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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비경 트레킹 | 제주 용눈이오름

올라보라, ‘삽시간의 황홀’ 만날 터이니

사진작가 김영갑이 사랑한 오름 곡선의 미학…제주의 독특한 풍광과 서정 펼쳐져

  •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올라보라, ‘삽시간의 황홀’ 만날 터이니

올라보라, ‘삽시간의 황홀’  만날 터이니

제주 용눈이오름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억새 물결 속에서 한라산과 오름 군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1996년 제주 용눈이오름(247.8m)을 처음 올랐다. 정말 좋아 눈물이 났다. 초원의 부드러운 곡선과 시원한 전망, 말과 소가 풀을 뜯는 한가로움, 무덤과 오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 그야말로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취가 살아 있었다. 그 후 제주를 찾으면 습관적으로 용눈이오름을 걸었고, 그때마다 다른 풍경과 감동으로 ‘삽시간의 황홀’을 느꼈다.

구좌읍 오름 1번지의 대표 오름

제주가 우리나라 땅인 것은 축복이다. 풍부한 녹지, 아름다운 자연과 독특한 문화가 한반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주를 가장 제주답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오름이다. 오름은 제주 사람에게 대대로 집 뒷산이자 마소를 키우는 일터, 그리고 무덤이었다. 그래서 제주 사람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생겼다.

오름은 제주에 산재한 기생화산으로,‘오르다’의 명사형에서 온 말이다. 제주에는 오름이 대략 368개 있다. 그 많은 오름이 각각 독특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중 용눈이오름이 가장 유명하다.

제주시 구좌읍은 용눈이오름을 비롯해 다랑쉬오름, 동거믄오름, 높은오름, 앞오름(아부오름), 당오름 등 수많은 명봉을 품고 있어 오름 1번지로 통한다. 용눈이오름은 송당~수산 간 16번 도로가 구좌읍과 성산읍을 교차하는 경계에 남북으로 누워 있다. 그 이름은 굼부리(분화구) 3개가 용의 눈을 닮았다고 해서, 혹은 ‘용이 누워 있는 산(龍臥岳)’ 또는 ‘용이 노는 산(龍遊岳)’에서 나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용눈이오름은 산처럼 솟은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누워 있는 오름이다.



용눈이오름은 사계절 아무 때나 좋지만, 특히 가을철에 아름답다. 억새와 수크령 군락이 오름을 수놓고 시야도 넓게 열린다. 또한 용눈이오름은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운이 좋으면 성산일출봉과 우도 사이에서 떠오르는 멋진 해를 감상할 수 있다. 일단 산등성이에 올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서 용눈이오름이 만들어내는 곡선과 한라산, 높은오름, 다랑쉬오름, 좌보미오름, 백약이오름, 성산일출봉, 바다 등이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어우러진 모습을 즐기면 된다. 거리는 약 2.5km로 1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지만, 풍경을 즐기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난다.

오름 탐방은 주차장 앞에서 시작한다. 예전에는 주차장이 없어 불편했지만, 용눈이오름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새롭게 큰 주차장을 조성했다. 철조망 앞에 있는 문을 통과하면 길이 오른쪽으로 나 있다. 대개 오름은 길이 확실치 않아 대충 정상 방향으로 올라가면 되지만, 용눈이오름은 길이 뚜렷하다. 휘파람을 불며 걷다 보면 곧 나지막한 구릉에 올라선다. 소 떼가 풀을 뜯고 있다. 그 한가로운 모습 뒤로 봉우리 2개가 마치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 솟아 있다. 부드러운 곡선이 예사롭지 않다. 그 품 안에 무덤 하나가 고요히 자리 잡았다.

잘생긴 다랑쉬오름의 균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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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물결 너머로 펼쳐진 제주 성산일출봉.

여기서 슬그머니 길을 따라 오르면 사방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돌아보면 시원하게 전망이 뚫린다. 막힐 것 없는 풍경에서 유독 눈길을 붙잡는 것은 잘생긴 다랑쉬오름의 자태다. 다랑쉬오름은 높이 382.4m로, 구좌읍 일대에서 높은오름(405.3m)을 빼고 가장 높다. 드넓은 벌판에 원추형으로 불끈 솟았는데, 균형 잡힌 맵시가 예사롭지 않다. 다랑쉬오름은 옆으로 작은 새끼오름을 거느리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산 위가 둥그렇게 팬 것까지 다랑쉬오름과 닮았다. 그래서 아끈다랑쉬오름이라 부른다. ‘아끈’은 제주 방언으로 버금가는 것, 둘째 것이라는 뜻이다.

산등성이에 오르면 신기하게도 봉우리 뒤편에 숨어 있던 봉우리 2개가 나타난다. 용눈이오름은 높낮이가 제각각인 봉우리 4개가 서로 부드럽게 이어진 형상이다. 그 가운데에 제법 큰 굼부리가 형성돼 있는데, 물이 고여 있지는 않다. 이제 굼부리를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게 된다.

첫 번째 봉우리에 오르면 비로소 용눈이오름의 전체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 4개를 중심으로, 각 방향으로 부챗살 모양처럼 산등성이가 여러 가닥 흘러내린다. 또한 곳곳에 알봉을 거느리고 있어 용눈이오름을 걷다 보면 정상이 어딘지, 지금 걷는 위치가 어딘지 꼭 미궁에 빠진 기분이 든다. 너울너울 걸어 두 번째 봉우리에 닿으면 동쪽으로 성산일출봉 일대가 멋지게 펼쳐진다.

세 번째 봉우리는 좀 떨어져 있어 내려갔다가 올라야 한다. 이곳이 용눈이오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지만, 그것을 느낄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용눈이오름은 보는 장소에 따라 봉우리 4개가 모두 정상 구실을 한다. 중심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부드러운 곡선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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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용눈이오름에서 본 다랑쉬오름은 균형미가 일품이다.

다른 오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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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곡선미 면에서 용눈이오름을 따라올 오름이 없다(위). 주차장 가는 길에서 본 용눈이오름. 보는 장소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용눈이오름의 곡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주변 오름과 어우러질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곡선(산등성이) 너머로 다랑쉬오름, 한라산 등이 올라와 있는 풍경은 특이하면서 감동적이다. 이런 식으로 용눈이오름은 다른 오름을 풍경의 중심으로 만든다. 이것이 용눈이오름의 미덕이자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용눈이오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영갑이다. 그는 28세 때인 1985년 ‘도 닦는 마음으로 10년만 보내자’고 제주에 들어왔다. 그러나 제주의 오름과 바람, 구름에 매혹돼 2005년 루게릭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제주를 떠나지 못했다. 몹쓸 병과 사투를 벌이며 사진에 열정을 불태운 그의 일생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김영갑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오름에서 흐르는 바람과 구름을 즐겨 담았고, “제주의 꼭꼭 숨은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즐겼던 장소가 용눈이오름이다. 그는 이곳에서 “사진은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승부를 거는 처절한 싸움이다. 한번 실수하면 그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특히 삽시간의 황홀은 그렇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정상에서 부드럽게 이어진 네 번째 봉우리에 닿으면 하산을 앞두고 용눈이오름이 기막힌 풍광을 선사한다. 저물어가는 역광 속에 은빛으로 번쩍이는 억새 물결 너머로 한라산, 좌보미오름, 손지오름, 높은오름, 백약이오름 등이 일필휘지로 펼쳐진다. 아! 감탄과 감동이 밀려오면서 김영갑이 이야기한 ‘삽시간의 황홀’이 떠올라 한동안 걸음이 멈춰진다.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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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식당의 돼지두루치기.

● 교통

자가용은 1136번 도로 손자봉 삼거리에서 ‘용눈이오름’ 이정표를 보고 하도리 방향으로 1km쯤 가면 용눈이오름 주차장이 나온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710번 번영로(송당 경유) 버스가 06:25~20:35, 1일 10회 운행한다. 용눈이오름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성산읍 고성리에서 택시를 타면 약 10km 거리다.

● 맛집

제주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는 버스 기사들이 애용하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그중 현옥식당(064-757-3439)이 군계일학이다. 특히 돼지두루치기는 제주의 어느 유명 식당 흑돼지 요리가 부럽지 않다. 얇게 썬 삼겹살을 불판에 먼저 볶다가 콩나물, 배추 등이 들어간 양념을 함께 넣으면 된다. 1인분도 가능하며 가격은 6000원. 정식은 4000원.

● 숙소

제주 올레길 덕분에 싸고 시설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생겼다. 용눈이오름은 성산을 베이스캠프로 한다. 성산게스트하우스(064-784-6434)와 시드게스트하우스(064-784-7842)가 좋다. 시드게스트하우스에서는 매일 아침 용눈이오름 일출투어를 진행한다.



주간동아 2013.11.25 914호 (p56~58)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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