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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국정원 대북전략국 남북대화 막후 채널 맡나

이병기 국정원장 취임 100일, 조직 개편 두고 다양한 해석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국정원 대북전략국 남북대화 막후 채널 맡나

국정원 대북전략국 남북대화 막후 채널 맡나
“내가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내각제 를 둘러싼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이병기는) 김영삼 대표를 편들어 YS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중략) 노(태우) 대통령의 모든 동정을 시시각각 알고 있는 이병기는 YS의 차남 김현철의 경복고등학교 13년 선배로 3당 통합 후 처음부터 김현철과 깊이 연대하였고, 대통령에 보고되는 민감한 사항들이 어느 정도 YS 측에 전달되었는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중략) 이병기는 노태우 대통령을 구속시킨 YS 대통령 아래서도 안기부장 2특보와 안기부 2차장을 누렸다.”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2005년 펴낸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의 한 대목이다.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 의전비서관·의전수석을 지낸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박철언 전 장관의 평가는 혹독하기 짝이 없다. ‘노태우 이후’를 두고 엇갈린 당시 두 사람의 견해 차이가 고스란히 비난으로 이어진 모양새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 정통한 또 다른 ‘6공 인사’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권력 의지가 남달랐던 ‘실세’ 박철언을 견제하며 ‘YS 대안론’을 펼친 이병기 당시 수석의 정무 감각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 “상황 흐름을 읽는 빠른 눈과 이를 큰 잡음 없이 현실화하는 능력이야말로 그가 역대 정권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것이다.

‘탁월한 정무적 감각.’ 6월 10일 내정 이후 4개월, 7월 18일 공식 임명 이후 3개월이 가까워오는 이병기 국정원장의 행보를 요약할 수 있는 한마디 역시 바로 이것이라는 게 청와대와 안보부처 안팎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는지’와 ‘본인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정교하게 짜맞춰온 100일이라는 뜻이다.

‘탁월한 정무적 감각’의 행보



국정원은 8월 하순 1급, 9월 중순 2~3급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7월 시행하는 정기인사가 새 원장 취임과 맞물려 한 달 이상 늦어진 셈. 전임 남재준 원장 시절 입성했던 군 출신 등 주요 보직자들은 남 원장 퇴임과 함께 ‘귀가’했고, 내부 출신 1급 간부 중에서도 절반 가까이가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차관급인 1~3차장과 기획조정실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7월 하순까지만 해도 국정원 주변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차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이 원장과 청와대의 결론은 전원 유임이었다. 안보 분야에 챙겨야 할 ‘공신’이 유독 많은 박근혜 정부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선택인 셈. 여기에는 외부에 공개되는 차장급 인사로 국정원이 다시 한 번 언론 지면에 오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한다. ‘공연히 시끄럽게 만들지 말자’는 이 원장의 캐릭터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간부급 인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급 90% 교체’라는 말이 회자됐던 전임 원장들의 첫 인사와 달리, 이번에는 ‘지역(근무지)은 재배치하되 직역은 바꾸지 않는다’는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 파트 장기 근무자를 분석담당 부서에 배치하는 식의 사례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원세훈 전 원장이 단행한 2009년 상반기 파격 인사는 ‘고인 물’을 갈아 조직 전체를 긴장케 한다는 취지였지만, 이후 전문성이 부족한 직원들이 아마추어 같은 행태를 연발한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관심이 집중된 또 한 가지 대목은 국정원이 제출한 간부급 인사안 가운데 청와대가 총무국장의 교체를 지시했다는 사실. 인사실무를 담당하는 총무국장은 비서실장, 감찰실장 등과 함께 ‘원장과의 교감’이 중요하기로 손꼽히는 보직이다. 남 전 원장의 경우 이 자리에 군 출신 외부 인사를 영입해 입길에 올랐을 정도. 청와대의 교체 지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엇갈리지만, 이병기 원장에 대한 청와대의 신임에 생채기를 남긴 사례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2007년 대통령선거 경선 당시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두터운 인연을 맺어온 이 원장의 이력을 감안하면 이는 여러모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 이 원장은 주일대사로 근무하는 동안에도 청와대에 직접 안보 현안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꾸준히 ‘스킨십’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 7월 인사청문회 당시 “5·16은 쿠데타”라고 강도 높게 발언한 것이 청와대 핵심 인사들의 평가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간부급 인사와 함께 지난 100일간 이뤄진 주된 변화는 대북전략국 복원으로 대표되는 조직 개편이다. 1990년대 후반 이래 북한 측과의 물밑 접촉과 의사소통을 담당했던 이 부서는 1·2차 남북정상회담 막후에서 산파역을 맡은 바 있다. 이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국정원은 간첩을 잡는 곳이지 간첩과 대화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폐지됐고, 이후 국정원은 남북관계 실무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정권 의지가 실린 조치”

국정원 대북전략국 남북대화 막후 채널 맡나

7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조윤선 정무수석과 얘기를 나누며 생각에 잠겨 있다.

이번에 이뤄진 복원 조치는 당시 각 부서로 분산했던 대북전략국의 업무와 인력을 한데 모은 형식으로 전해진다. 북한 분석 파트에서 오랜 기간 일했던 한기범 1차장 산하로, 국장 역시 내부 출신 인물이 맡았다. 엄청난 예산과 직원 수를 자랑하는 국정원에서 ‘1개국’의 위상이나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정권 의지가 실린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이병기 원장의 알려지지 않은 이력이 숨어 있다고 정통한 인사들은 전한다. 2009년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원동연, 김양건 등 북측 당국자들을 싱가포르에서 만나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할 무렵, 이 원장도 이에 관여했다는 설명이다. 임 전 장관은 청와대 안보라인 등 공식 업무 담당자들 대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주요 멤버들에게 조언과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연구소 상임고문이었던 이병기 원장 역시 작업에 함께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병기 원장은 노태우, 김영삼 정부 시절 공직 경력은 물론, 최근까지도 물밑 접촉을 통해 남북협상의 큰 틀을 만드는 ‘숨은 코디네이터’ 역할에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고 판단하는 듯 보인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의 이러한 자신감이 대북전략국 부활로 연결됐다는 이야기다.

7월 중순 이뤄진 나진-하산 철도보수 프로젝트 2차 현장 실사에 국정원이 방북 준비 실무조정을 담당했다는 소식이 의미심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5·24 조치로 통일부의 정식 개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관련 기업의 현장 실사를 지원하는 임무를 국정원이 맡았다는 것. 한 관계자는 “남 원장 퇴임 전인 2월 1차 실사 때는 국정원 측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보부처 주변에서는 청와대가 향후 남북 간 대화채널을 ‘투트랙’으로 가져가려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2월 성사된 대로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과 원동연 부부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 고위급 접촉을 공개 채널로 활용하고, 신설된 국정원 대북전략국을 비공개 채널로 가동하는 그림이다. 그 대신 논란이 이어져온 비선을 통한 막후접촉 방식은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 밖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해당 업무 담당자들을 주축으로 일을 만들어간다는 ‘원칙론’의 반영이다.

일련의 분위기는 남북 문제의 비선 개입을 강도 높게 견제해온 국정원 처지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국정원은 올해 초 ‘7인회’ 멤버로 꼽히는 여권 핵심 인사가 해외 인사를 통해 북측과 접촉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확인해 끝내 좌절시킨 바 있다. 해당 인사의 움직임과 중개역을 자임한 인물의 신뢰성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해 “당장 중단시키라”는 지시를 받아냈다는 후문. 이후 해당 인사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음은 불문가지다.

반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은 통일부 당국자들이다. 대북전략국의 움직임이 활발하던 무렵 이 부서 직원들은 대부분의 남북대화에 총리실 등의 ‘모자’를 쓰고 반(半)공개 상태에서 참여했다. 국정원이 물밑에서 북측과 협상해 윤곽을 마련하면, 통일부 등 다른 안보부처는 이를 전달받아 공개석상에서 합의문을 만든 경우도 드물지 않았을 정도. 이 시기를 또렷이 기억하는 통일부 실무자들에게 대북전략국 부활이 반가운 일일 수 없는 셈이다. 한 안보라인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가안보실이 고위급 접촉을, 통일준비위원회가 이론이나 정책 방향 업무를 맡고 나니 통일부는 사실상 할 일이 없어졌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멤버들은 여전히 남북 문제에 보수적 관점이 강한 사람이 다수고, ‘통일부 출신’에 대한 권력 핵심의 불신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남북관계 실무에 복귀한다는 건 통일부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일 것이다.”

“단기간 성과 내기는 어려울 것”

국정원 대북전략국 남북대화 막후 채널 맡나

남북 2차 고위급 회담이 열린 2월 14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한국 수석대표인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오른쪽)과 북한 수석대표인 원동연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국정원의 행보가 단기간 내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이전 시기 북한 측 인사들과 ‘안면’을 쌓았던 국정원 간부급 인사들은 6년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현직에서 물러났고, 이명박 정부 기간 ‘부역자’로 몰리며 한직을 전전했던 실무자급 역시 상당수가 퇴직을 선택한 바 있다. 새로 구성된 대북전략국 직원들이 이전 노하우나 경험을 승계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신임 대북전략국장 역시 북측과의 조정 업무에 깊숙이 개입해본 경험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북한 당국자들의 특성상 국정원과의 막후채널 복원에 선뜻 호응하고 나설 공산은 크지 않다는 것. “조직 역량을 동원하면 충분히 해낼 것”이라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연말까지는 이렇다 할 보고거리를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 상부 방침’이라고 안보부처 당국자들은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의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원칙론 역시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 대화 제의와 원칙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서두에서 설명한 이병기 원장의 ‘정무적 감각’이 새삼 주목을 끄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정원 차원의 준비 작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뤄지겠지만, ‘선을 넘는’ 발 빠른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며 이 원장과도 손발을 맞췄던 한 안보 분야 전문가의 말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최근 청와대의 혼란스러운 행보는 국내 정치에 영향을 받는 바 크다. 상황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보수층 ‘집토끼’ 유권자의 비판을 감수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월호 사고 이후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여건이 좋지 않았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병기 원장은 누구보다 이러한 기류를 명확히 읽는 사람이다. 따지고 보면 이 원장이 임명된 이유도 남재준 전 원장의 강한 자기 확신에 청와대가 부담을 느꼈기 때문 아닌가. ‘이병기 국정원’에 대한 섣부른 기대든 과도한 우려든, 현재 상황에서는 모두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유다.”



주간동아 2014.10.06 957호 (p48~50)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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