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테드 터너, 꿈이 있는 승부사</b> 켄 올레타 지음/ 이중순 옮김/<br>청림출판 펴냄/ 234쪽/ 1만3000원
테드 터너는 위성의 위력에 눈뜬 인물이다. 위성을 이용하면 독과점 구조에 젖어온 방송업계를 뒤흔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위성, 그것은 커다란 진전이었습니다. 나는 이 산을 넘어가면 무엇인가 볼 수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열어젖히는 식이었죠. 나는 계속해서 움직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는 조그만 요트로 아메리카컵 요트대회에서 우승했던 사람입니다.”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새로운 케이블 네트워크는 1980년 6월1일 첫발을 내디뎠지만 처음부터 모든 일이 술술 풀렸던 건 아니다. 처음 5년 동안 CNN은 간신히 현상유지하는 수준이었고, 80년대 후반 들어서야 조금씩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CNN이 일대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는 방송을 시작한 지 꼭 10년째 되던 해 터진 걸프전이었다. 대부분 방송사가 바그다드 현지의 직원들을 철수시킨 상황에서 CNN은 현지 실황중계를 함으로써 시청률이 급등하게 됐다. 마침내 그는 1991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다.
그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 게 아니라 남이 보지 못하는 글로벌 뉴스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먼저 보고 실천한 것이다. NBC 사장인 로버트 라이트는 테드 터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먼저 확실한 것을 봅니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그림을 바라보지만, 테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거죠. 그리고 그가 보고 난 뒤에야 그게 모두에게 분명해지는 겁니다.”
그는 비즈니스 면에서뿐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기인에 가까운 행동과 언행으로 뉴스의 초점이 됐다. 권위 있는 ‘아메리카컵’ 요트 경주대회의 우승자이고, 세계 평화주의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유명한 배우이자 반전운동가인 제인 폰다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에게 화려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한순간의 판단 실수로 CNN 경영권을 상실했다. 그가 내린 결정 가운데 최악은 타임워너사 제럴드 레빈의 제안을 받아들여 타임워너와 터너 브로드캐스팅사의 합병에 동의한 일이다. 물론 테드 터너가 처음 의도한 대로 터너 브로드캐스팅사가 주도해 NBC를 인수했더라면 그의 말년은 화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터너 브로드캐스팅사의 주식 19%를 갖고 있는 타임워너사와 제럴드 레빈의 반대로 인수건은 무산되고 말았다.
동업자 시절의 테드 터너(왼쪽)와 제럴드 레빈.
레빈이 합병건을 들고 테드 터너를 찾았을 때 당시 그의 아내이던 제인 폰다가 비행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테드 터너가 머물던 목장으로 차를 몰면서 제인 폰다는 “제 남편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여자의 직감이었을까. 제인 폰다는 “단 한 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모든 게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죠”라고 훗날 회고했다.
제럴드 레빈은 메모해온 10가지 포인트, 즉 ‘터너 브로드캐스팅사와 타임워너의 조합이 왜 완벽한가’를 설명하며 터너를 설득했다. 제럴드 레빈은 합병 과정에서 거듭 수직적인 결합이 아니라, 테드 터너에게 충분한 자율권이 주어지는 파트너 관계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좋은 상황이 계속될 때만 통했다. 후에 두 회사의 합병은 최악의 조합으로 판명났다. 테드 터너는 CNN 경영권은 물론 자신의 의도대로 CNN을 이끌어갈 수 있는 모든 힘을 상실했다.
인수·합병(M·A)에서 파트너 관계란 말처럼 쉽지 않다. 갑과 을의 관계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매우 명확한 부분이다. 두 회사의 결합이 최악으로 달려가면서 테드 터너는 재정적으로도 큰 손해를 보게 됐다. 타임워너와 AOL이 합병할 당시 72억 달러의 가치를 지녔던 그의 주식은 2002년 8월에는 17억6000달러로 뚝 떨어졌다. 터너와 마찬가지로 합병 주역이던 레빈의 재산 역시 4억 달러에서 1000만 달러로 폭락했다.
테드 터너는 잘못된 매각 결정으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삶에 대한 용기를 잃었을 뿐 아니라, CNN에 대한 통제권도 잃었다. 하지만 그는 글로벌 뉴스방송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처음으로 실천에 옮기는 데 성공한 인물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