞춘 것이다.

    ‘ㄷ’자 형태의 베르사유궁 건물은 바깥쪽으로만 창이 나 있다. 그런데 거울의 방은 안쪽 벽에 창 모양의 거울이 자리해 마치 방 양쪽으로 창이 난 것 같다. 게다가 그게 진짜 창이었다면 건물 안쪽의 답답한 모습만 (창 밖으로) 보였을 텐데, 사실 거울이기 때문에 정원 쪽의 아름다운 바깥 풍경을 투영하고 있다.

    이런 거울의 방의 매력은 오늘날과 같은 대중 관광시대에는 느끼기가 쉽지 않다. 거울에 비치는 것이 꽃이 만발한 베르사유궁의 정원이 아니라 방을 꽉 채운 관광객들의 모습일 뿐이기 때문이다.

    거울의 방은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한 귀족들이 바깥 정원 풍경을 배경으로 거울에 비칠 때 비로소 매력적인 곳이 된다. 1789년 베르사유궁을 습격한 남루한 옷차림의 시위대가 거울의 방에 섰을 때 그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시위대는 거울을 부쉈다. 그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에 화가 났을 테고, 이 방이 왜 아름다운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사유궁의 정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장엄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보는 사람이 그 방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는 ‘거울의 방’의 매력은 혁명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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