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의결하기로 한 가운데 2008년 8월 8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노조원들이 연좌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연주 사장(원 안).
과거 정권은 모두 방송을 자기편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법적으로 방송사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보장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는 거칠고 집요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이는 방송사상 최장기 파업 사태를 초래한 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 정부가 방송장악을 위해 가장 먼저 꺼내든 ‘KBS 사장 교체’부터가 무리수의 연속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홍역을 치렀다. 수개월간 여론이 잠잠해지기는커녕 반(反)정부 정서로까지 확산됐다. 정부는 이 같은 여론을 형성하는 데는 촛불시위를 긍정적으로 보도한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뉴스가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국가 기간방송인 KBS가 있으며, 당시 정연주 사장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봤다. 그러나 2008년 5월 기준으로 정 사장은 임기가 15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정권 실세’의 정 사장 퇴진 압박이 시작됐다. 그해 5월 12일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김금수 KBS 이사장을 만나 “정연주 때문에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이사회에서 정연주 사장을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정 사장 퇴진을 노골적으로 주문했다. 정 전 사장은 올 초 김 전 이사장을 만나 직접 확인했다며 이 같은 사실을 여러 매체에 공개했다. 하지만 당시 정 사장은 물러나지 않았고, 되레 김 이사장이 먼저 사퇴했다.
정연주 불법 축출로 시작된 KBS 장악
이후 정 사장 퇴진 압박은 국가 권력을 동원한 전 방위 공세로 확대됐다. KBS 직원이 5월 14일 ‘국세청과 KBS가 법원에서 조정 합의한 세금소송’과 관련해 정 사장이 KBS에 손해를 입혔다며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발하자 검찰이 신속히 수사에 나섰다. 또한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3개 보수단체의 청원으로 감사원이 KBS 특별감사를 대대적으로 시행했다. 감사원은 8월 5일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 사장 해임요구안을 KBS 이사회에 제출했다.
감사원은 결정적 해임 사유로 정 사장이 배임혐의에 대한 검찰수사를 들었다. KBS 이사회(당시 이사장 유재천)는 8월 8일 내부 구성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KBS 사내에 사복경찰까지 투입하며 해임제청안 의결을 강행했다. 이틀 뒤 이명박 대통령은 정 사장을 해임했다. 해임된 다음 날 정 사장은 자택 앞에서 배임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정 전 사장의 결정적 해임 사유였던 배임혐의에 대해 대법원은 올해 1월 12일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정 전 사장이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사장해임처분무효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2월 23일 해임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집권 초 이명박 정부가 정 사장을 몰아내려고 했던 행위들을 사법부가 모두 위법하다고 최종 확인한 것이다.
정 사장 해임 이후 KBS는 야당 측으로부터 ‘정권 방송’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2008년 정 사장 퇴출 이후 취임한 이병순 KBS 사장과 이듬해 말 취임한 김인규 사장(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은 정 전 사장 해임 과정에 반발하거나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직원을 대부분 제작과 무관한 부서 또는 한직으로 밀어냈다. 그 대신 “정연주 퇴진”을 외쳤던 사내 인사들을 중용했다.
1월 30일 MBC 노동조합이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로비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벌이고 있다.
이후 KBS ‘9시뉴스’는 정권 입맛에 맞는 뉴스로 변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뉴스 보도가 대체로 정부 주장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이다. 4대강사업과 BBK 의혹, 내곡동 사저 이전 문제 같은 현안에 대해서는 정부 잘못에 눈을 감았다.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제기된 의혹을 검증하는 보도는 누락되기 일쑤였다. 기자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그때뿐이었다. 급기야 시위 현장에서 KBS 기자들은 시민에게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시민 항의로 중계차량을 철수하기도 했다.
방송장악 시도는 MBC에서도 나타났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이후 한때 현 정권 최대 적으로 분류되던 MBC는 2009년 8월 새 방송문화진흥회(당시 이사장 김우룡·이하 방문진) 이사진을 구성한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방문진 이사 9명 중 여야 비율이 6(자유선진당 추천 몫 1명 포함)대 3이었다. 여당 추천 이사들은 노조 단체협약(이하 단협) 문제와 PD수첩 진상조사 문제를 들어 당시 엄기영 사장 퇴진을 압박했다. 엄 사장은 2010년 2월 자신이 요구한 본부장 인사를 방문진이 거부하자 사퇴해버렸다.
후임으로 김재철 전 청주MBC 사장이 임명됐다. 고려대 출신으로 이 대통령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던 그는 강도 높은 내부 정비에 나섰다. 월간 ‘신동아’에서 공개한 “김 사장이 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였다”는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의 발언은 지금까지도 꼬리표처럼 김 사장을 따라다닌다. 김 사장은 측근을 주요 임원에 배치하고, 노조와는 적대관계를 유지하다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초강수’도 감행했다.
김 사장이 취임한 후 MBC는 여러모로 KBS와 유사한 행태를 보였다. KBS가 시사평론가 정관용, 가수 윤도현, 방송인 김제동을 퇴출하자 MBC는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8년간 진행해온 개그우먼 김미화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10년 넘게 조간브리핑을 맡아온 김종배 시사평론가를 잘랐다. MBC 뉴스도 정권 친화적으로 바뀌었다. 4·11 총선 때는 여야 후보들의 선거유세 현장 스케치 영상이 “편파적이었다”는 기자들의 내부보고서가 작성됐다.
정부 산하 공기업 지분이 과반(한전KDN 21.4%, KT·G 19.9%, 한국마사회 9.5%)인 YTN 사장에는 2008년 7월 구본홍 전 이명박 대통령후보 방송특보가 임명됐다. 낙하산 인사에 반발하며 YTN 노조가 구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자, YTN은 노종면 전 노조위원장과 기자 등 6명을 해고했다. 이들은 현재 법정투쟁을 벌이는 중이며, 구 사장 후임인 배석규 사장도 이들의 복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