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프로축구 선수의 사생활에 대해 들었다. 올 시즌 프로축구에서 대활약을 펼치고 있는 K선수가 잘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서른 살까지는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였다.
얘기는 K선수가 일찌감치 미래의 국가대표로 꼽히던 A대 재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고향이 시골이던 K선수는 잠시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 때문에 연습을 게을리했다. 이를 눈치챈 코치는 끈질긴 추적 끝에 K선수의 ‘연애현장’을 덮쳤다. 그 코치는 징계나, 최근 여자 프로농구에서 문제가 된 구타 대신 그에게 볼펜 열 자루와 A4용지 100장을 던졌다. ‘그동안의 연애과정과 반성의 뜻을 빠짐없이 기록하라’는 지시였다.
100장의 반성문을 완성한 K선수에게 코치는 “대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서른 살까지 여자를 멀리하라”고 충고했다. K선수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겨두었다고 한다.
K선수는 지금까지 축구선수로서 모범적인 길을 걸어오고 있다. 깨끗한 사생활로도 정평이 나 있다. 코치의 충고가 조금 무리한 듯 들리긴 했어도 K선수는 그 말에 담긴 진의를 알았기 때문이다.
프로농구 99∼2000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SBS의 대형 슈터 김성철(24·1m96)도 은사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삼일상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 입학한 김성철은 당시까지만 해도 그저그런 센터였다. 그러나 ‘호랑이’ 최부영 경희대 감독을 만나면서 그의 농구인생은 달라졌다. 최감독은 센터로는 드물게 농구 센스와 슛 동작이 좋은 김성철을 ‘슈터’로 변신시키기로 작정했다. 그에 대한 최감독의 특별 조련이 시작됐다.
“3점 슛 라인 안으로 들어오면 너는 죽는다. 그 전에 무조건 슛을 쏴라.” 최감독의 독특한 주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센터로 골밑 플레이만 주로 해온 김성철에게 드리블하며 3점 슛 쏘는 가드의 일이 힘든 것은 당연했다.
김성철은 정말 말 그대로 숱하게 얻어맞았다. 그는 이렇게 대학 1, 2학년을 보냈다. 그러나 3학년이 되면서 김성철은 두각을 나타냈다. 큰 키에서 터지는 정확한 그의 3점 슛은 어느 팀을 만나건 수비(블로킹)하기 어려운 공포의 대상이 됐다. 여기에 원래부터 자신있던 골밑 플레이까지 가세해 원숙미가 더해졌다. 대학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경희대가 대학농구에서 ‘자줏빛 돌풍’을 일으킨 것도 같은 시기였다.
대학입학 당시 또래 중 랭킹 5위권에 머물렀던 김성철은 대학 졸업 후 조상현-황성인에 이은 전체 3순위로 SBS에 지명됐다. 그러나 당시 그는 “1순위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이런 평가는 1년 뒤 사실로 입증됐다. 김성철은 프로 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신인상을 차지했다. “어차피 용병센터들이 판을 치는 프로시대가 되면 센터보다 슈팅 능력을 겸비한 만능선수가 장래성이 있다”는 최감독의 선견지명이 적중한 것이다.
김성철은 지금도 최부영 감독과 통화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을 정도로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다. 김성철에게 스승은 어떤 존재일까. 호랑이 감독 최부영은 그에게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얘기는 K선수가 일찌감치 미래의 국가대표로 꼽히던 A대 재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고향이 시골이던 K선수는 잠시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 때문에 연습을 게을리했다. 이를 눈치챈 코치는 끈질긴 추적 끝에 K선수의 ‘연애현장’을 덮쳤다. 그 코치는 징계나, 최근 여자 프로농구에서 문제가 된 구타 대신 그에게 볼펜 열 자루와 A4용지 100장을 던졌다. ‘그동안의 연애과정과 반성의 뜻을 빠짐없이 기록하라’는 지시였다.
100장의 반성문을 완성한 K선수에게 코치는 “대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서른 살까지 여자를 멀리하라”고 충고했다. K선수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겨두었다고 한다.
K선수는 지금까지 축구선수로서 모범적인 길을 걸어오고 있다. 깨끗한 사생활로도 정평이 나 있다. 코치의 충고가 조금 무리한 듯 들리긴 했어도 K선수는 그 말에 담긴 진의를 알았기 때문이다.
프로농구 99∼2000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SBS의 대형 슈터 김성철(24·1m96)도 은사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삼일상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 입학한 김성철은 당시까지만 해도 그저그런 센터였다. 그러나 ‘호랑이’ 최부영 경희대 감독을 만나면서 그의 농구인생은 달라졌다. 최감독은 센터로는 드물게 농구 센스와 슛 동작이 좋은 김성철을 ‘슈터’로 변신시키기로 작정했다. 그에 대한 최감독의 특별 조련이 시작됐다.
“3점 슛 라인 안으로 들어오면 너는 죽는다. 그 전에 무조건 슛을 쏴라.” 최감독의 독특한 주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센터로 골밑 플레이만 주로 해온 김성철에게 드리블하며 3점 슛 쏘는 가드의 일이 힘든 것은 당연했다.
김성철은 정말 말 그대로 숱하게 얻어맞았다. 그는 이렇게 대학 1, 2학년을 보냈다. 그러나 3학년이 되면서 김성철은 두각을 나타냈다. 큰 키에서 터지는 정확한 그의 3점 슛은 어느 팀을 만나건 수비(블로킹)하기 어려운 공포의 대상이 됐다. 여기에 원래부터 자신있던 골밑 플레이까지 가세해 원숙미가 더해졌다. 대학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경희대가 대학농구에서 ‘자줏빛 돌풍’을 일으킨 것도 같은 시기였다.
대학입학 당시 또래 중 랭킹 5위권에 머물렀던 김성철은 대학 졸업 후 조상현-황성인에 이은 전체 3순위로 SBS에 지명됐다. 그러나 당시 그는 “1순위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이런 평가는 1년 뒤 사실로 입증됐다. 김성철은 프로 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신인상을 차지했다. “어차피 용병센터들이 판을 치는 프로시대가 되면 센터보다 슈팅 능력을 겸비한 만능선수가 장래성이 있다”는 최감독의 선견지명이 적중한 것이다.
김성철은 지금도 최부영 감독과 통화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을 정도로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다. 김성철에게 스승은 어떤 존재일까. 호랑이 감독 최부영은 그에게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