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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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의 삶을 사는 ‘여성 자화상’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10-23 16: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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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곡의 삶을 사는 ‘여성 자화상’

    늘어나다-손

    질곡의 삶을 사는 ‘여성 자화상’

    어시장 , 늘어나다-연, 섬 (왼쪽부터)

    ‘페미니즘’이란 말만 들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비뚜름한 눈으로 경계심을 갖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페미니즘이란 말이 일반화된 1980년대 중반 이후 ‘나는 페미니즘 작가’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도발’로서 그 모든 이성, 비이성적 비판과 맞서겠다는 뜻이 되었다.

    10월17일 7년 만에 개인전을 연 윤석남씨(65)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를 페미니즘 작가라 부르며, 실제로 페미니즘의 치열한 전선에서 한 치도 물러선 적이 없는 작가다. 결혼 후 뒤늦게 혼자서 미술공부를 시작하여 43살에 첫 개인전을 연 그는 1985년 김인순, 김진숙 등 민중미술계 여전사들과 뜻을 모아 ‘시월모임’과 ‘반에서 하나로’ 전을 열어 큰 사회적 울림을 얻는다. 그러나 그는 페미니즘 작가라는 정체성을 의식하고 민중미술의 역사적 의미에 공감했음에도 그 스스로는 ‘운동’의 전략에 적합한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민중미술을 접하고 ‘아, 내가 이런 걸 기다렸구나’라는 감격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것을 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2년 동안 작품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민중미술에게 빚진 느낌이 있지요. 내 작품이 페미니즘에 경도된 인상을 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빚을 열심히 갚으려는 걸 거예요.”

    일민미술관서 11월30일까지

    90년대 초·중반 민중미술, 페미니즘 미술의 전도사들 중 상당수가 자연으로 ‘전향’할 때 그의 페미니즘은 더욱 격렬한 빛을 내뿜었다. 그는 결이 거칠고 둥글어 목재로 쓸모없는 나무를 주워다 얼굴을 그렸다. 서늘한 표정을 가진 여성의 얼굴은 어머니들과 딸들을 땅에서 일으켜 세우는 토템이 되었다. 비단을 씌운 분홍색 의자엔 갈고리를 박아 여성으로 사는 고단함과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의지를 형상화했다.



    질곡의 삶을 사는 ‘여성 자화상’

    작품 ‘종소리’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윤석남.

    모성의 시기와 정신분열적 분홍색 시기를 거친 그는 모두 신작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를 통해 일련의 ‘자화상’들을 선보인다. 버려진 나뭇조각, 폐드럼통을 자르고 모아 거울을 바라보듯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은 조각들은 대개 그네에 앉아 심장에서 길게 늘어난 팔로 무언가를 잡으려 하고 있다. 공간에 비해 작품의 수가 결코 적지 않으나, 전시장은 외로움으로 가득하다. 작가와 눈빛을 나누는 조선의 기생 이매창의 모습을 담은 ‘종소리’도 그 외로움과 욕망의 뿌리가 깊고 같은 것임을 확인하게 한다. 그 공허함과 외로움은 너무나 절절하고 강력한 것이어서 관람객들은 금세 그것이 무언가의 부재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동지 혹은 남편인가? 아니면 나-작가-여성의 목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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