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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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분 막강 권력자, 욕먹어야 할 운명

경기 벌어지는 모든 곳에서 ‘판정 시비’… 굳센 체력은 기본, 슬기로운 마음도 필요

  •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입력2007-07-04 1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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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분 막강 권력자, 욕먹어야 할 운명

    심판은 축구를 인간의 영토 안에 가두는 파수꾼이다.

    첼시의 감독 호세 무링요는 세련된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도발적인 입담으로 유명하다. 단골 메뉴는 판정 불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만 적용되는 (편파적인) 규칙이 있다며 시즌 내내 불만을 쏟아내던 무링요는 5월2일 2006~2007 유럽챔피언스리그 리버풀과의 준결승 2차전 때 스페인 출신의 주심이 배정되자, 스페인 색채가 농후한 리버풀에 유리할 것이라며 항의했다. 바르셀로나와의 16강 2차전을 앞두고도 그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최고의 심판 콜리냐가 주심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콜리냐는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심판.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곳이면 언제나 판정 시비가 따라다닌다. 울산의 이천수는 심판에게 욕설을 퍼부어 중징계를 받았다. 당사자인 김대영 심판은 얼마 후 그라운드를 떠나고 말았다. 이상용 심판은 지난해 7월 관중이 던진 물병에 맞아 광대뼈가 부러졌다. 승패 여부가 진학까지 결정짓는 초·중·고 대회에서는 감독과 학부형이 심판을 거세게 몰아세우기도 한다. 나라 밖 사정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해 10월 불가리아의 한 심판은 극성 팬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았다.

    검은색 옷은 재판관 법복에서 유래

    그럼에도 재판관의 존엄한 법복에서 유래한 축구 심판의 검은색 옷을 꿈꾸는 사람은 줄지 않고 있다. 2004년에는 대구공고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진호 군이 15세로 최연소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난해에는 월드컵을 앞두고 해군 장병이 단체로 심판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심판 자격증 취득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욱이 국제 심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른바 쿠퍼테스트에서 50m를 두 번 뛰어 모두 7.5초 안에 주파해야 하며 200m 전력 질주도 두 번 모두 32초 안에 들어와야 한다. 90분 동안 꾸준히 달려야 하는 심판에게는 지구력이 필수인데, 이를 위해 12분 안에 2700m를 주파해야 한다. 하지만 ‘굳센 체력’만이 능사가 아니다. ‘슬기로운 마음’도 필요한 만큼 적성·인성·어학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한 경기에 보통 주심 1명, 부심 2명, 그리고 대기심이 활약한다. 유럽축구연맹을 이끄는 미셸 플라티니는 오프사이드와 골 판정을 위해 두 명의 심판을 충원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100여 년의 축구사를 뒤집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옹호하려 한다. 그는 의사소통을 위해 심판들이 ‘시그널 빕’을 쓰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전자칩을 내장한 스마트볼이나 비디오 판독 같은 ‘기술’이 도입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여긴다. 또한 ‘비디오가 도입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될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첨단기계보다는 사람을 더 투입해 축구를 인간의 영토 안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잉글랜드의 앤디 웨인 주심은 아름다운 귀감이다. 그는 2005년 2월1일, 노샘프턴셔 주의 아마추어 경기에서 심판을 맡았는데 한 선수가 판정에 항의했다. 그러자 웨인 주심은 휘슬을 마구 불며 고함까지 질러댔다. 그라운드는 갑자기 침묵에 빠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웨인 주심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레드카드를 주고는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리고 “누군가 나처럼 행동했다면 나는 레드카드를 줬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심판은 이처럼 인간적 ‘위엄’을 지키기 위해, 인간 대신 기계가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선수와 감독들이 늘 실수하면서도 그것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듯, 막강한 권력을 지닌 판관이자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심판들도 지금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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