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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주인공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가 그렇게도 좋단 말이냐”

  • 민은미 주얼리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가 그렇게도 좋단 말이냐”

소설 ‘장한몽’. [국립중앙도서관]

소설 ‘장한몽’. [국립중앙도서관]

194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일까. 올해 4월은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4월 탄생석은 화려한 광채와 번뜩이는 섬광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다이아몬드다.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보석

영화 ‘이수일과 심순애’. [네이버이미지]

영화 ‘이수일과 심순애’. [네이버이미지]

다이아몬드는 로맨스, 약혼, 결혼 등 인생의 소중한 이벤트와 늘 함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사랑의 약속이었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4월의 탄생석답게 잔인한 보석이었다. 다이아몬드 반지에 홀려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한 여인,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일본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1897~1899년 연재된 소설 ‘금색야차(金色夜叉·こんじきやしゃ)’를 소설가 조중환(1863~1944)이 ‘장한몽(長恨夢)’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1913~1915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했다. 

그러나 ‘금색야차’ 역시 영국 여류작가 버사 클레이(Bertha M. Clay·1836~1884)의 소설 ‘여자보다 약한 것(Weaker than a Woman)’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일본판으로 바꾼 2차 창작 소설임이 2000년 일본인 학자에 의해 밝혀졌다. 그러니 ‘장한몽’은 번안작의 번안작인 셈이다. 

소설은 장안 최고 갑부의 아들 김중배와 가난한 고학생 이수일, 그리고 이 둘과 얽힌 여주인공 심순애의 삼각관계 이야기다. 심순애가 “돈이냐, 사랑이냐”를 놓고 고민하다 돈으로 상징되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택하고, 이 일로 크게 충격받은 이수일은 돈 버는 것에 혈안이 돼 냉혈한 고리대금업자가 된다는 줄거리다. 



소설 ‘장한몽’에서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금강석 반지’로 표현된다. 김중배가 금강석 반지를 직접 끼고 등장하는데, 반지를 묘사한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 신사가 여러 사람 앉아 있는 가운데로 지나갈 때에 그 손 넷째 손가락 무명지에 광채 나는 물건이 있는데 심상치 아니하고 그 굳센 광채는 등불 빛과 한가지로 찬란하여 거의 바로 보기 어렵도록 눈이 부신다. 그 신사는 그 방중에 있는 사람으로 일찍이 말은 들었으나 보지는 못하였던 금강석 반지를 꼈더라. 좌중에 있던 여러 남녀는 그 반지의 광채를 보고 모두 한번은 놀라기를 마지아니한다.’

김중배는 첫눈에 반한 심순애의 용모를 이렇게 표현했다.

‘단장도 아니하였으나 해당화가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 화려한 용모는 가위 천연한 아름다움을 발표함이라. 콧날은 오똑하고 눈은 어글어글하며 입은 조그마하여 보는 사람마다 사귀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 생긴다.’

금강석 반지의 실물을 본 심순애는 ‘한번 금강석의 현황한 광채에 홀린 마음은 얼마간 지각을 잃은지라…’라고 했으니, 김중배는 다이아몬드 반지로 첫눈에 반한 여인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은 것이다. 이수일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아간 잔인한 보석이었다.

우리나라에 다이아몬드가 소개된 때는 소설이 나온 일제강점기였다. 그런 다이아몬드 반지는 어떻게 결혼반지의 대명사가 됐을까. 그리고 대표적인 다이아몬드 반지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보석의 황제

드비어스 광고. [구글이미지]

드비어스 광고. [구글이미지]

과거 희소성이 있는 다이아몬드는 왕이나 귀족의 전유물로, 상류 계층에만 허락된 보석이었다. 17세기 말까지는 인도가 유일한 생산국으로 극히 소량만 산출됐지만 18세기 초 브라질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1866년 오늘날 세계 최대 생산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됐고, 다이아몬드는 비로소 대중화됐다. 

다이아몬드가 보석의 황제로 자리매김한 것은 17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브릴리언트 컷’ 연마법이 개발된 이후부터다. 브릴리언트 컷은 보석의 반짝임을 최대한 끌어내고자 58면으로 깎아 광선의 굴절을 최대로 연마하는 방법이다. 

다이아몬드가 결혼 예물로 쓰이게 된 것은 전 세계 80%의 원석을 공급하는 영국 드비어스(De Beers Diamond Mines)가 20세기 중반 ‘다이아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라는 광고를 시작한 이후부터다. 광고가 나온 후 대중은 다이아몬드를 자연스럽게 약혼반지의 보석으로 생각하게 됐다.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다이아몬드를 대중화한 것은 드비어스라고 할 수 있다.


약혼반지와 결혼반지

약혼반지(왼쪽). 결혼반지. [드비어스 홈페이지]

약혼반지(왼쪽). 결혼반지. [드비어스 홈페이지]

서양에서 약혼반지(Engagement Ring)와 결혼반지(Wedding Ring)를 착용하는 전통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약혼반지와 결혼반지는 20세기에 생긴 콘셉트다. 주얼리업계에서는 약혼반지와 결혼반지가 한 쌍을 이룬 것을 웨딩 세트, 브라이덜 세트 혹은 듀오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약혼반지는 하나의 메인 스톤이 세팅된 다이아몬드 솔리테어 링(Solitaire Ring)이다. 결혼반지는 흔히 웨딩 밴드라고 하는데, 얇은 일자형 반지다. 보석이 세팅되지 않은 민자 밴드, 혹은 보석으로 세팅된 것도 있다. 결혼반지는 약혼반지의 가드(Guard) 역할을 하는데, 반지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같이 착용했을 때 메인 스톤이 세팅된 약혼반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여자의 약혼반지, 결혼반지, 남자의 결혼반지로 구성된 3개 제품을 트리오라고도 한다. 

서양과 일본에서는 여성의 약혼반지와 결혼반지로 다이아몬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1981년 세기의 결혼식 주인공이던 영국 다이애나비는 사파이어로 된 약혼반지를 착용했다. 이는 파격적인 선택으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다이애나비의 아들 윌리엄 왕자는 2010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사파이어 약혼반지로 케이트 미들턴에게 프러포즈했다.


기념일 반지

이터니티 링(왼쪽). 셀러브레이션 링. [드비어스 홈페이지, 티파니 홈페이지]

이터니티 링(왼쪽). 셀러브레이션 링. [드비어스 홈페이지, 티파니 홈페이지]

수년에 걸쳐 드비어스는 여러 제품을 개발했다. 기념일에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선물로 인기 있는 기념일 반지(Anniversary Band)가 대표적이다. 대개 같은 크기의 연속적인 다이아몬드가 줄 모양으로 세팅된 디자인이다. 기념일 반지는 고대 ‘이터니티 링’과 흡사하다. 반지의 원형 모양이 전통적으로 영원함을 상징해 이터니티 링으로 불렸다. 드비어스는 1970년대 결혼하는 커플들에게 작은 다이아몬드의 판매를 장려하고자 기념일 반지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소개한 것이다. 기념일 반지는 드비어스는 물론, 미국 주얼리 회사 티파니앤코가 ‘셀러브레이션 링’이라는 카테고리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스리스톤 링. [드비어스 홈페이지]

스리스톤 링. [드비어스 홈페이지]

그 후 선보인 반지는 세 개의 보석으로 이뤄진 스리스톤 링(Three-stone Ring)이다. 세 개의 보석은 모두 다이아몬드일 수도 있고, 다이아몬드와 유색 보석의 조합일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드비어스는 스리스톤 링을 집중적으로 홍보했으며, 그 성공으로 스리스톤 펜던트, 귀걸이까지 탄생하게 됐다. 세 개의 다이아몬드는 같은 모양이며, 주로 중앙에 있는 스톤이 가장 크다. 세 개의 스톤은 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한다.


오른손에 끼는 반지

오른손 반지. [드비어스 홈페이지]

오른손 반지. [드비어스 홈페이지]

또 다른 드비어스의 프로모션 제품은 오른손 링(Right-hand Ring)이다. 보석이 서로 떨어져 펼쳐지도록 한 디자인인데, 이는 가깝게 붙어 세팅된 결혼반지와는 차별화된다. 원래 드비어스의 프로모션 개념은 여성이 자신을 위해 스스로 오른손 반지를 구매한다는 것이었다. 즉 왼손 반지는 주로 남성이 여성을 위해 사지만, 오른손 반지는 여성이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것으로 직접 고른다는 콘셉트다. 물론 수세기 동안 여성은 오른손에도 반지를 착용해왔다. 하지만 드비어스는 오른손 반지 착용을 여성의 독립선언으로 묘사하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광고 문구는 이런 마케팅 전략을 잘 표현했는데, 왼손은 ‘우리(We)’, 오른손은 ‘나(Me)’라고 했다. 

다이아몬드 반지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영원한 사랑의 징표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나눈 명대사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단 말이냐”라는 이수일의 질문에 심순애는 끝내 부인하지 못했다. 사랑을 따르자니 다이아몬드가 울고, 다이아몬드를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아마도 11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또 다른 심순애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질문일 것이다.






주간동아 2020.04.10 1234호 (p46~49)

민은미 주얼리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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