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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속의 성 <23>| 왕후 선발대회

밤마다 처녀들과 속궁합 검사

아하수에로 왕, 아름다운 왕후 후보들 직접 심사 … 12개월간 합숙시키며 방중술도 교육?

  • 조성기/ 소설가

밤마다 처녀들과 속궁합 검사



구약성경 가운데 ‘여호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책이 있다고 하면 아마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떻게 성경에 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책이 어떻게 성경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도 그 책에 기록된 역사를 배후에서 주관하는 존재는 여호와임이 틀림없다. 그 책은 페르시아 역사와 관련 있는 역사서 ‘에스더’서다. 에스더라는 이름은 ‘별’이라는 뜻이다.

에스더는 원래 이스라엘 베냐민 지파 출신인 아비하일의 딸이었다. 그런데 아비하일이 일찍 세상을 뜨자 그의 조카 가운데 한 사람인 모르드개라는 자가 에스더를 양녀로 데리고 와서 길렀다. 아비하일과 모르드개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와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갔을 때 함께 잡혀온 자들이었다. 페르시아제국이 일어나 바빌론을 치고 유대인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을 때도 모르드개를 비롯한 일부 유대인들은 여전히 바빌론 지역에 머물러 있었다.

페르시아라는 명칭은 이란 남서부 지방의 옛 이름인 파르스(Fars)에서 나온 말이다.



기원전 815년쯤 이란 민족의 한 지파가 우르미아 호수에서 자그로스 산맥을 가로질러 남하하여 수사 북동쪽에 있는 파르수마슈에 정착하면서 시작하여 기원전 700년쯤 아케메네스가 일어나 아케메네스 왕조의 시조가 되었고, 손자 키루스 2세가 기원전 550년 메디아의 수도 에크바타나를 점령하여 페르시아제국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밤마다 처녀들과 속궁합 검사

무너지는 바벨탑.

페르시아제국은 기원전 538년에는 바빌론을 무혈점령하고 바빌론에 잡혀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냈으며, 여호와의 신전 재건도 허가했다. 페르시아의 민족종교는 주신(主神)이 아후라마즈다인 조로아스터교였지만 제국 내 다양한 각 민족들의 종교나 관습에 간섭하지 않았다.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왕후 ‘곧바로 퇴출’

그 후 여러 차례 반란이 일어났으나 다리우스 1세가 나라를 안정시키고 인도 북서쪽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그는 전 국토를 20주로 나누고 각 주마다 사트라프라고 하는 속주의 태수(太守)를 두어 징세와 병역을 담당케 했다. 이후 사트라프의 권력이 강해지자 군사·징세권을 빼앗고 사트라프를 감시·감독하며 중앙과의 연락을 담당하는 ‘왕의 눈’과 이를 보좌하는 ‘왕의 귀’를 두었다.

다리우스 1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부왕이 이루어놓은 공적을 바탕으로 하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이다. 아하수에로는 인도에서부터 구스, 즉 아프리카 수단 북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토를 127도로 나누어 다스렸다.

아하수에로는 즉위 3주년을 맞이하여 180일 동안이나 큰 잔치를 베풀고 페르시아제국의 위용을 만방에 과시했다. 그리고 마지막 7일은 수도인 수산의 백성들을 위해 왕궁의 후원 뜰을 개방해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도록 했다. 후원에는 백색·녹색·청색 휘장을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자색의 가는 베 줄로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의자를 화반석·백석·운모석·흑석이 깔린 바닥에 배치해두었다. 백성들은 각양각색의 금잔으로 술을 마시며 한도 끝도 없이 제공되는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이때 왕후 와스디도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7일째 되는 날 아하수에로는 내시들에게 왕후로 하여금 면류관을 쓰고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자기에게 오도록 명했다. 왕은 자기가 초대한 장관과 방백들,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 왕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들이 전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왕이 직접 와서 자기를 데리고 가면 따라갔을 수도 있는데 내시들이 와서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사람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싫어했음이 틀림없다.

왕은 자기 말을 듣지 않은 왕후의 태도에 분노하여 일곱 명의 측근들을 불러모아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왕후 탄핵재판이 열린 셈이다. 에스더서에 보면 일곱 명의 측근들 이름까지 하나하나 기록돼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중요한 역사적 결정에 그들이 참여했음을 의미한다.

밤마다 처녀들과 속궁합 검사

모르드개의 양녀 에스더는 왕후로 간택돼 유대인들을 돕는 ‘별’이 된다

측근들의 대표격인 므무간이 왕후 탄핵에 찬성하며 의견을 개진했다.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각 도의 방백과 백성들에게도 잘못했습니다.”

“백성들에게도 잘못했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왕이 오라고 해도 왕후가 오지 않았다는 소문이 퍼지면 전국의 아낙네들도 남편 말을 듣지 않고 남편을 무시하게 될 것입니다. 장관 부인들이나 방백의 아내들도 그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각 가정마다 분란이 일어날 게 분명합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와스디를 왕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더 좋은 여자를 왕후로 맞이하시는 것이 국가 안녕을 위해 최선의 길인 줄 압니다. 그와 같이 조서를 반포하시면 나라의 모든 아낙네들이 남편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후 와스디는 한 번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하여 탄핵당하여 쫓겨나고 말았다. 왕후는 모든 백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리이므로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단 한 번의 잘못도 탄핵 사유가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왕후를 새로 뽑는 행사가 벌어졌다. 전국 각 도의 관리들은 자기 지방에서 아름다운 처녀들을 골라 수산 왕궁의 궁녀들을 주관하는 내시 헤개에게로 보냈다. 모르드개의 양녀 에스더도 왕후 후보로 뽑혀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시 헤개는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아리따운 처녀들 중에 특별히 에스더를 좋게 보고 그녀에게 많은 편의를 베풀어주었다.

밤마다 처녀들과 속궁합 검사

에스더가 왕후 후보로서 왕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는 모습.

처녀들은 헤개의 관리 밑에서 12개월 동안 몸을 정결하게 하는 일에 몰두했다. 요즘 말로 하면 피부관리하고 몸매 가꾸고 성형하는 일에 신경을 썼다는 뜻이다. 처음 여섯 달은 몰약 기름으로 피부를 관리하고, 나머지 여섯 달은 다른 향품들로 피부를 관리했다. 당시에도 피부를 관리하면 윤택해지는 적절한 처방이 단계별로 있었던 모양이다.

까다로운 절차 끝에 에스더 왕후로 뽑혀

이렇게 합숙생활을 하며 열두 달 동안 몸을 가꾼 처녀들이 드디어 차례대로 왕에게로 나아갔다. 저녁에 왕에게 나아갔다가 아침에 돌아왔다고 했으니 저녁과 아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왕의 침소에 들어가 왕과 속궁합이 맞는지 교합해보았음이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처녀들이 합숙 12개월 동안 단지 피부관리 같은 미용에만 애쓴 것이 아니라 성적 교합을 통해 왕을 흡족하게 하는 비법, 즉 일종의 방중술도 익혔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후궁의 금지옥엽(後宮的金枝玉葉)’이라는 책이 소개되었다. 이 책은 역대 황제들의 결혼 전후 성생활을 다루고 있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혼전에 성교육을 충분히 받으며 대부분의 경우 아이까지 낳았다. 청대(淸代)에는 태자의 혼전 성 실습이 명문화되기도 했다. 정식 혼례를 치르기 전 태자보다 나이가 많고 품행과 용모가 바른 궁녀 8명을 선발해 성애를 실습하도록 했다. 이러한 교육의 목적은 ‘황제가 신방에 들어갔을 때 성에 대해 잘 몰라 허둥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하수에로 왕후 후보들인 처녀들도 왕의 침소에 들어가 허둥지둥하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히 성교육을 받고 왕의 침소에 들어갔을 것이다. 왕의 침소에서 아침에 돌아온 왕후 후보들은 비빈을 주관하는 내시 사아스가스 수하에서 합격 여부를 기다렸다.

이러한 모든 절차 끝에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되어 동족 유대인들을 돕는 ‘별’이 된다.



주간동아 436호 (p72~73)

조성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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