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7

2014.10.06

시간 멈춘 중세 도시 골목엔 행복이 살고 있다

13세기 독일계 작센족이 건설…구시가 스파툴루이 광장이 여행 중심지

  • 백승선 여행칼럼니스트 100white@gmail.com

    입력2014-10-06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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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멈춘 중세 도시 골목엔 행복이 살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900m 탐파 산에 오르면 붉은 지붕이 끝없이 이어진 중세의 브라쇼브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스파툴루이 광장에서는 주말마다 장이 선다. 직접 재배하고 만든 여러 먹거리가 주를 이루는데, 하나씩만 맛봐도 배가 부를 정도다. 모두의 ‘정성’이 가득 담긴, ‘믿음’이 가는 시장이다. 18세기 성 밖에서 살던 루마니아인들이 유일하게 성안으로 오고갈 수 있었던 스케이 성문(맨 왼쪽부터).

    루마니아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뻗어 있는 카르파티아 산맥 기슭, 브라쇼브(Brasov)는 산의 기운에 감싸 안긴 듯 오목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한눈에도 중세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브라쇼브는 13세기 독일계 작센족이 건설한 도시다. 그래서일까. 독일식 고딕 양식에 독일인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파스텔 톤 건물이 곳곳에서 여행자 시선을 빼앗는다. 루마니아에서 중세시대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지만 신식 빌딩들이 올라가면서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로 변모해가는 중이다.

    광장과 주변이 잘 어울리는 곳

    브라쇼브 중앙역에서부터 명소가 몰려 있어 여행 중심지 구실을 하는 구시가까지는 약 3km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중앙역 앞에서 4번 버스를 타고 10분가량 가다 오른쪽으로 널따란 공원이 보이면 하차해야 한다. 통일광장(Piata Unirii)으로, 약간만 걷다 보면 보행자의 천국인 공화국거리(Str. Republicii)가 나온다. 바로 이곳이 브라쇼브 여행의 시작점이다.

    오래된 중세 건물들이 이어지다 사라지면 삼각형 모양으로 훤하게 뚫린 광장이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브라쇼브 여행의 중심인 구시가 중에서도 핵심인 스파툴루이 광장(Casa Sfatului)이다. 의회광장이라 부르는 광장의 중앙에선 원형 분수가 물줄기를 힘차게 뿜고 있고, 분수대 주변 대리석 의자에는 사람들이 앉아 여유롭게 휴식을 즐긴다. 이렇게 광장과 주변 건물들이 잘 어울리는 곳이 동유럽 어디에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시간 멈춘 중세 도시 골목엔 행복이 살고 있다

    브라쇼브 여행의 중심인 구시가 스파툴루이 광장 북쪽에 서 있는 옛 시청사 건물. 현재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며 안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광장 북쪽에는 붉은 지붕과 노란 시계탑이 예쁘게 조화를 이룬 옛 시청 건물이 서 있는데 현재는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한다. 이 건물 안에 관광안내소가 자리해 브라쇼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건축 당시 용도는 감시탑으로 원래 높이는 48m였는데, 15세기 증축 과정에서 58m로 더 높아졌다. 감시탑 꼭대기에서 병사들이 적의 침입 등 위급 시 나팔을 불어 시민에게 알렸다고 한다. 나이 지긋한 시민 가운데는 아직도 이곳을 ‘트럼펫의 탑’이라 부르는 이가 적잖다. 지금도 매일 오후 6시면 병사와 나팔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팔을 불며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이벤트를 벌인다.



    스파툴루이 광장은 다양한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들이 둘러싸고 있고 직접 만든 물건을 파는 노점상과 거리 악사,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 살아 숨 쉬는 중세의 광장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진주 같은 곳이다.

    스파툴루이 광장에서 나와 탐파 산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10분가량 걸으면 스케이 성문(Poarta Schei)이 여행객을 반긴다. 옅은 노란색의 예쁜 모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문 옆으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문이 따로 나 있다. 13~17세기 브라쇼브가 색슨족의 지배를 받던 시기 루마니아 원주민은 성안에서가 아닌, 이 문과 성벽으로 격리된 스케이 지구에서만 거주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 원주민은 18세기부터 5개의 성문 가운데 오직 이 문으로만,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통행료를 내고 성안을 오갈 수 있었고, 성안에서는 주택을 비롯한 어떤 재산도 소유할 수 없었다. 현재의 스케이 성문은 1827년 만들어졌는데 아픈 역사와는 어울리지 않게 매우 아름답다. 이제는 브라쇼브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전 세계인에게 알려져 있다.

    스트라다 스포리의 추억과 낭만

    시간 멈춘 중세 도시 골목엔 행복이 살고 있다

    폭 135cm, 길이 80m의 작은 골목으로 성인 2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스트라다 스포리(STRADA SFORII)’는 브라쇼브에서 가장 재미있는 길이다(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군의 공격을 받아 지붕과 내부까지 불타버린 후 아직까지도 검게 그을어 있어 흑색 교회라 부르는 독일식 고딕 양식의 교회.

    유럽 도시여행의 백미는 역시 ‘골목’이다.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바로 거기 있다. 브라쇼브에서의 골목여행도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스파툴루이 광장에서 두 블록쯤 걸으면 ‘스트라다 스포리(STRADA SFORII)’라고 적힌 화살 모양의 까만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 이정표는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이곳은 이정표를 찾는 수고로움보다 더 많은 재미를 선사한다.

    폭 135cm, 길이 80m의 골목은 성인 2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데, 가다 보면 점점 더 좁아져 결국 혼자 걸어가야 할 정도다. 양팔을 뻗으면 벽에 닿는 이 골목에서는 양쪽 벽을 짚은 인증 사진이 필수다. 실제로 이곳은 연인의 골목으로도 유명하다. 여러 포즈로 사진을 찍고, 심지어 연인을 어깨에 태우고 사진을 찍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17세기 고문서에도 언급된 골목으로, 원래는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소방도로의 기능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흑색 교회(Biserica Neagra·검은 교회)는 브라쇼브가 속해 있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에서 가장 큰 독일식 고딕 건축물로, 1385년 짓기 시작해 15세기 완공할 때까지 100여 년이 걸렸다. 흑색 교회란 이름은 1689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군의 공격을 받아 건물 외부와 내부가 불에 타 검게 그을린 데서 유래했다. 폭 38m에 길이 89m, 탑 높이만 65m인 이 교회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성령 교회만큼이나 웅장해 보인다.

    탐파 산 전망대서 시가지 조망

    교회 외관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은 구조물, 조각상들로 장식돼 있고, 교회 탑엔 루마니아에서 가장 무거운 6.3t 종이 달려 있다. 교회 내부는 화려한 카펫과 17~18세기 부유층으로부터 기부받은 119점의 물품들로 아름답게 장식됐다.

    그래도 흑색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839년 만든 파이프오르간이다. 총 4000개 파이프 관으로 만든 이 오르간은 유럽 남동쪽 지역에서 가장 큰 것이다. 음의 공명과 우아하고 정교한 음향 덕에 이전 시대는 물론, 지금도 큰 규모의 클래식 콘서트에 쓰일 정도로 귀한 악기이자 보물이다. 베를린 부흐홀츠(Buchholz)사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단 하나의 제품으로 알려졌다. 한여름인 7월과 8월 저녁에는 일주일에 3번 정도 이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브라쇼브 구시가를 벗어나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900m 탐파 산에 오르면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 전망대가 나온다. 왕복 1만 원의 케이블카 요금을 내고 2분 30초 정도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내려다보는 브라쇼브의 전망이 무척 아름답다. 두브로브니크의 스르지 산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의 붉은 지붕 풍경에 결코 뒤지지 않는 멋진 풍광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지붕과 골목길을 보면 사람들이 왜 브라쇼브를 루마니아의 최고 도시라고 말하길 망설이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풍경과 마주하다 보면 시간마저 느리게 가는 듯하다.

    시간 멈춘 중세 도시 골목엔 행복이 살고 있다

    브라쇼브 근처에 있는 길이 90km의 파가라산 횡단도로(Transfagarasan Road)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와 ‘죽기 전 드라이빙해야 하는 도로’에 꼽힌 스릴 넘치는 길로, 꼭 한 번 달려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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