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3

2013.11.18

휠체어 탄 여인의 복수 방법은?

정연식 감독의 ‘더 파이브’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11-18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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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 탄 여인의 복수 방법은?
    연쇄살인마에게 자식과 남편을 잃은 여인이 가해자에게 처절한 복수와 응징을 하려고 나선다. 여기까지만 보면 200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줄곧 우려먹은, 닳고 닳은 설정이다. 영화 ‘더 파이브’(감독 정연식)는 전형적인 상황에서 출발하지만, 흉악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당위성을 호소하는 영화는 아니다. ‘누가, 왜 복수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으로 복수하는가’에 승부수와 노림수가 있다. 복수의 이쪽 편에는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를 탄 힘없는 여인이 있다. 그가 달려가는 지옥의 끝에는 살인에 관한 한 ‘절대자’ 경지에 올라선 ‘사이코패스’가 있다. ‘더 파이브’의 재미는 여기서 비롯된다.

    영화는 ‘도미노’를 콘셉트로 한 방송 촬영장에서 시작한다. 도미노 설계 전문가인 30대 후반 여성 은아(김선아 분)는 남편과 열네 살 딸을 두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과 더없이 다정한 부모와 딸. 은아의 일상은 매일이 단꿈이다.

    카메라는 은아 집과는 전혀, 영원히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또 하나의 세상을 보여준다. 어린 소녀가 인터넷 채팅으로 성인 남자를 유혹하고, 어른들은 돈을 미끼로 철없는 아이의 성(性)을 사는 어둠의 세상이다.

    현실이 그렇듯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문턱은 낮고, 울타리는 약하다. 어느 날 은아는 딸과 함께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수상한 남자(온주완 분)와 마주친다. 며칠 뒤 남자는 은아와 딸을 몰래 뒤쫓아 집에 잠입한 후 무참히 흉기를 휘두른다. 남편과 딸은 죽고 은아만 간신히 살아남는다. 남자는 ‘원조교제’ ‘조건만남’을 빙자해 인터넷 채팅으로 어린 소녀나 젊은 여성을 꾀어낸 후 집에 데려다가 잔혹하게 살해하는 사이코패스형 연쇄살인마였다. 남자가 이전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은아 딸에게 얼굴이 노출되자 ‘뒤탈’을 없애려고 일을 벌인 것이다.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은아는 하반신이 마비돼 거동마저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된다. 고아인 그에게 남편과 딸은 세상에 다시없을 사랑이자 가족이었다. 삶의 희망도 이유도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복수에 대한 의지뿐이다. 하지만 두 다리마저 쓸 수 없는 여자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무력함과 참담함, 절망감이 엄습해올 무렵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떠오른다. 자신의 몸을 담보로 장기 이식이 필요한 자들을 조력자로 모으는 것이다. 필요한 인원은 자신을 포함해 총 5명. 영화제목이 ‘더 파이브’인 이유다.



    조력자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은아의 장기가 필요하다. 결국 ‘더 파이브’는 ‘복수의 퍼즐 맞추기’다. 은아는 복수를 이루는 도미노의 시작점이자 퍼즐을 이루는 한 조각이며, 모든 계획의 주관자이다. 이 퍼즐은 종종 조력자들의 이기심으로 조각을 잃거나 어긋날 위기에 처하지만, 그때마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은아의 몸’이라는 공동의 목표이거나 가족을 잃은 은아에 대한 연민,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공분이다.

    복수의 끝에 있는 살인마는 세상의 모든 쓰레기 같은 존재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세상을 정화하고 재창조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미술가다. 매우 스타일리시한 패션 속에 이상심리와 변태적 욕망을 감춘 살인귀 역의 온주완은 소름끼치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조력자 역을 맡은 마동석, 신정근, 정인기 등 관록의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도 좋다. 무엇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가 처음으로 시도한 스릴러의 무겁고 어두운 배역도 주목할 만하다.

    ‘더 파이브’는 웹툰이 원작으로, 원작자인 정연식 감독이 메가폰까지 잡았다. 영화 결말은 도미노의 ‘마지막 한 수’로 맺어진다. 힘과 집중력이 좋은 시나리오에 신인감독답지 않은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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