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7

2016.05.11

특집 | 가습기 살균제의 거짓말

‘폭탄’ 돌린 질본, 환경부, 산업부…

부처 칸막이 치우고 살생물제 관리 전반 새 틀 짜야 할 때…CMIT/MIT도 살생물제

  •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입력2016-05-10 09: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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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때늦은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포함한 모든 살생물제(biocide)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나서는 등 정책적 대응도 시작됐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의 분노는 날로 커져가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 대한 거부감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물론 옥시가 자초한 일이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옥시의 비윤리적 행태는 경악할 수준이다. 단순히 독성을 은폐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대학교수들을 돈으로 매수해 독성 자료를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어설픈 e메일 사과와 영국 본사의 동의까지 얻었다던 대국민사과도 실패작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검찰 수사 대상에서 완전히 빠져버린 기업도 있다. 애경, 이마트, GS리테일, SK케미칼이 그들이다. 사실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검찰이 아니라 질병관리본부(질본)였다. 2011년 수행한 ‘원인미상 폐손상 위험요인에 대한 흡입시험’ 결과가 면죄부의 근거였다. 이들 기업이 생산 및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에서는 폐섬유화를 포함한 어떠한 폐질환의 가능성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의 집중 수사를 받고 있는 옥시가 사용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대신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을 떠맡은 환경부도 애경이 사용한 CMIT와 MIT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원인미상 폐손상’ 원인물질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CMIT가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지 않는 안전한 살균제라는 질본과 환경부의 주장은 피해자의 존재를 거부하는 황당한 것이다. CMIT도 박테리아와 곰팡이 제거 기능을 가진 살생물제다. CMIT는 대부분 세제, 바이오디젤, 페인트, 접착제, 펄프가공 등의 살균제(fungicide)로 사용된다. 현재 다우(DOW)가 생산 및 판매하는 카톤(Kathon)이 대표적인 제품이다. CMIT가 살충제(pesticide)로 이용되기도 한다. 2010년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아치목재보존사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10.4%의 CMIT와 3.8%의 MIT가 포함된 ‘아치 CMIT/MIT’를 목재 보존용 살충제로 등록했다.



    CMIT도 인체 독성물질

    다우와 아치목재보존사가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CMIT와 MIT가 각막 화상에 의한 실명이나 피부 부식의 위험을 갖고 있고, 증기나 기체를 흡입하면 상기도(코와 목)와 폐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CMIT/MIT가 포함된 살균·살충제를 취급하는 작업자는 피부 접촉과 호흡을 통한 흡입을 차단하는 보호 장구를 착용해야 한다.



    옥시 제품에 들어 있는 PHMG와 애경 등의 제품에 들어 있는 CMIT는 전혀 다른 구조와 특성을 가진 물질이다. 질소·탄소·수소로 만들어진 긴 사슬 모양의 고분자 PHMG와 달리 CMIT는 탄소와 황으로 구성된 5각형 고리 화합물인 이소티아졸(IT)에 염소와 케톤기가 결합된 형태다. 화학적 반응성이 클 수밖에 없다. 결국 CMIT는 폐포를 통해 혈액으로 더 쉽게 흡수될 수 있고, 인체의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CMIT의 독성이 정부가 폐손상 원인물질로 인정하는 PHMG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현재 CMIT의 흡입·섭취 독성에 대한 구체적인 학술적, 과학적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안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흡입하거나 섭취하는 방법으로 이 물질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흡입·독성 자료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바로 이러한 예외적인 사고가 발생한 뒤인 2011년 질본이 실시한 동물실험은 충분하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행한 초보적인 실험이었을 뿐이다. 당시 질본은 PHMG를 사용한 제품을 실험하며 10배 농축액, 원액, 2배 희석액을 이용한 예비 독성실험을 했다. 10배 농축액을 투여한 흰쥐는 10분 이내 사망했고, 원액과 2배 희석액을 사용한 경우에서는 심각한 체중 감소가 관찰됐다.

    눈여겨볼 것은 당시 연구진이 CMIT/MIT를 사용한 제품에 대해서는 동일한 예비 실험조차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PHMG 제품과 함께 10배 희석액을 이용한 동물실험만 했다. 결국 질본이 밝혀낸 것은 CMIT/MIT를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10배 희석액을 석 달 정도 투여한 흰쥐에서는 특별한 증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농도를 높이거나, 투입 기간을 연장했을 경우 어떤 독성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료도 얻지 못했다. 그런데도 실제로 존재하는 피해자를 눈앞에 두고 ‘독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일이다.



    납득할 수 없는 ‘세척제’ 허가

    사태를 이렇게까지 만든 원인을 찾기 위해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가습기 살균제의 재앙이 시작된 건 1994년 당시 국립공업기술원(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가습기 살균제를 ‘가습기 세척제’로 허가해주면서부터다. 특이한 건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 성분의 99.87%가 물이라는 점이다. 살균제인 PHMG 0.125%와 소금 0.005%를 제외하면 맹물이다.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CMIT 0.02%, MIT 0.006%, 질산마그네슘 0.25%, 염화마그네슘 0.005%, 에탄올 1%, 향 0.05%를 뺀 나머지 98.67%는 맹물이다. 가습기를 ‘세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누나 계면활성제 성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기술표준원은 세척용 성분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이 제품을 ‘세척제’로 허가했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세척제라고 허가해놓고 상식적인 사용법을 표시, 광고하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척제’는 ‘세척 용도로 사용하는 제품’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식이다. ‘식기 세척제’는 ‘식기’를 세척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말한다. 식기를 세척하기 위해서는 물에 희석한 세척제로 식기를 씻은 후 맑은 물로 헹구고, 물기를 닦아내거나 건조한다. 식기를 세척한다고 식기 세척액을 공기 중에 분무하는 일은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가습기 살균제도 물때가 생기거나 세균 오염이 걱정되는 가습기를 세척하는 목적으로 사용했어야 한다. 세척제를 넣은 후 실내에 분무하는 것은 상식적인 세척 방법이 아니다. 아무리 가습기 살균이 중요하다 해도 독약을 실내 공기 중에 뿌려두고 숨으로 흡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가 소비자 목숨을 앗아가는 재앙은 산업부가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세척제의 잘못된 사용법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안전을 국정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정부 말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민 안전을 지키기엔 우리 정부의 안전에 대한 전문성은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부는 세척제 성분이 전혀 없는 세척제를 허가해주고, 상식에서 벗어난 사용 방법을 용납했다. 보건복지부와 환경부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소비자를 눈앞에 두고, 실험실의 흰쥐에서 과학적 근거를 찾겠다며 엄청난 예산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밀폐된 실내에 분무하는 살균제 제품의 위험을 17년 동안이나 인지하지 못했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한국소비자원의 전문성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혼란스럽고 부실한 안전 관리

    부처 간 고질적인 칸막이 문제도 심각하다. 세제 등 생활용품과 가전제품 같은 공산품의 안전관리는 산업부 영역이고, 감염성 질병에 대한 안전 관리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의 독점적 영역이다. 농축산물과 농약 관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담당하고, 수산물 안전은 해양수산부의 고유 영역이다. 그 밖의 환경적 요인에 대한 안전 관리는 환경부가 담당한다.

    안전 관리 기준도 기능이 아니라 제품 분류에 따라 달라진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오존 식기 소독기’에 해당하는 기준이 따로 있고, 가정에서 사용하는 ‘오존 야채 소독기’에 적용하는 기준은 또 따로 있다. 직류로 생산한 오존과 교류로 생산한 오존의 기준도 다르다. 기업이 ‘공기청정기’를 ‘에어워셔’라고 부르면 공기청정기에 대한 안전기준은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칸막이에 갇힌 정부 부처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가습기 살균제를 세계 최초 제품이라고 평가하고 떠들썩하게 KC(국가통합인증) 마크까지 붙여줘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버린 산업부가 이제 와서 세척제는 ‘자율인증품목’이라며 뒤로 물러서버렸다. 보건복지부, 질본, 식약처 등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나타난 질환이 ‘감염성 질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부터 의료 현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등이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지만 애써 외면했다. 공산품 때문에 발생한 문제는 환경과 무관한 것이라고 꽁무니를 빼던 힘없는 환경부가 골치 아픈 뒤처리를 떠안게 된 형국이다.

    살균제에 대한 선진국의 인식 및 관리는 우리와 전혀 다르다. 우리처럼 맹목적으로 살균에 집착하지 않는다. 살균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상식이 정착됐다. 이와 동시에 무분별한 살균이 사람과 환경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도 분명하게 자리 잡았다. 정부의 관리제도 역시 잘 정리돼 있다. 미국의 경우 항생제와 식품보존제는 식품의약국(FDA)이 관리하고, 그 밖의 살균제는 모두 ‘살충제·살균제·쥐약법(Federal Insecticide, Fungicide, and Rodenticide Act·FIFRA)’에 따라 EPA가 관리한다. 이 통제를 받는 살균제가 모두 화학적 제제인 것도 아니다. 살균력을 자랑하는 세탁기에도 FIFRA를 적용한다. 기업이 내세우는 제품 명칭에 따라 관리 주체와 방법이 달라지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환경부가 뒤늦게 살생물제 전수조사를 포함한 대책을 내놓았다. 살균·항균·방균 목적으로 사용되는 살생물제를 목록화해 관리하고, 단계적으로 위해성을 평가할 모양이다. 살생물제 허가제를 도입해 허가를 받지 않은 살생물제를 사용한 제품은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고 한다. 생활화학제품 관리를 강화해 원료 물질의 위해성 평가와 함께 안전기준과 표시기준도 강화하겠단다. 그러나 살생물제의 종류와 범위는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특히 천연물에서 유래되는 살생물제의 경우 현실적으로 관리가 거의 불가능하다. 자칫하면 한약재 대부분이 살생물제로 분류될 수도 있다. 더욱이 살생물제의 용도에 따라 관리 부처와 관리 방법이 크게 다른 상황에서 환경부의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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