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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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미끼로, 돈은 해외로’… 구제 사각지대 놓인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

통신사기환급법은 보이스피싱에 한정… 피해 급증하는데도 회복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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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입력2025-12-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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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가 1년 새 34.7% 증가했지만, 구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GETTYIMAGES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가 1년 새 34.7% 증가했지만, 구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GETTYIMAGES

    부동산 매매업을 하는 A 씨는 최근 로맨스 스캠을 당했다. 자신을 한일 혼혈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A 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으로 매물을 문의하며 접근해왔다. 한국어가 서툴러 번역기를 쓰지만, 부모 고향인 한국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매물 얘기를 나누던 여성은 자신이 이혼했고, 어린 딸이 있다는 개인사까지 털어놓으며 A 씨와 점차 친분을 쌓았다.

    이후 여성은 자신이 사실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고 귀띔했다. 구매대행 온라인 쇼핑몰로 한 달에 2억 원을 벌고 있고, 몇 시간 만에 순수익 600만 원이 생긴다며 초대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부업이라고 강조했다. 전세사기를 당해 돈이 급했던 A 씨는 결국 부업 참여를 결심했다. 여성은 물건 주문을 위해 선입금을 요구했고 금액은 100만 원, 500만 원, 1000만 원으로 늘었다. 일주일 뒤 여성은 1200만 원 정도 수익이 났다며 세금 명목으로 추가 입금을 요구했다. 이미 대출까지 받아 돈을 보낸 A 씨가 더는 입금할 수 없다고 하자 여성은 잠적했다.

    국경 넘는 로맨스 스캠, 1년 새 30% 급증

    A 씨가 당한 로맨스 스캠은 SNS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접근해 꾸준히 친분을 쌓은 뒤, 결혼이나 사업 등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는 신종 온라인 사기다. 국경을 넘나드는 로맨스 스캠 피해는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8월까지 피해 금액은 1522억 원에 달한다. 피해 집계가 시작된 지난해 2~7월과 올해 2~7월을 비교하면 피해 접수 건수는 791건에서 1066건으로 34.7% 증가했다. 피해액은 502억 원에서 654억 원으로 30.2% 늘었다.

    이처럼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A 씨가 돈을 돌려받기는 사실상 어렵다. 비대면 사기 피해 회복 제도가 보이스피싱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통신사기피해환급법(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나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피의자의 사기 계좌가 즉각 정지된다. 계좌에 남아 있는 돈에서 피해금도 환급된다. 초기 단계엔 피해자가 일정 부분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문제는 로맨스 스캠 등 신종 온라인 사기다. 현행법은 보호 대상을 금융기관, 공공기관 등을 사칭해 금융거래를 유도한 보이스피싱으로 한정한다. 반면 ‘재화 공급 또는 용역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포함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상품을 팔겠다고 속여서 돈만 받고 상품은 주지 않는 행위나 개인적 신뢰를 앞세워 돈을 요구한 행위 등은 보호하지 않는 것이다. 로맨스 스캠과 주식 리딩방 사기 피해금 환급 신청이 금융·수사기관에서 잇따라 반려되는 이유다.



    피의자 검거 뒤 범죄수익을 몰수해 피해 금액을 돌려주는 과정에서도 신종 사기 피해자는 난관에 부딪힌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라 범죄수익에서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로맨스 스캠 같은 사기죄는 ‘상습범이거나 범죄단체의 조직적 범행’인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단서 조항이 붙는다. 피해자가 돈을 되찾으려면 범행이 상습적인지, 조직적인지까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상당수 피해자는 결국 민사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국제 사법공조 늘려야

    신종 비대면 사기 피해가 급증하자 국회에서도 구제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지만 진척은 없다. 리딩방, 로맨스 스캠 등 신종 사기뿐 아니라, 인터넷 도박까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주에 포함하자는 개정안이 22대 국회에서 14건이나 제출됐으나 단 한 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로맨스 스캠으로 약 7000만 원을 잃은 사회초년생 피해자 B 씨는 “생활이 불안정할 때 친분과 조언을 빌미로 접근해와 의심하기 어려웠다”며 “적금까지 털어 투자했는데 돌이킬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피해를 당하고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이 더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주식 리딩방 사기와 달리 로맨스 스캠은 피의자가 외국인인 경우가 많아 수사 진행부터 검거까지 과정에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외국인은 검거 자체가 쉽지 않고, 한국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경우 범죄인 인도조약이나 형사 공조가 있어도 상대국 협조 없이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조차 ‘나도 어느 정도 관여한 것 아닌가’ 하는 인식이 있어 사회적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며 “스캠 범죄에 대한 국제 사법공조를 지금보다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채원 기자

    윤채원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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