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3

2006.02.21

불법 정치자금 때문에 ‘명예 실추’

이건희 회장, IOC 위원 도전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6-02-15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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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정치자금 때문에 ‘명예 실추’
    “돈을 벌면 명예가 따르고, 명예를 얻으면 돈은 자연적으로 굴러 들어온다.”

    예로부터 성공한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돈이면 돈, 명예면 명예 한 가지만 좇으라는 이야기다. ‘토끼 둘을 잡으려다가 하나도 못 잡는다’는 속담의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과욕은 삼가라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최근 5개월간의 외유를 접고 귀국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해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 회장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내놓은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안기부 X파일로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과 함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의혹 등 각종 의혹에 휘말려왔다.

    이런 의혹들은 모두 돈과 관련이 깊다. 돈으로 권력을 사려다가, 때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경영상 효과를 얻으려다 벌어진 일들인 것. 이처럼 돈 때문에 실추된 명예와 신뢰를 돈으로 회복하겠다는 것인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최소한 이 회장의 처남 홍석현 전 주미대사의 사라진 꿈은 되살리기 어려울 듯하다. 홍 전 대사는 한국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왔고 주변 여건도 성숙돼 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X파일로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사건은 그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아이로니컬한 건 10년 전 이 회장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것. 1996년 2월15일자 주간동아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이건희 IOC 위원’ 다 된 밥에 재.

    당시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이 회장은 전 세계 체육계 실세들과 교분을 쌓기 위해 자금과 시간을 쏟아부었고, 삼성그룹은 각국 IOC 위원들을 대상으로 전사적인 로비를 펼쳤다. 덕분에 이 회장의 IOC 위원 선임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 발목이 잡혀 이 회장의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회장과 홍 전 대사, 두 사람 모두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이름의 돈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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