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2

2014.06.16

“지역주의 높은 벽 넘기 삼세 번은 해야 안 되겠나 ”

인터뷰 l 김부겸 대구시장 선거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6-16 09: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역주의 높은 벽 넘기 삼세 번은 해야 안 되겠나 ”

    새누리당 텃밭으로 통하는 대구에서 40%를 넘는 지지율을 얻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김부겸 전 의원.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했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6월 10일 찾은 대구시내 곳곳에는 이렇게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 ‘낙선인사’를 만든 김부겸(56) 전 국회의원은 6·4 전국동시지방선거 후 정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간판을 달고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해 40.3%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을 얻으며 ‘선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선전은 패배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이번 선거에서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인은 55.9%의 득표율로 김 전 의원을 여유있게 누르고 승리했다. 부산, 인천, 경기, 강원 등 전국 각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득표율 1~2%p차이로 승패가 갈린 점을 감안하면 김 전 의원의 패배는 ‘석패’ 범주에도 들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대구라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이다. 대구는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80.1%의 압도적 지지를 보낸,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그곳에서 1년 반 사이에 여당 후보에 대한 지지는 25% 가까이 하락하고 야당 후보는 더블스코어 이상의 성적을 냈다. 그 변화의 중심에 ‘김부겸’이 있다.

    김 전 의원은 대학시절 유신반대 시위를 하다 구속된 전력이 있는 운동권 출신으로, 경기 군포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한 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고향 ‘대구행’을 선언했다. 이 선거에서 40.4%의 지지를 얻으며 화제를 모은 그는 이번 선거에서 또 한 번 40%의 벽을 넘어서며 ‘지역주의 극복’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선거가 끝나고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6월 10일, 대구시내 한 호텔에서 마주 앉은 그는 아직 치열한 선거전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잠긴 목소리도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눈빛은 빛났고, 곳곳에서 그를 찾는 전화가 쉼 없이 걸려왔다. ‘졌지만 지지 않은’ 정치인 김부겸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40% 지지 정말 놀라운 일

    ▼ 권영진 당선인에게 약 16%p차로 패배했다. 이에 대해 ‘지역주의를 넘어선 놀라운 성과’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선거기간 대구의 바닥 민심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나.

    “선거기간 내내 우리가 권 후보를 추격했고, 막판에는 차이가 3~5% 수준까지 좁혀진 게 사실이다. 이건 우리뿐 아니라 저쪽 캠프에서도 조사한 결과다. 분위기가 점점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렇게 되니 저쪽 움직임이 달라지더라. 5월 말부터 선거 현수막을 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 흘리는 모습으로 바꿔 달고, 선거일 이틀 전 권 후보와 지역 국회의원들이 시내 광장에 모여 큰절을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권 후보는 ‘대구시민께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우리가 만든 대통령 우리가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그렇게 선거전이 ‘대통령 구하기’ 구도로 재편되니 정책이나 공약은 다 사라져버리더라. 막판 샅바싸움에서 내가 진 거라고 본다.”

    ▼ 그럼에도 40%가 넘는 지지를 얻었다. 2012년 총선 당시 지역구였던 ‘수성갑’ 지역에서는 50.1%를 득표해 권 당선인(46.7%)을 누르기까지 했다.

    “그 부분은 참 눈물겹다. 대구가 정치적 상징성이 큰 도시 아닌가. 여기서 야당 후보가 시장이 되는 건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선거운동 기간 만난 많은 시민이 내게 그 말씀을 하면서 ‘무소속 하면 안 되나’ 하고 안타까워하셨다. ‘김모’ 개인은 마음에 드는데 그 결과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승리로 나타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열 분 중 네 분이 내게 표를 주신 건 놀라운 일이다. 대구시민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 결과라 생각하고, 나를 그런 의사를 표현할 매개체로 써주신 데 대해 눈물겹게 감사한다.”

    김 전 의원은 인터뷰 내내 자신을 ‘김모’라고 칭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개인 ‘김모’가 만든 것이 아니며, 자신보다는 이 시대 대구시민의 열망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 대구시민의 열망이 ‘변화’라는 뜻인가.

    “그렇다. 지금 대구에는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에 복귀한 1990년대 후반 이후 대구시민들은 오랫동안 제대로 된 정치적 의사표현을 못 했다. 그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집단적인 의무감 내지는 의리의식 같은 것 때문이다. 이제는 상당 부분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서 억눌려 있던 변화에 대한 바람이 분출하고 있는 거다. 첫째 원인은 경제난이다. 대구 경제는 지난 20년간 계속 침체돼왔다. 지역총생산(GRDP)은 전국 최하위고, 매년 약 8000명의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만한 새로운 성장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오는 답답함이 도시 전체에 퍼져 있다.”

    “지역주의 높은 벽 넘기 삼세 번은 해야 안 되겠나 ”

    선거 막판 대구시내 곳곳에 걸린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의 현수막. 권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 흘리는 사진을, 김 후보는 박 대통령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사용했다(왼쪽). 김부겸 전 의원은 대구시장 선거전에서 ‘박근혜 대통령 김부겸 시장 대구 대박’이라는 구호를 썼다.

    ▼ 그런 분노와 상실감 같은 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터져 나왔다는 건가.

    “그렇다. 전통적으로 대구는 선거가 의미가 없는 지역이었다. 여당 후보가 결정되는 순간 사실상 선거가 끝났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야당에서 뭔가 제대로 싸워볼 만한 선수가 나온 거 아닌가. 시민들이 ‘김모는 맷집 좀 있겠구나’ 생각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한 거라고 본다. 선거유세를 다녀보면 나를 붙잡고 가슴속 응어리를 토해내고, 이번에는 우리 목소리를 꼭 좀 정책에 반영해달라고 하는 분이 정말 많았다. 그렇게 터져 나오던 변화의 열망을 상대측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이용해 억지로 틀어막은 점이 아쉽다.”

    대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 전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사용한 구호도 ‘박근혜 대통령 김부겸 시장 대구 대박’. 그는 야당 후보임에도 당선하면 박근혜 정부와 협력하겠다고 공언했고, 심지어 대구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짓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그의 이러한 ‘친박(親朴)행보’는 야권 지지층 내에서 비판 대상이 됐다.

    ▼ 일부에서는 야당이 선명한 색채를 내지 않고 이처럼 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이 패배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 평론을 하는 분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뽑은 정치 지도자다. 특히 대구시민은 10명 중 8명이 그를 지지했다. 그런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정치를 하겠다는 게 말이 되나. 박 대통령과 협력하는 건 시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광역단체장은 지역발전과 지역주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선명성을 강조하겠다며 대통령과 사사건건 맞서면 지역이 어떻게 되겠나. 나는 대구시민들이 야당시장도 대통령과 협력해 지역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갖게 해드리고 싶었다.”

    박정희 광장·김대중 광장 교류해야

    ▼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 공약은 어떻게 된 건가.

    “그 공약의 배경에는 대구시민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다. 대구에 와보니 이분들 정신세계의 바탕에는 자신들이 근대화 시대 주역이었다는 자부심, 그리고 그 시대를 앞장서 끌고 갔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이 있더라. 그런데 그걸 드러내놓고 자랑할 공간이 없는 거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두 기둥이 민주화와 산업화라고 할 때, 민주화 중심지는 광주 아닌가. 광주에 있는 김대중 컨벤션센터는 그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광주시민들은 그곳에서 집회를 열고 각종 문화공연과 심지어 결혼식까지 한다. 말하자면 광장인 셈이다. 나는 대구에도 그런 광장이 필요하다고 봤다.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만들어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교류한다면, 두 지역이 서로를 인정하는 첫 걸음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봤다.”

    ▼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크게 엇갈리는 게 현실이다. 특히 야권지지층에서는 그를 산업화의 상징으로 삼는 데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박정희 정부 시대에 고통을 겪고 희생된 분들 중 내 공약에 충격을 받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미 공개석상에서 여러 번 밝혔지만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대구라는 지역에서 이곳 시민과 더불어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으로서 대구시민이 가진 자부심과 가치를 부인할 수는 없다. 대구에 있는 박정희라는 광장과 광주의 김대중이라는 광장이 서로 교류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상생정치의 바탕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는 이 두 세력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데 달려 있다. 그것이 더 나아가 통일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이 화두를 던졌다.”

    “지역주의 높은 벽 넘기 삼세 번은 해야 안 되겠나 ”
    김 전 의원은 2011년 펴낸 자서전 ‘나는 민주당이다’에서 “1980년대 양 김 분열 이후 한국 정치는 지역주의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근원적 균열이자 망국적인 병폐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나 같은 경계인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며 장벽이었다. TK 출신이 민주당 정치를 한다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주의라는 악연을 끊기 위해 몸부림쳐온 것이 나의 정치 역정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고 회고했다.

    1988년 고(故) 제정구 의원 등과 함께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김 전 의원은 그의 말처럼 줄곧 지역주의 벽을 넘어서려고 분투해왔다. 2012년 총선에서 세 번 연거푸 승리한 지역구를 뒤로하고 대구 출마를 결정했을 때도 기자회견을 통해 “지역주의, 기득권, 과거라는 세 개의 벽을 넘기 위해 민주당 불모지인 대구에 출마한다”며 “고향 대구로 내려가 민주당의 마지막 과제,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가 자서전 제목을 ‘나는 민주당이다’로 삼은 것도 개인 김부겸으로서가 아니라 민주당 후보 김부겸으로 대구에서 당선해 지역주의에 파열음을 내겠다는 뜻에서다.

    지역주의 사라져야 변화 시작

    ▼ 지역주의 청산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가 뭔가.

    “지역주의가 우리나라 발전을 가로막는 암덩어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건 국민도 알고 정치인도 다 안다. 그런데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이 그걸 우려먹어 도통 사라지지 않는 거다.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놓으면 정치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정책 개발할 필요도 없고 새로운 어젠다, 비전을 고민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어떻게 저 당을 찍어요’만 하면 자리가 보전된다. 이런 행태가 수십 년간 반복되면서 지금 영호남이 얼마나 비참해졌나. 현재 대구와 광주가 ‘달구벌 빛고을 동맹’, 이른바 ‘달빛동맹’을 맺고 있다. 과거 고구려의 위협에 맞서 ‘나제동맹’을 맺었던 때 같은 절박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지역주의가 사라지면 이런 현실에 분명히 변화가 생긴다. 정치인들이 지금보다 훨씬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내놓을 것이다. 그런 질 높은 정치가 시작되면 국민이 정치를 불신할 리 없다.”

    ▼ 그럼 다음에도 또 대구에서 출마하나.

    “물론이다. 인생사 삼세 번 아닌가. 2016년 총선에서 야당 간판 달고 또 한 번 승부를 겨룰 것이다. 이번에 대구시민이 ‘김모’ 개인에게는 격려를, 그리고 내가 내건 정치 신로를 슬로건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보겠다는 신호를 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받았는데 내가 어디를 가겠나.”

    이런 김 전 의원의 행보는 생전 여당 텃밭인 부산지역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면서 ‘바보’라는 별명을 얻고, 이를 발판으로 ‘전국구 정치인’으로 성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이런 평가에 대해 김 전 의원은 “지나치게 과분한 말씀”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속이 꽉 찬 알곡 같은 분이다. 어떤 문제든 절대 피하지 않는 투지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흐름을 따르고 때로는 (문제를) 피하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의원도 6·4 지방선거 이후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건 사실이다.

    그는 이에 대해 “아직은 섣부른 이야기”라며 선을 그었다. “지금 내게는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오랜 목표의 결실을 맺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대구에서 야당 간판으로 당선되면 광주에서도 여당 당선인이 나올 것이고, 단단한 듯 보이는 지역주의에 파열이 시작될 것”이라며 “다음 행보는 그 뒤에생각해볼 문제”라고 밝혔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