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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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와 패기 넘치는 ‘더 딥’ 앨범 ‘K팝 비치’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5-12-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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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케이블TV 음악방송 포맷을 흉내 낸 ‘더 딥’의 ‘럭키 스타(Lucky Star)’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유튜브 채널 THE DEEP 캡처

    2000년대 케이블TV 음악방송 포맷을 흉내 낸 ‘더 딥’의 ‘럭키 스타(Lucky Star)’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유튜브 채널 THE DEEP 캡처

    자극적이게도 ‘K팝 비치(KPOP B!TCH)’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매한 이가 있다.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더 딥(The Deep)’이다. ‘K팝 하는 여자’로서 자신을 조금 저속하게 표현한 듯한데, 아무래도 전형적인 K팝 음반 같지는 않다. 

    사실 이 음반은 제목보다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앨범 커버부터 그렇다. 눈 아픈 형광색의 키치한 의상 뒤쪽으로 2000년대를 풍미한 의류 쇼핑몰 ‘밀리오레’ 로고가 슬쩍 보인다. 수록곡 ‘럭키 스타(Lucky Star)’ 뮤직비디오는 2000년대 케이블TV 음악방송 포맷을 흉내 냈다.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느낌’을 내기에 제격인 3D(3차원) 그래픽 인서트나 스티커 사진 질감의 장식적 그래픽이 즐비하다. 음악은 매우 자극적인 일렉트로닉뮤직인데 보컬 멜로디나 가사 질감은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다. 애프터스쿨, 샤이니, 엠블랙, 2NE1, 소녀시대, 나인뮤지스, 용감한형제 같은 이름들이 머릿속을 ‘핑핑’ 스쳐 간다. 속이 뻥 뚫리는 ‘롱 넘버(Wrong Number)’의 은근한 ‘뽕끼’를 보라. ‘K팝 비치’의 “작은 몸에 쭉 빠진 다리 / KPOP B!TCH is uh uh” 같은 가사는 또 어떤가. 너무 많은 것이 ‘2010년’이다.

    자극적이고 친근한 혼종의 매력

    그렇다고 2010년 향수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이 앨범의 기반에는 혼란한 에너지, 비관습적인 악기, 자극적인 음향과 전개가 특징인 하이퍼팝(Hyperpop) 스타일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K팝에서 제법 중요하게 수용되는 트렌드다. 더 딥은 거기에 2000년대를 연상케 하는 개라지(Garage)와 거창한 페스티벌형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사운드를 접붙였다. 때로는 능숙히 변형해서, 때로는 날것 그대로 말이다. 이 난폭하고 어질어질한 사운드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청자를 꾹꾹 눌러주는 건 K팝의 ‘버릇들’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꽉 채워 넣은 자극의 소용돌이이면서 동시에 친근한 한국인의 팝이고, 또한 2010년이기도, 2025년이기도 하다. 모순적이면서도, 혼종성으로 점철된 하이퍼팝이나 K팝에는 이런 모순이 제격이라는 아이러니도 한 겹 깔아 넣는다. 풍성한 맥락과 팝적인 매력, 유머러스한 키치와 패기가 넘친다.

    많은 음악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해 제도권으로 나아간다면, K팝은 처음부터 제도권에서 태어난 음악이다. 그것이 다시 언더그라운드에 영감을 줘 이런 멋진 앨범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 앨범에 담긴 높은 자극성이나 약간의 저속함 혹은 ‘지저분함’에 익숙하지 않다면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복잡한 맥락을 떠나 직관적으로 아주 재미있고, 또 아주 신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 용기 있는 앨범을 한 번쯤 들어볼 것을 권한다. 행여 좀 정신 사납게 느껴지더라도, 정신 사나웠던 한 해를 ‘이이제이’로 날려버릴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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