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군함에서 SM-3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공습에도 일상 이어지는 이스라엘
최근 이스라엘을 보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국토 면적이 경북보다 약간 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이다. 좁은 국토에 매일 로켓탄이 떨어지는 상황이지만, 개전 첫날을 제외하면 민간인 사망자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수시로 대피소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 말고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여의도에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강 건너 상암동에선 평소처럼 일상이 이어지는 셈이다.이는 이스라엘 정부가 그간 국민을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이다. 시내 곳곳에는 하마스의 로켓 직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강철·강화콘크리트로 지은 간이 대피소가 마련돼 있다. 공공기관은 물론, 2000년 이후 건설된 대다수 신축 건물에는 외부 위협을 막는 대피소도 설치됐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유사시 주민이 최대한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을 전국에 건설해왔다. 그 결과 가자지구 인접 지역은 경보 발령 15초 이내, 다른 곳도 경보 발령 45초 이내에 주민 대피가 가능하다고 한다.
심지어 위협 대부분은 주민이 대피소에 미처 도달하기 전 제거된다. 이스라엘 국토가 다층 방공망으로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자국 영토에 아이언돔 11개 포대(향후 15개 포대까지 확대 계획)와 패트리엇 8개 포대, 데이비드 슬링 2개 포대, 애로-2 및 애로-3 각각 3개 포대를 깔아놓았다. 한국군의 전체 방공 전력보다 많은 규모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 주민은 공습경보가 울리면 당황하기보다 하늘을 보며 자국 방공망이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모습을 구경할 정도다. 어차피 적 위협이 자신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미사일방어체제 아이언돔이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뉴시스]
지하철역과 지하주차장으론 미사일·포격 못 막아
크고 작은 무장단체와 대적하는 이스라엘의 국민 보호 능력이 이 정도다. 그렇다면 하마스나 헤즈볼라 따위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규모 군사력을 갖춘 북한 위협과 마주한 대한민국은 어떤가. 정부는 물론 국민도 심각한 안보불감증에 빠진 것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1994년 북한이 한국과 실무접촉에서 대놓고 ‘서울 불바다’ 위협을 가한 지 30년이 돼간다. 이제 북한은 ‘대한민국 소멸’까지 입에 올리고 있다. 이처럼 엄존하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킬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약 1만8000곳에 공공 대피시설이 있다. 그러나 자택이나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 위치를 숙지하고 있는 국민은 거의 없다. 상당수 대피시설이 지하철 역사(驛舍) 또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인데, 차단 방벽이나 내폭 설계가 적용되지 않아 미사일 공격과 포격을 견딜 수 없다. 유사시 핵공격으로부터 내부 인원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소는 전국에 180곳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서울 불바다’ 위협이 나온 지 30년이 돼가는 지금까지 어느 위정자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피시설을 유의미하게 강화하거나, 적 포탄 요격 능력을 내실 있게 확보하지 않았다. 수도권에 건설된 신도시 가운데 북한의 대규모 포격 또는 생물·화학 공격이 있을 시 주민을 확실히 보호할 수 있는 설비가 설계 과정에서부터 마련된 곳은 없다. 대피소가 없으니 당연히 대피 훈련도 없다. 민방위 훈련은 언제부터인가 성가신 요식 행위가 됐다.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울리고 도로 통행을 제한하는 방송이 울려 퍼져도 누구 하나 이를 따르지 않는다. 학교에서 당연히 이뤄져야 할 유사시 대피 훈련은 ‘군사정권의 잔재’로 취급되며 사라졌다.
주민을 대피시킬 게 아니라면 제대로 된 요격 대책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유사시 북한과 전면전이 발발하면 1시간 내로 전국 각지에 수만 발의 포탄과 로켓탄이 장맛비 쏟아지듯 떨어질 것이다. 북한이 대규모 포격을 시작하면 포탄이 국민 머리 위에 떨어지지 않도록 효과적인 요격 방안을 고민하는 게 정석이다. 그럼에도 한국군은 일단 1격은 얻어맞고 차탄(次彈)이 떨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해괴한 대응 전략을 수립해놓고 있다. 북한은 한국군 포병부대 위치를 거의 다 파악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군은 포병 전력의 양적 측면에서 한국보다 우위다. 따라서 한국군 포병부대는 개전 초 북한의 일제 사격에 크나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적의 1격을 얻어맞고 살아남아 반격탄을 날리는 대화력전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물론 1990년대에는 날아가는 포탄을 요격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따라서 대포병사격을 통해 차탄을 막는 것이 유사시 최선의 방어책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전면전 상황에서 비 오듯 쏟아질 북한의 방사포탄을 막을 방안이 생겼다. 이스라엘이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미사일방어체제인 아이언돔을 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군은 한반도 전장 상황에 맞지 않는다며 아이언돔을 도입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이언돔의 아류라 할 수 있는 LAMD(장사정포요격체계) 사업을 발표했다. 아이언돔에 비해 값은 비싼데 성능은 떨어지는 요격체계를 2030년대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여 우려된다.
북핵 위협 나날이 커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가 대북 요격 능력 확보에 중요한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당초 국방부는 ‘미국 SM-3 요격 미사일 도입 사업’ 착수를 위한 예산 10억800만 원이 반영된 2024년 국방예산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10월 해군본부 국정감사 때 해군참모총장이 직접 여야 국회의원에게 호소한 바와 같이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전후방 전역을 동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화산-31형’이라는 핵탄두까지 완성해 배치했다. 이 같은 북한 위협에 대응할 요격 수단 마련이 시급해지면서 SM-3 미사일 도입이 추진된 것이다. 그런데 국회 국방위는 이를 위한 예산 10억800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미 오래전 추진됐어야 할 요격 미사일 도입이 또 한 번 막힌 것이다.방어 수단이 적 자극한다?
한국 해군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 [해군 제공]
중국은 경제 측면에선 한국의 주된 교역국인 ‘이웃 국가’다. 하지만 군사적으로는 한국에 수백 발의 탄도미사일을 겨누고 있는 명백한 적성국가다. 북한은 유사시 수백 발의 탄도미사일과 수만 발의 재래식 포탄을 쏟아부을 능력과 의지를 가진 주적이다. 특히 북한은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수십 년째 유지한 채 무력 도발 의지를 수시로 천명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방어 수단을 갖추는 게 적을 자극한다는 논리는 궤변이다. 중국과 북한이 한국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과 로켓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와 닿지 않는다면 눈앞에 나를 해치겠다며 총을 겨눈 강도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생명에 위협을 느껴 방탄조끼를 입으려는데, 내가 고용한 경호원이 “방탄조끼를 입으면 강도가 분노해 총을 쏠 것”이라며 만류한다면 당신은 그 경호원을 어찌할 것인가.
명백한 위협이 존재한다면 자기 몸을 날려서라도 국민을 지켜야 하는 게 공복의 의무다. 대한민국 국민은 공복들이 되레 상전 행세를 하며 나라 전체를 안보 위험으로 몰아가는 희한한 광경을 보고 있다. 이제 국민도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주인을 위태롭게 만드는 삐뚤어진 공복들을 찾아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