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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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밀 항법부터 우주 비밀 해독까지… 핵시계 시대 열린다

[이종림의 사이언스 랩] 중국·유럽 연구진, 토륨-229 원자핵 전이 주파수를 시계 신호로 바꾸는 데 성공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6-07-04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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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륨-229 원자핵이 들어 잇는 결정을 이용한 핵시계 장치. 오스트리아 빈공과대 제공

    토륨-229 원자핵이 들어 잇는 결정을 이용한 핵시계 장치. 오스트리아 빈공과대 제공

    인류가 시간을 재는 기준이 원자 속 전자에서 원자핵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토륨-229 원자핵의 에너지 변화를 이용한 핵시계가 처음으로 실제 시계처럼 작동했다. 핵시계는 기존 원자시계보다 더 정밀하고 안정적인 시간 기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암흑물질 탐색과 물리 법칙의 기초를 검증할 새로운 도구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칭화대가 주도한 중국 연구진은 원자핵을 시간 기준으로 삼는 핵시계 작동을 입증했다. 비슷한 시기 오스트리아 빈공과대와 독일 국립계량연구소 등이 참여한 유럽 공동연구진도 핵시계를 구현했다고 보고했다.

    기존 원자시계보다 안정성 향상

    현재 가장 정밀한 시간 측정 장치는 원자시계다. 괘종시계가 진자의 규칙적인 흔들림을 이용하듯이, 원자시계는 원자 속 전자의 변화를 이용한다. 원자 안에서 전자는 정해진 에너지 준위에 머무는데, 다른 에너지 준위로 이동하려면 두 준위의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받아야 한다. 이 에너지는 특정 주파수의 빛에 해당한다. 원자에 레이저를 쏘고 주파수를 조금씩 바꿔가면 전자가 반응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찾아낸 주파수는 매우 일정해 마치 원자 안 메트로놈처럼 시간을 재는 기준이 된다.

    원자시계가 전자의 에너지 변화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핵시계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원자핵 내부 변화를 기준으로 삼는다. 원자핵은 원자 중심부 깊숙한 곳에 있어 주변 전기장이나 자기장 같은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원자핵 변화를 안정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기존 원자시계보다 더 견고한 시간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문제는 원자핵 대부분이 레이저로 다루기 어렵다는 점이다. 원자핵의 에너지 준위 차이는 대체로 매우 커서 상태를 바꾸려면 감마선처럼 훨씬 높은 에너지의 빛이 필요하다. 그러나 토륨-229는 예외다. 방사성 원소 토륨의 희귀 동위원소인 토륨-229는 원자핵의 에너지 준위 격차가 유난히 작다. 그래서 일반 자외선보다 파장이 짧은 148㎚(나노미터) 안팎의 진공자외선 레이저로 원자핵의 에너지 상태를 바꿀 수 있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토륨-229의 이런 특성에 주목했다. 2024년에 이르러서는 토륨-229 원자를 포함한 불화칼슘 결정에서 원자핵의 상태 변화를 레이저로 유도하고, 핵 전이가 일어나는 주파수를 정밀하게 좁혔다. 다만 당시에는 핵 전이를 확인한 뒤 주파수를 측정하는 데 그쳤고, 이를 실제 시계 신호로 안정화하지는 못했다. 이번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토륨-229 원자핵의 전이를 실제 시간 측정 장치 기준으로 붙잡아두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핵시계를 구현한 중국과 유럽, 두 연구팀의 기본 원리는 같다. 먼저 토륨-229 원소를 불화칼슘 결정 안에 넣어 고체 구조에 자리 잡게 만들었다. 여기에 진공자외선 레이저를 비췄다. 그러자 토륨-229 원자핵이 특정 주파수에서 빛을 흡수하며 에너지 상태를 바꿨다. 이때 원자핵이 빛을 흡수할 때 나타나는 신호를 통해 과학자들은 원자핵이 반응하는 정확한 주파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연구팀은 이 신호를 기준으로 레이저 주파수를 반복적으로 조절해가며 원자핵의 상태 변화를 시계 초침처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중국팀은 상대적으로 토륨-229 농도가 낮은 결정을 사용한 대신 더 강한 진공자외선 레이저를 활용했고, 유럽팀은 더 높은 농도의 결정을 이용해 약한 레이저에서도 흡수 신호를 키웠다. 조건은 달랐지만 두 장치에서 얻은 핵 전이 신호는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휴대용 정밀 시계로 발전 가능

    기존 원자시계는 수백억 년에 1초 수준의 오차를 목표로 할 만큼 정밀하다. 이번에 구현된 핵시계는 수백만 년에 1초 정도 오차 수준에 머물러 원자시계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원자핵을 시간 기준으로 삼는 길은 열렸지만, 정확도를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가 남은 셈이다. 토륨-229 원자핵의 전이가 온도와 자기장, 결정 내부 결함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진공자외선 레이저도 더 정교하게 제어해야 한다.

    그럼에도 핵시계가 주목받는 이유는 원자핵 전이 자체가 가진 안정성 때문이다. 원자핵 전이는 전자 전이보다 외부 전기장이나 자기장에 의한 교란에 덜 민감하다. 이에 원자시계보다 안정성이 최대 1만 배가량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많은 광학 원자시계가 원자나 이온을 진공 장치에서 정밀하게 제어해야 하는 것과 달리 토륨 핵시계는 원자핵을 고체 결정에 넣은 상태에서 작동한다. 그 결과 휴대가 간편한 소형 정밀 시계로도 발전할 수 있다. 나아가 항법시스템, 통신망, 데이터센터의 시간 동기화 분야에서도 쓰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일부 물리학자는 핵시계의 시간 측정 능력보다 물리학적 가치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원자핵 안에는 전자기력뿐 아니라 핵력 같은 고유한 상호작용도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 덕에 핵시계는 새로운 물리학 현상을 탐지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암흑물질이 원자핵과 미약하게나마 상호작용하거나, 기본상수가 시간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린다면 그 영향은 핵시계의 주파수 변화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은 이미 실제 연구에서 시험되고 있다. 미국 실험천체물리학합동연구소(JILA)와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등이 참여한 공동연구진은 핵시계의 기반이 되는 토륨-229 핵 전이 신호를 정밀하게 분석해 일부 초경량 암흑물질 모델이 허용될 수 있는 범위를 좁힌 바 있다.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의 이론 물리학자 길라드 페레즈는 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이번 연구들은 핵시계를 ‘가능성 있는 시스템’에서 새로운 물리학 탐색에 사용할 수 있는 ‘작동하는 정밀 기기’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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