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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모임’이라 쓰고 ‘세력화’라 부른다

새누리당 내년 全大·지방선거 앞두고 물밑서 권력투쟁 한창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모임’이라 쓰고 ‘세력화’라 부른다

‘모임’이라 쓰고 ‘세력화’라 부른다

친박 구심점인 서청원 의원(오른쪽)과 최근 광폭행보에 시동을 건 김무성 의원이 11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분주하다. 유력 차기 당권주자들은 각종 연구모임을 주도하고,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거나 식사자리를 마련하는 등 광폭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연구모임은 역사공부모임을 시작으로 국가경쟁력 강화, 통일 연구 등 주제는 다양하지만, 모임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차기 당권과 총선을 염두에 둔 세력화 성격이 짙다. 모임을 주도하는 인사는 매주 공부모임을 통해 의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면서 우군(友軍)을 만들고, 참여 의원들은 눈도장을 찍어두는 정치공학이 작동하는 것이다.

내년은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전대)와 지방선거, 국회의장 선거가 예정돼 있는 해. 차기 당대표는 2016년 4월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는 만큼 새누리당 의원들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당 안팎에선 벌써부터 김무성 vs 서청원, 김무성 vs 친박(친박근혜)계 후보 등 당권 가상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차기 당권을 향한 권력투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권 가상 대결구도 형성

가장 활발하게 진지구축에 나선 이는 김무성 5선(選) 의원이다. 차기 당권주자 1순위로 꼽히는 그는 9월 당내 최대 연구모임인 ‘근현대 역사교실’을 이끌면서 매주 모임 인사말을 통해 보수 우파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모임 결성 당시 현직 의원 102명이 참여해 김 의원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서청원 의원이 10·30 재·보궐선거를 통해 컴백하면서 김 의원의 진격은 다소 주춤해지는 듯 보였지만, 최근 다시 진격 나팔을 불고 있다.

10월에는 이인제 의원이 주도하는 ‘통일을 여는 국회의원 모임’에 이름을 올렸고, 11월 11일에는 원혜영 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은 고령화사회 연구모임 ‘퓨처라이프 포럼’을 출범했다. 새누리당 김용태, 박민식, 서용교, 나성린, 안종범 의원과 민주당 유승희, 김춘진, 윤후덕, 양승조 의원 등 여야 의원 40여 명, 외부 전문가 그룹 34명이 참여했다. ‘근현대 역사교실’을 통해 ‘보수 아이콘’ 이미지를 선점한 김 의원이 여야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모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의원의 주독야회(晝讀夜會)는 계속됐다. 김 의원은 포럼 첫 세미나에 참석한 뒤 대구로 내려가 주성영 전 의원 출판기념회 뒤풀이 모임에 참석하는 등 분주한 일정을 이어갔다. 당시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김 의원의 뒤풀이 참석 사실을 사전에 알렸지만, 대구지역 국회의원 12명 중 5명만 참석했다. 박 대통령 텃밭인 대구에서 지역구 의원들과 만났다는 자체만으로도 김 의원의 광폭 행보를 짐작게 한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참석 의원 수를 봐서는 대구·경북(TK) 지역에서의 김 의원 위상을 가늠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김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지역 의원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등 스킨십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K 지역 한 의원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김 의원이) 일부러 시간을 내 대구를 찾은 만큼 나는 식사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TK 지역 의원 대부분이 친박계고, 박 대통령의 공천을 받은 사람들 아닌가. 민감한 이 시점에 정치인들이 모여 식사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때가 때인 만큼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분위기였다. 김 의원과의 만남이 자칫 박 대통령이나 친박 핵심에 밉보일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고, 차기 당권주자 1순위인 김 의원과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복잡했다.”

‘모임’이라 쓰고 ‘세력화’라 부른다

통일을 화두로 정치적 재기에 나선 이인제, 충청권 대표 주자로 부상한 이완구, 친박 핵심으로 당권 도전이 예상되는 최경환 원내대표(왼쪽부터).

김무성 vs 서청원 그리고 친박

‘모임’이라 쓰고 ‘세력화’라 부른다

윤상현 원내대수석부대표(왼쪽)와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

그의 말처럼 현재 새누리당 의원 사이에는 당권 유력주자인 김무성, 서청원 의원을 보는 두 가지 눈이 있다. 바로 박 대통령과의 관계다. 김 의원은 2005년 박근혜 당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맡으며 인연을 맺은 뒤 지난해 대통령선거(대선)에서 박근혜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박 대통령과 갈등하면서 탈박(脫朴)한 이후 3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김 의원의 신뢰관계가 회복됐다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김 의원이 각종 연찬회나 사석에서 박 대통령을 평가한 개인적인 말이 청와대에 보고돼 박 대통령 심기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친박 의원 일각에선 차기 여권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양강(兩强) 체제를 형성하는 김 의원이 당대표가 돼 ‘마이웨이’를 고집하면 집권 중반기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청원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겠다”며 ‘마지막 잎새’를 자처한다. 청와대 역시 당정청과 대야 관계에서 서 의원에게 기대를 거는 눈치다. 서 의원은 특유의 노련함으로 몸을 낮추지만 행사 초청과 축사, 면담 요청이 이어지면서 시간 단위로 움직인다. 11월 5일 서 의원이 참석한 서울 여의도 중식당에서 열린 경기지역 새누리당 의원 만찬에선 전체 의원 21명 가운데 20명이 참석해 정치 현안과 내년 지방선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는 전언이다. 서 의원은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와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 경기도 대선 8대 공약 실천을 위한 대토론회, 지역구 행사 등으로 시간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치인의 행동이나 발언 하나하나는 모두 정치적으로 해석되게 마련이지만, 최근 주요 인사의 잇단 주독야회는 100% 정치 행위다. 당대표 선거는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평소 식사를 자주하면서 친해지고, 여기에 연구모임을 과시하며 세력까지 더하면 표는 자연히 모이게 된다. 1인 2표 당대표 선거에선 대의원의 경우 보통 1표는 지역구 의원이 미는 사람에게 던지지만, 1표는 세력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 될 만한 사람에게 투표한다. 전대 때 지역구에서 버스 2대에 대의원을 실어 전대 행사장으로 가는데, 이때 차 안에서 조용히 ‘특정 후보를 찍어라’는 지령이 내려온다. 그럼 1표는 의원 ‘오더’대로, 나머지 1표는 대의원이 알아서 투표한다. 결국 당권주자들이 식사하고 모임을 통해 세를 불리는 것은 ‘의원 오더 1표’와 ‘나머지 1표’를 동시에 공략하는 정치 행위다. 김 의원 독주체제에서 서 의원 컴백으로 경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권력투쟁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로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김 의원의 광폭 행보를 견제하려는 친박계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유기준 최고위원과 충남도지사를 지낸 이완구 의원이 주도하는 ‘국가경쟁력강화모임’은 11월 18일 창립총회를 열고 친박계 세를 과시했다. 이날 행사장에선 서 의원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 등 중량감 있는 친박 인사들이 축사를 했고, 서 의원이 가입을 언급하면서 분위기를 고무했다. 서 의원은 “나도 포럼에 들어가긴 들어가야 하는데 생각 중”이라고 하자 포럼 총괄간사인 유 최고위원이 “가입을 준비해두겠다”고 화답한 것.

이 모임은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와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 등 친박계 핵심과 김기현 정책위의장, 김영우, 김희정, 주호영 의원 등 친이계, 충청권 지분을 쥐고 있는 이완구, 정우택 의원이 한데 모였다. 모임 참가자들은 부인하지만, 당 안팎에선 차기 당권을 앞둔 친박 의원들의 진지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 모임에 가입한 한 의원은 다음과 같이 속내를 드러냈다.

‘모임’이라 쓰고 ‘세력화’라 부른다

11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근현대 역사교실’에서 참석 의원들이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앞줄 오른쪽)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논리적 정립’이란 주제의 강연을 듣고 있다.

“어느 날 친박 3선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하면 국가경쟁력을 높일지 공부해보자며, 모임을 만들 테니 가입하라고 권했다. ‘나쁠 건 없지’ 싶어 수락했는데 나중에 보니 원조 친박계 핵심이 대거 모이는 친박 주류 모임이었고, 김무성 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기 당권주자인) 김 의원 눈 밖에 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처럼 당권주자들이 세를 불려나갈 때는 당대표가 누가 될지 잘 보고 줄을 서야 하는 거 아닌가(웃음). 김 의원의 경쟁자인 서 의원이 이 모임을 기반 삼아 당권 도전에 나설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고, 당권에 나서지 않더라도 최 원내대표나 충청권 맹주인 이완구 의원을 측면 지원해 김 의원과 대결구도를 만들 수도 있다. 당초에는 원외 인사를 포함해 외연을 최대한 확장하려 했지만 정치적 해석이 부담스러워 현역 의원만 받기로 한 걸로 안다.”

내년 전대에선 김 의원과 친박계의 최 원내대표, 이 의원 등이 당대표 도전에 함께 나서고 서 의원이 외곽에서 친박 의원을 지원한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현재로선 대의원 표 단속을 하더라도 김 의원의 당대표 당선이 유력한 만큼 친박 의원이 3, 4등으로 최고위원에 이름을 올려 지도부 내에서 1차 견제를 한다는 시나리오다. 지도부에서 이견이 있을 때는 서 의원이 외곽에서 친박 지도부를 지원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의원 역시 최근 충청권 의원들의 중심에 서며 ‘포스트 심대평’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포스트 심대평’ 이완구 급부상

이런 분석의 배경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원하는 박 대통령이 지방선거와 대야 관계를 고려할 때 김 의원과 친박계가 충돌하는 ‘적전 분열’ 양상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 자리한다. 자칫 김 의원과 서 의원이 정면충돌해 당이 흔들리거나 쪼개지면 조기 레임덕도 올 수 있다. 따라서 김 의원과 친박계가 일단 세를 형성해가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형국이다. 서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고 김 의원이 당대표가 되는 빅딜설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최우선 과제다. 18대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곧바로 치러져 친이(친이명박)계가 대거 공천을 받았지만, 2016년 4월 총선은 박 대통령 임기 후반기를 향하는 시점 아닌가. 이때는 보통 대통령과 미래 권력자, 당대표 등이 일정 공천지분을 행사하는데, 그렇더라도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몇 명 더 공천하려고 당대표를 자기 사람으로 앉히는 스타일은 아니다. 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면 순리, 원칙, 정도를 강조한다. 지금으로선 계파 간 대립보다 건전한 경쟁구도가 형성되는 게 순리 아니겠나. 새누리당 사정에 대해 코멘트할 것은 없다.”

친이 대 친박 구도가 인물 중심의 과점 체제로 바뀌면서 물밑 권력투쟁이 한창인 새누리당에서 과연 최후에 웃는 1인은 누가 될까.



주간동아 2013.11.25 914호 (p14~16)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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