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은 강릉 오죽헌 몽룡실. 안영배 제공
먼저 보물로 지정된 오죽헌은 조선 전기에 지어진 고택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오죽헌 입구에서는 5만 원권 화폐 인물인 신사임당과 5000원 권에 담긴 율곡의 출생지라는 점을 들어 ‘세계 최초 모자(母子) 화폐인물 탄생지’라고 설명해놓은 안내문을 볼 수 있다.
세계 최초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
풍수적으로 오죽헌은 외손봉사(外孫奉祀)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딸의 자손, 즉 외손이 대를 이어 제사를 지내왔기 때문이다. 이 고택을 지은 조선 전기 문신 최응현은 5남 6녀 중 둘째 딸(강릉 최씨)에게 집을 물려줬다. 당시만 해도 아들딸 차별 없이 재산을 골고루 상속하는 게 전통이었다. 강릉 최씨는 남편 이사온과의 사이에 외동딸(용인 이씨)을 낳았고, 그가 이 집을 물려받았다. 용인 이씨가 다시 딸 5명을 낳고, 그중 넷째 딸의 아들 권처균이 묘소를 돌본다는 명목으로 집과 전답을 상속받아 외손봉사가 이어졌다.오죽헌이라는 택호는 권처균의 호에서 유래했다. 안동 권씨인 그는 집 주변에 까마귀처럼 검은 빛을 띠는 대나무, 즉 오죽이 많이 자라는 것을 보고 오죽헌을 자기 호로 삼았다. 이후 이 집과 일대는 안동 권씨 집성촌이 됐다.
한편 용인 이씨의 둘째 딸이 신사임당이다. 율곡은 오죽헌에서 태어나 자라며 터 기운을 듬뿍 받았다. 율곡이 16세 되던 해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외할머니 용인 이씨가 사랑을 다해 율곡을 키웠다. 율곡은 용인 이씨가 병석에 들자 벼슬을 버리고 강릉으로 내려가 탄핵을 받았을 만큼 외할머니에게 극진했다.
안채, 사랑채 등 여러 건물이 모여 있는 오죽헌에서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는 곳은 율곡이 태어난 몽룡실(夢龍室)이다. 국내 도가(道家) 전승에 따르면 신사임당은 장어가 못에서 튀어 올라 검은 용으로 변한 뒤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 몽룡실이라는 이름은 이 태몽을 떠올리게 한다.
딸에서 딸로 전해진 고택

오죽헌의 명물 배롱나무. 율곡이 오죽헌에서 뛰놀 때부터 있던 나무다. 안영배 제공
몽룡실 앞에서 바라보이는 산 모양도 눈길을 끈다. 풍수에서 안산(案山)으로 부르는 이 산은 끝이 붓처럼 뾰족한 문필봉 형상이다. 조선 유학자들이 학문적 성공과 벼슬길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선호하던 모양이다.
한편 오죽헌 경내에서 핵심 건물 중 하나인 안채를 기준으로 보면 또 다른 풍수 세계가 펼쳐진다. 집 뒤 산줄기가 마치 살아 있는 용이 꿈틀거리듯이 내려온다. 그 좋은 기운이 맺힌 장소가 안채다. 그 앞쪽으로는 미인의 눈썹처럼 아름답게 생긴 아미산이 보인다. 이런 형상은 대개 여성이 귀하게 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게다가 안채를 기준으로 왼쪽 청룡 산줄기보다 오른쪽 백호 산줄기가 훨씬 발달한 모양새다. 이 또한 이곳에서 남자보다 여자의 활동이 왕성할 것임을 보여준다. 오죽헌이 딸에서 딸로 이어지고, 신사임당 같은 걸출한 인사도 배출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관동 지역 제일의 고택으로 꼽히는 선교장(船橋莊)은 또 어떨까. 이곳은 1만3300m2(약 4000평) 정도에 이르는 드넓은 규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쟁 때 소실된 것을 빼고도 본채만 100여 칸, 부속 건물을 포함하면 300칸이나 된다. 긴 행랑채 안으로 가족 공간인 안채·동별당·서별당·외별당이 있고, 바깥주인과 손님이 사용하던 열화당·활래정 등도 남아 있다. 부속 건물로는 약방·공방·곳간 등을 배치한 구조다. 현재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선교장은 오랜 기간 조선의 숱한 풍류객이 즐겨 찾은 명소로 유명하다.
재물운 깃든 연못

선교장 활래정. 이 연못가의 물이 선교장의 재물운에 기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동아DB
이내번은 이후 강릉 남대천 하류(현 견소동 일대)의 염전을 구매해 운영하면서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특히 경영 능력이 탁월했던 권씨 부인이 부를 일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안이 번성하자 이들은 좀 더 넓은 집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내번이 당시 살던 집 주위를 둘러보는데 족제비가 무리 지어 이동하더니 소나무가 울창한 야산 자락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내번은 그 주변을 살펴보다가 그곳이 하늘이 점지한 명당임을 알아차리고 새집을 지어 이사했다. 그곳이 현 선교장이다.
명당을 알려주는 ‘지표 동물’로 통하는 족제비가 점지해둔 터에 살게 된 이후 이내번 집안은 더 큰 부를 쌓아나갔다. 대관령 동쪽인 관동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만석꾼 집안으로 성장했다. 이곳이 재물 명당임을 알려주는 증표는 여러 개다. 먼저 선교장 매표소 입구에서 앞쪽을 바라보면 야트막하지만 둥글게 생긴 봉우리가 보인다. 이른바 노적봉으로, 이 터에 사는 사람이 전답 많은 부자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출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3000m2(약 900평) 규모 연못가의 활래정(活來亭)이라는 정자도 눈에 띈다. 활래정은 건물의 반은 땅 위, 나머지 반은 연못 안에 들어가 있다. 돌기둥으로 정자를 받쳐놓은 구조다. 선교장 안채로 통하는 평대문 앞 우물에서 솟은 물이 이 연못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이 연못가의 물이 선교장의 재물 기운을 풍성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풍수에서 물은 집안의 재물 기운이 바깥으로 새는 것을 막아주는 보호막이며, 동시에 기운을 배가하는 증폭기 구실도 한다. 게다가 활래정 자체는 선교장의 재물 기운을 대변하듯 토기(土氣)가 왕성하다. 이곳에서 쉬엄쉬엄 노닐며 재물 기운을 체험한다면 것은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 강릉 경포대에서 가까운 오죽헌과 선교장 두 고택을 풍수 피서 명당으로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