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내곡동에서 집안 대대로 살아왔다는 한 주민은 이 일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대상이 될 것이라는 세간의 관측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8·8 부동산대책에서 서울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을 발표하자 부동산시장에선 내곡동 등 강남권 그린벨트가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11월 그린벨트 해제 지역 발표를 앞두고 내곡동 주민들과 부동산공인중개사들은 “실제 발표를 지켜봐야겠지만, 설마 이곳이 제외되겠느냐”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에 “수십 년간 부당한 사유재산 억압에 너무 억울해서 피눈물 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오른쪽은 서초더샵포레 단지. [김우정 기자]
“강남 한복판, 강원도처럼 수려한 풍광”
기자가 9월 11일 오전에 찾은 내곡동은 도시와 시골 풍경이 혼재된 모습이었다. 양재역에서 시내버스로 15분을 달리자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와 아파트 단지가 나타났다. 내곡동 예비군훈련장과 집단취락, 화훼 비닐하우스가 들어선 전답은 그간 서초구에 몇 곳 남지 않은 미개발지로 주목받았다. 최근에도 서초구 우면동, 강남구 세곡동, 송파구 방이·오금·마천동 등과 함께 그린벨트 해제 가능 지역으로 거론되고 있다. 헌릉로 8차선 대로변에서 구룡산을 바라보고 5분 남짓 걸어 들어가자 한가로운 전원(田園)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초구청장 명의의 ‘개발제한구역 내 행위제한 안내’ 푯말과 함께 비포장도로를 따라 비닐하우스와 펜스가 둘러쳐진 빈 땅, 묘소 등이 눈에 띄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아파트 조경용으로 납품할 덩굴식물을 돌보던 60대 김모 씨는 “이곳 그린벨트가 해제될 수 있다는 뉴스를 봤다”며 “안 그래도 자식들이 ‘화훼 농사 힘드니 그만두라’ 하고 나도 힘에 부치던 상황인데, 만약 그린벨트가 풀려 개발된다면 그냥 농사를 관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내곡동에서 화훼 농사만 40년 동안 이어왔다는 김 씨는 “예전 개발 때는 화훼 농가들이 모여서 ‘데모’도 하고 그랬는데, 이젠 어떨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헌릉로 건너편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시작된 ‘내곡 보금자리주택’ 건설로 들어선 약 4300채 규모의 서초포레스타, 서초더샵포레 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녹지 한복판에 위치하면서도 서울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을 끼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8·8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실거래는 아니지만, 그린벨트 토지나 인근 아파트 매입 관련 문의가 늘어났다”는 게 내곡동 부동산공인중개사들의 전언이다. 인근에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A 씨는 “7월 즈음 내곡동 그린벨트 내 땅 주인이 땅을 팔겠다고 해서 거래가 거의 성사될 뻔했는데, 갑자기 값을 높이겠다고 해서 결국 무산됐다”며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땅 주인은 그린벨트 해제 호재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A 씨는 “서초포레스타, 서초더샵포레 단지의 경우 8월 들어 급매를 포함해 기존 물건은 다 팔렸고, 집주인들이 호가를 1억~2억 원 올려 잡고 있다”며 “최근 부동산시장에 전반적으로 거래가 늘어난 영향도 있겠지만, 그린벨트 해제 등 개발 호재 기대감도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내곡동의 또 다른 부동산공인중개사 B 씨는 “8월 이전보다 문의 전화가 늘어 최근에도 하루 2~3통씩 꾸준히 오고 있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도 “아파트 매입을 문의하는 사람들도 ‘근처 그린벨트가 해제된다는 얘기가 있던데 분위기가 어떠냐’며 관심을 보인다”고 전했다.
9월 11일 서초구 내곡동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전경. 사진 속 비닐하우스 너머로 서초포레스타 단지가 보인다. [김우정 기자]
“그린벨트 해제 호재는 이미 땅값에 일부 반영”
다만 그린벨트 해제가 현실화하더라도 개발 호재가 예전만은 못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내곡동 부동산공인중개사 C 씨는 “현재 이 일대 그린벨트 내 전답 가격이 3.3㎡당 500만 원대인데, 그린벨트가 풀려서 개발이 진행되더라도 보상가는 3.3㎡당 700만 원 정도라는 관측이 많다”며 “투자자 입장에선 3.3㎡당 200만 원 정도 되는 차액을 보려고 이제 와 투자한다는 게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11월 그린벨트 해제가 발표되면 해당 시점부터 특정 기간 내 토지를 매입한 사람은 ‘현금청산’ 대상이 되고 아파트 입주권이나 상가 ‘딱지’를 받지 못한다”는 풍문도 돌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서울시는 서울 그린벨트 전역을 11월까지 한시적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전문가들은 그린벨트 해제가 원활한 주택 공급으로 이어지려면 △개발이 용이한 평지 △수요자가 선호하는 교통 여건과 입지 △경관 훼손으로 그린벨트 기능을 이미 상실한 경우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현재 개발 가능성이 거론되는 내곡동 등 강남권 그린벨트의 특징이기도 하다. 내곡동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았다는 한 주민은 “말이 그린벨트지, 이미 지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는데 언제까지 재산권을 침해받아야 하느냐”며 “대단한 개발 호재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그린벨트 해제로 자기 땅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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