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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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냐, 기업 수난 시대냐

일부 기업 “경영적 판단 법의 심판 일방적”…지나친 규제 땐 투자 위축 우려도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s.com

    입력2013-11-18 0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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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냐, 기업 수난 시대냐

    10월 11일 오전 검찰이 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효성그룹의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대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한다고 막대한 비용을 쓰기보다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해달라는 차원이었다.”

    올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인수위원들과의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당시 당선인)은 대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강조하면서 이같이 발언했다.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을 제한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라는 게 당시 대변인실 설명이었다.

    올 한 해 정재계를 통틀어 최대 화두가 된 것은 ‘경제민주화’였다. 경제민주화는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부터 박 대통령이 거듭 강조했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경제민주화 문제에서 특히 순환출자는 핵심 사안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까지 기업에서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순환출자는 소유와 지배의 괴리현상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지배주주인 재벌기업 총수의 지배력 확대, 기업 자본의 건전성 문제, 일감 몰아주기 등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와 계열사와의 동반 부실화 같은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하는 원흉으로 지목받아온 규제 대상 1순위였다.

    순환출자 규제 어디까지?

    그러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구축한 국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나친 순환출자 규제는 기업의 반발은 물론, 투자 위축으로 인한 경제 위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그 수위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최근 동양그룹 사태를 통해 순환출자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 총수일가가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순환출자를 활용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함으로써 그 부실 피해가 다른 계열사와 투자자에게도 확산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올해 상반기 박 대통령이 추진한 주요 법안 7개 가운데 유일하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순환출자 금지’ 법안이다. 6월 국회에서는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해야 한다는 여당과 기존 순환출자까지 금지하자는 야당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10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은 “동양그룹이 순환출자를 통해 부실 계열사를 늘리고 금융계열사까지 동원해 기업어음(CP)을 발행한 것이 동양그룹 사태의 본질”이라며 “기존 순환출자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과 공정위는 순환출자와 금융 계열사 사금고화가 동양그룹 사태의 원인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기존 순환출자까지 금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이러한 입장차에도 공정위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재벌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최우선으로 처리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나섰다. 신영선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동양그룹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규 순환출자 금지 법안의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며 거듭 입법을 촉구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국정감사 이후 “최근 동양그룹 사태에서 보듯이 대주주와 금융사 간 차단벽을 직간접적으로 설치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신규 순환출자 금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금융사와 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 등을 국회와 논의해나갈 예정이라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경제민주화를 바라보는 여당과 야당의 관점은 확연히 갈린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점을 여당 측은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7월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입법이 마무리 단계”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야권은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야당 측은 7월 국회를 통과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이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 작업에서 크게 후퇴하는 등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대거 파기, 축소됐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그 나름의 정당성을 갖지만 다른 한 면을 보면 기업 길들이기라는 주장도 있다. 기업 문제를 시장 자율에 맡겨두지 않고 인위적으로 규제해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것이다.

    인위적 규제는 기업 길들이기

    경제민주화냐, 기업 수난 시대냐

    11월 2일 오후 서울 중구 수표동 동양그룹 본사 앞에서 피해자들이 우비를 입은 채 ‘동양 사기 판매’ ‘무능한 금융당국’ 등의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그동안 재계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최근 이석채 전 KT 회장의 사임은 표면적으로는 회장 개인에 대한 검찰 수사에 의한 것이지만, 정권 입김이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KT처럼 민영화된 공기업인 포스코의 경우도 정권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는 설이 제기됐고, 최근 정준양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물론 회사 측은 즉각 부인했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삼성자동차 손실 분담, 반도체 빅딜, 대우그룹 해체도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사례라고 말한다. 1999년 7월 7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성자동차에 대한 채권단과 계열사의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삼성생명 비상장주식 400만 주(주당 70만 원, 약 2조8000억 원 가치)를 내놓았다.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가능한 한 채권단이 손실을 분담하지 않아야 한다”며 이 회장의 추가 사재출연을 은연중에 압박하기도 했다. 채권단은 신규여신 중단 또는 만기연장 거부 등의 금융제재 카드로 압박을 가했다.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반도체 빅딜도 표면적으로는 ‘반도체 공급 과잉’을 해소하려는 기업의 자율적 결정이었지만, 실상은 대기업 구조조정을 재벌개혁의 핵심 과제로 삼은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결과물이었다는 인식이 재계에 퍼져 있다. 일종의 ‘강제 빅딜’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5대 그룹 간 빅딜은 우리나라 재벌 구조상 쉽게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었을 뿐 아니라, 자유시장경제 원리에도 어긋났다는 것이 대기업들의 인식이다.

    그런 상황에서 ‘부채도 자산’이라며 ‘대우식 외상경영’을 추구하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재벌개혁’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98년 7월 정부는 대우에 대해 CP 발행한도를 규제하고, 10월에는 회사채 발행한도까지 축소하는 등 적극적인 관리에 나섰다. 김 전 회장은 결국 99년 7월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최근에는 일부 기업이 경영적 판단에 대한 법의 심판이 경제민주화 흐름을 타고 너무 일방적으로 이뤄진다며 억울해한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계열사 부채를 그룹 계열사가 대신 갚도록 했다는 이유로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법의 심판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한다. 즉 자신은 임직원 수백 명이 실업자가 되는 것을 막고 안정적인 고용을 유지하려고 ‘경영적 판단’을 한 것인 만큼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탈세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효성그룹 역시 비슷한 처지다. 15년 전 계열사 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인 만큼 어느 정도 정당방위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효성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전 종합상사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무리하게 수출을 계속해왔고 이로 인해 부실이 누적된 상태였다. 상장조건을 유지하려고 부실을 누적해오던 종합상사들 처지에서는 외환위기 상황에 맞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파산하거나, 공적자금을 받거나, 벌어서 갚는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냐, 기업 수난 시대냐

    그룹의 부실 계열사를 살리기 위한 경영적 판단은 어디까지 정당방위로 인정받을까. 이 사안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은 효성그룹(왼쪽)과 한화그룹 본사.

    부실 계열사의 파산은 기업에 몸담은 임직원 모두를 실직으로 내몬다. 공적자금 수혈은 국민 혈세를 통한 것이므로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효성은 ‘벌어서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외환위기 당시 국가와 국민이 기업에 바라는 점 역시 기업 스스로 벌어서 해결하는 것이었으나 많은 기업이 그로 인한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워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당시 대우와 현대, 쌍용은 공중분해됐고, SK는 자본잠식으로 심각한 후폭풍을 겪었으며, LG와 삼성은 그룹 내 계열사와 합병 또는 기능 축소로 대처했다.

    이와 달리 효성은 누적된 부실을 매년 돈을 벌어 갚아나가는 방식을 택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익을 줄여 신고한 것에 대해 탈세혐의가 적용됐다는 것이 효성 측 주장이다. 사리사욕을 위해 수만 명의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없애고 국민 혈세를 낭비한 기업인은 엄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해 기업을 지키고 고용을 유지하며 부실을 차곡차곡 만회한 기업인’의 경영적 판단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효성 측은 임직원들과 협력업체의 고용을 유지한 채 스스로 벌어서 갚아나갔으며, 믿고 투자해준 주주들의 이익도 지킬 수 있었기에 형법 제21조 정당방위 규정 중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탈세 or 부실 기업 살리기

    효성 측은 또 당시 효성물산을 파산시키고 계열사 채무보증 3000억 원을 갚는 선에서 유한책임을 지는 것이 그룹을 위한 길이라고 판단했으나 “이헌재 부총리와 주거래 은행인 한일은행장이 효성물산을 파산시키면 모든 계열사 대출금을 회수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효성은 그룹 내에서 덩치가 가장 컸던 효성물산과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T·C를 하나로 전격 통합해 ㈜효성을 만들었다. 정부 개입으로 ‘파산’ 결정을 하지 못해 지난 15년간 부실 부분을 나눠 정리해왔던 이유다.

    이처럼 대기업의 부실 계열사 살리기와 경영자의 기업 배임죄는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정당성이 달라진다. 경제민주화를 두고 여야 정치권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이유도 이런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은 상황이지만 ‘민주화’ 대상이 되는 재계는 그것이 경제 죽이기가 아니라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 팀장은 “경영상의 판단에 대한 법률 제정은 기업과 정부, 시민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리돼야 할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 경제민주화를 위한 법률 제정이 다방면으로 이뤄진 만큼 앞으로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법률 제정과 노력이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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