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장품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
‘궈차오’(애국소비) 열풍으로 중국 화장품 강세
“1945년 창업해 매출 약 6조 원까지 기록했고, 외부 환경 탓에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것이 아킬레스건(치명적 약점)이 됐다. 중국과 면세점 의존도를 낮추고 아시아, 북미, 유럽 등 신시장을 개척하겠다.”이동순 아모레퍼시픽 대표가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중국 화장품 수요 회복에 따른 실적 기대감이 꺾이지 않았다. 신한투자증권은 “1분기 면세 쇼크로 실적이 부진하지만 2분기부터 중국발(發) 실적 회복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조소정 키움증권 연구원도 “중국 화장품시장의 정상화 시점은 1분기로 예상되며 아모레퍼시픽의 실적 반등도 2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달랐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 젊은 층을 중심으로 ‘궈차오’(國潮·애국소비) 열풍이 불면서 시장 상황이 바뀐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월 18일(현지 시간) “중국 소비자들이 자국 브랜드에 눈을 돌리면서 아디다스, 로레알, 프록터앤드갬블(P&G)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로레알’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줄곧 하락세다. 반면 중국 색조 브랜드 ‘퍼펙트 다이어리’는 2017년 론칭 이후 5년여 만에 가성비 높은 제품을 무기로 내세워 중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자국산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신생 화장품 브랜드 ‘화시즈’도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화장품의 영향력도 약화되고 있다. 현재 중국 화장품시장은 프랑스, 일본 등이 장악한 고급 브랜드 시장과 가성비를 내세운 자국산 중저가 시장으로 양분됐다. 2017년 중국 내 수입화장품 비중은 한국이 22.2%로 가장 높았지만 2021년에는 17.3%로 3위로 밀려났다. 또 중국의 한국 화장품 수입 증가율은 2018년 64%에서 2020년 7.9%로 하락했다. 마땅한 중국 내수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한류’를 앞세워 중국 시장을 휩쓸었던 한국 화장품이 이제 존재감조차 잃을 위기에 내몰린 셈이다.
사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2016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연간 영업이익이 2016년 8481억 원, 2017년 5964억 원, 2018년 4820억 원, 2019년 4278억 원, 2020년 1430억 원으로 4년 연속 감소했기 때문이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한 불확실성이나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처럼 업종 전체에 영향을 미친 체계적 위험과는 별개로 럭셔리 수요 증가와 디지털 채널 전환이라는 글로벌 뷰티시장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중국 소비자 눈높이 높아져
지난해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연결기준 매출은 4조4950억 원, 영업이익은 2719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5.6%, 23.7% 감소했다. 주력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매출은 4조1349억 원으로 전년보다 15%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2142억 원으로 전년 대비 37.6% 줄었다. 아모레퍼시픽의 국내 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16.1% 하락한 2조8744억 원, 영업이익은 30.8% 감소한 2353억 원을 기록했다. 해외 사업 매출은 17.1% 감소한 1조4935억 원, 영업이익은 84.3% 감소한 81억 원에 그쳤다.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 부진을 만회하고 시장을 다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배우 틸다 스윈턴을 설화수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해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나서는 한편, 3월부터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1년간 협업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캘리포니아에 ‘LA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 미국 고객과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1분기 북미 시장 매출이 348억 원에서 628억 원으로 80% 증가했다.
일본 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수입화장품협회에 따르면 1분기 일본의 화장품 수입액 중 한국 제품 수입액은 217억 엔(약 1979억7560만 원)으로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매출이 30%가량 증가한 아모레퍼시픽도 이런 인기에 힘입어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에스트라’를 하반기 일본 시장에 공식 출시하고, 6월 말 아모레퍼시픽의 11개 브랜드를 소개하는 페스티벌 ‘아모파시페스’를 개최한다. 또한 화장품 수출 10위권 국가에 대거 포진한 동남아 시장을 선점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해외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내 오프라인 매장은 대거 철수한 상태지만 온라인 매출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 e커머스 채널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코로나19 사태로 봉쇄됐던 지난 3년 동안 중국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중국 산업도 많이 발전했다”면서 “중국에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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